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찾아오는 너

by JH

나에게는 가끔 찾아와 잠시 머물다 가는 감정이 있다 그건 부정적 감정인데

부정적 감정이 어김없이 찾아왔길래 그날이 왔나 보네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기분이 울적했지만 이 역시도 곧 지나가겠거니 했다


이쯤 되면 물러갔나 했는데 아직 머물러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기분 나쁜 감정을 물리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렇게 내버려 둔지 한참 지났고, 이제는 진짜 물러갔겠지 했는데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두려웠다


어디선가 듣기로 이런 감정이 지나가지 않고 지속되면 상담이 필요하다던데 내 상태가 그렇게까지 가버린 걸까 싶어 두려움은 불안감으로 변했다


가끔 찾아와 잠시 머물다 갈 때는 부정적 감정이 뭉텅이로 뭉쳐진 형태였다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뭉텅이가 아닌 당혹감, 두려움, 불안감, 무기력함 등으로 조각조각 나 있는 형태였다


부정적 감정이 조각날수록 내 정신과 마음은 복잡했고 괴로웠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계속 내버려 뒀다 그랬더니 그 조각들이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커졌으며 점점 자주 비집고 나오는 부정적 감정..


이것만으로 충분히 힘든데 여기에 더해 뭉게뭉게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불안정한 상태였으므로 떠오르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눌렀다


이때 떠오르는 나의 모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나는 절대 지금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과 나는 정말 못났다는 '비하'였기 때문에 생각을 누르지 않으면 생각이 나를 갉아먹을 거라는 두려움이 컸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현재에 대한 불안과 그려지지 않는 미래가 있기도 했는데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만 됐다

그중 관계에서 오는 후회가 가장 커서 과거 나에게 상처 주던 누군가가 떠올랐고 그때 그 무례한 사람에게 왜 화 한번 내지 못하고 참기만 했을까 하는 상처에 대한 후회와 그리운 누군가가 떠올랐을 때는 좋아질 수도 있던 관계를 왜 끊어버렸을까.. 아쉬움에서 오는 후회가 들었다


현재를 생각하면 불안했는데 이 불안 역시도 관계에서 오는 게 제일 컸다 내 주변에는 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나는 혼자 견뎌야 하는데 견뎌낼 자신이 없어 불안했으며 두려웠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현재의 나는 불안한 상태지만 과거에 즐거웠던 추억과 자신감 넘치며 지내던 날을 돌아보며 버티는데 현재의 불안이 과거가 됐을 때는? 즐거웠던 추억도 잘한 기억도 없어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두려워 생각하기 싫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눌렀는데 생각은 누른다고 한들 눌러지지 않았고 멈춰지지도 않았다 부정적 생각과 감정 끝에는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난 외로웠다 너무너무너무 외로워 괴로웠으며 외로워하는 나 자신이 불쌍해서 안타까웠다


그때 난 왜 그토록 외로웠을까...?


잠시 10대 시절을 떠올려 봤다

친구가 소중했던 시절부터 나는 다수와 어울리지 못했다 내 성향이 다수보다는 소수에 맞았다


나는 다수의 북적거림보다 소수의 안정감이 좋았기 때문에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본심은 이게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 성향은 소수에 맞았지만 무조건 소수만 좋았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북적거림도 좋아서 나와 달리 북적북적 모두와 잘 어울리는 친구를 보면 부러움과 시샘 그 중간 어디쯤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혹시 이것 때문에 나의 외로움이 시작되었나 싶었다


내 본심은 소수가 싫었고 소수의 성향에 맞는 내가 싫었지만 내 성향이 본심을 따라가지 못하니깐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 버려서 외로움이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아닌 듯했다


내가 처음으로 책을 다 읽었던 날 그리고 처음으로 일기를 적었던 날에도 부정적 감정이 나를 괴롭혔을 때였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알게 된 건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외면하며 방치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괴로운 거라면 이제부터라도 외면이 아닌 직면을 해보자며 틈나는 대로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10대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의 본심은 소수가 좋고 소수에 맞는 나의 성향이 좋다 (북적거림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대체 뭘까 미치도록 외로운 감정은?


