거기까지 생각한 너에게 엄마는
아들의 방정리는 언제나 3초 컷이다. 책장에 막 쌓아놓고는 다 했다고 한다. 왜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연필을 깎은 잔해들과, 순서 없이 섞여 있는 프린트 들이.... 가능하면 스스로 정리를 하라고 두었는데 도저히 쌓여가는 프린트들이 눈에 거슬려서 주말 아들의 책상에 앉아서 책상을 정리하면서 또 괜히 아들의 가방까지 열어보았다. 열면 안 되는 판도라였을까? 내 눈엔 쓰레기(그의 눈에는 보물)인 딱지들과 프린트들 마구 잘린 지우개 조각들이 우수수수수수 딸려 나왔다.
하........................................ 단전에서부터 우려낸 화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딱지를 분류하고 마구 들어있던 프린트를 분류하고 책을 꺼내놓고 필통을 보니 딸랑 연필 한 자루와 가위 하나가 들어있다. 매주 안내장에 오던 연필, 지우개, 자, 네임펜 없는 녀석이 우리 아들 이야기였나 보다 싶다. 그리고 살펴보니 필통에 있어야 할 연필 몇 자루가 부러진 채로 가방에서 나왔고 심이 사라진 네임펜의 잔해가 따라 나왔고 심지어 자도 부러진 채로 나오고 지우개 조각들은 한 움큼이 나왔다. 도대체 왜 연필과 자를 부러뜨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집에 오자마자 아들을 소환해서 앉혀놓고 가방에서 나온 흔적들을 보여줬다. 부러진 연필과 자에 대해 왜 그렇게 했냐고 하니 순간 아들의 얼굴에 난감함이 스친다. 이건 단순히 장난의 흔적이 아니구나?
"혹시 화가 나서 그랬어?"
우물쭈물하던 아들이
"친구들이 놀려서 그랬어."
"친구들이 놀려서 화가 나서 연필이랑 자를 부러뜨린 거야?"
"어......."
아니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나면 연필이랑 자를 부러뜨릴 정도일까? 그럼 그 화를 애꿎은 곳에 내고 있던 것인가.
"애들이 뭘 어떻게 놀려서 화가 난다고 이렇게까지 했어?"
"아니, 맨날 놀리는 애들이 그러니까............."
"그럼 애들이 놀릴 때마다 그런 거야?"
".........."
"이렇게 할 정도면 화가 얼마나 난 거야. 그런데 엄마가 너무 마음이 아픈 건 이렇게 화가 나는 걸 여기에 풀 정도로 참다가 이렇게 한 거잖아? 그럼 너는 얼마나 참은 거야? 아빠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아빠 엄마한테 말을 해야 알지. 이걸 혼자 이렇게 했어?"
"아빠 엄마한테 말하면 자꾸 물어보니까 말하기 힘들고.........."
"그럼 이렇게 화가 날 정도로 친구들이 계속 그러면 왜 선생님한테는 말을 안 했어?"
"일이 커질까 봐.... 걔들은 말싸움을 잘하니까 선생님한테 막 아니라고 자기는 그럴 수도 있고 또 더 놀릴 수도 있고............."
여기까지 생각을 했다고 하니 뭐 더 할 말도 없었다. 이 조그마한 머리로 여기까지 생각할 정도면 정말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러니 더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알아차릴 텐데 얼마나 힘들까, 그 힘든 걸 혼자 참고 있다가 자꾸 편한 곳에 화풀이하는 건데....
"그 정도로 화가 났는데 어른들한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너만 손해잖아. 네가 이렇게 연필이랑 자를 부러뜨려서 준비물이 없으면 선생님은 너만 나쁘게 생각할 거 아니야. 그리고 이렇게 부러뜨리는 건 폭력적인 거야. 화가 나는 감정을 물건을 망가뜨리는 걸로 표현할 수는 없어. 응?"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말하지 않아도 아들은 분명 다 알 것이다. 그런데 그 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놀리는 녀석이 나쁜 녀석이라고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분개한다. 분명 친구를 놀리는 친구들의 행동도 옳은 행동은 아니다. 다만 그 친구들은 누구라도 그렇게 놀려댈 텐데 그걸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 친구들이 놀리는 강도가 3이라면 누군가는 그걸 1로 받아 넘길거고 누군가는 10으로 느끼기도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10으로 느끼는 사람을 피해자로 여기고 그들 편에 서서 학폭이 진행되고는 한다. 그런데 나는 좀 더 근본적으로 10으로 느끼는 아이가 그걸 3으로 또는 더 낮게 느끼고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고 그걸 알려주고 싶다. 아이의 신중함이 누굴 닮았겠는가. 내 자식이 그렇게 속상했다는데도 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내가 불같이 화를 내고 아이 편에서 상대방을 욕해주면 아이는 마음이 조금 풀어질까?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기는 한데 네가 꽃길만 걷도록 해 줄 수가 없으니 자갈길도 꽃길처럼 느끼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