불행 중 다행이라면 외로움에 묻혀 다른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들지 않았다 외로움도 부정적 감정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나 외롭구나’ 인정했더니 두렵지도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문득 든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외롭긴 했지만 외로움의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던 건 아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고 내린 나름의 답은 이거다


나는 내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했는데 이 직면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내가 들었던 생각과 감정은 이렇네로 끝내버렸다 나는 이런 상태니깐 그럼 어떻게 하며 좋을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깐 나는 자리에 멈춘 채 그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자리에 멈춰 있기만 하면 다행인데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부정했다


내 감정과 생각은 이렇네, 나 좀 힘든 상황인데 그래도 잘 버텨내고 있네 '대견하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감정이고 이런 상태인데 '정말 싫다'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게 싫고 이런 감정은 '정말 별로'네 하며 생각과 감정을 직면한 동시에 부정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부정하며 스스로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니었을까 하는 제멋대로지만 나름의 답을 내렸다


외로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렸더니 몰랐던 (어쩌면 또 외면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에게 전하는 걸 힘들어하고 누구한테 내 생각과 감정을 들키는 걸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디서 만난 누구였든 지쳤거나 힘들어 보이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지치고 힘들면 괴로우니깐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 자주 고민했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움을 느끼지 않고 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가 잘하는 걸 해야지 하는 생각 끝에 누군가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묵묵히 들어주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달랐다 누군가 나에게 '네 얘기를 해줘 들어줄게' 하는 행동만 취해도 나는 도망쳤다 내 생각과 감정을 들키는 게 크나큰 죄를 들킨 것처럼 창피했으니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더니 이번에는 화가 났다 누구에게 왜 나는 분노인지 모르지만 그냥 화가 났다 그 분노는 곧 억울함으로 변하기도 했다 내 생각을 들키면 뭐 어떤데 내가 무슨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정말 억울했다


여기서 웃긴 건 아무도 내 생각과 감정이 잘못됐다고 얘기한 적 없었다는 사실..


아무도 내게 잘못됐다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지금 든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잘못된 걸까 봐

두려웠던 건데 이 두려움을 잘못 해석해서 내 생각은 잘못된 거 하면 안 되는 거 그래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며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내가 들었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익숙해서 편한 글을 통해서가 아닌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고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쯤 내 생각과 감정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말로 털어놓고 싶었다


때마침 누굴 만날 기회가 생겨 만났고 카페에 가서 앉았다 바깥 자리에 앉아 바라본 하늘이 예뻤고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나를 보면서 이 얘기 저 얘기 자기 생각과 감정을 얘기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의 말을 듣다가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어 말했다


그동안 생각났던 거 느꼈던 감정과 취향 등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했고 이때 내가 느꼈던 건 홀가분함과 고마움이었다


내 얘기를 정신없이 쏟아냈을 땐 보이지 않았던 누군가의 모습이 내 얘기를 묵묵하게 들어주는 듯해서 정말 고마웠다 또 내 생각과 감정을 말로 털어버렸더니 글로 적는 것과 다른 묘한 매력을 느껴 홀가분했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들켜도 되는구나 이 방법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더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들 그때로 돌아가서 바꿔 놓을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과거가 존재하고 있다 과거 생각과 감정을 회피했던 내가 남아 있고 그리운 누군가가 남아 있으며 잊고 싶은 누군가가 남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남아 있는 이 기억을 한 번쯤 꺼내 정리하고 싶다

과거의 후회와 현재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에게 본심을 전하고 싶은데 타이밍을 놓쳐 못 했던 거나 용기가 생기지 않아 못할 것 같은 나의 본심을 꺼내 끄적이고 싶다


본심을 고백하기 앞서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또다시 불쑥 부정적 감정이 찾아와 나를 괴롭힐 때 과거의 나는 이렇게 견뎠어하고 알려주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올려본다

작가의 이전글목적성 잃은 글(1월의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