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성 잃은 글(1월의 끄적임)

by JH

이 글은 목적성을 잃었다


한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 짓는 연말이 아닌데

나는 작년 한 해를 돌아볼 거고 1월이기는 하지만 1일이 지난 지 좀 됐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한 해를 다짐하기에는 늦었지만 올 한 해 새로운 다짐을 적어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작년 한 해 그러니깐 2023년을 돌아보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다니던 직장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뭐 이건 괜찮았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오래 할 생각이 없었고 슬슬 그만둘까 싶었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두는 게 좋았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깐 좋았지만 시작의 순간부터 삐걱거린다고 느꼈던 이유는 그 직장에서 만난 사람에 대해 실망하게 된 시기가 작년 한 해의 시작이었으니깐 나의 시작은 처음부터 그다지 좋지 않았다


관계에서 오는 실망감 그거까지도 괜찮았다 오래 알던 사이였거나 많이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실망한 게 아니라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 이제는 이 직장을 그만둔 순간 보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별생각 없었다

음... 그럼, 뭐가 문제였던 거지?

흔히 나이 앞에 숫자가 바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던데 나는 나이 앞의 숫자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때 오지 않았던 게 뒤늦게 찾아왔는지 한 해의 시작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내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잠깐 자기소개를 하자면 나는 집순이에 게으른 사람이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으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집순이에 게으른 나라서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생활이 엉망이 되는 걸 알았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나름의 계획도 있었는데 우선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을 많이 읽어볼까 싶었다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일기는 매일 적을 거고 걷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 내서 걸은 적이 없으니깐 운동 겸 걸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그만두자마자 몸살이 왔고 움직일 힘이 없었다

나는 몸이 아파도 하루 정도 푹 쉬면 금방 나았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지나도 낫지 않았고 몸이 아프니깐 오늘만 이렇게 누워 있자는 생각으로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이 지났고 이왕 누운 김에 이번 주까지만 뒹굴뒹굴하자 싶었다


나는 아프니깐 쉬어도 됨! 하며 이유를 갖다 붙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나갔다

몸이 나은 지는 오래됐고 일주일이 지난 지도 오래됐지만 게으른 나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김에 이번 달까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다음부터는 뭐라도 하자 생각했고 그렇게 또 미뤘다

집 밖은 나가지 않았으며 누워서 유튜브 보고 드라마도 보고 먹고 싶은 거 실컷 먹다 보니깐 한 달이 금방 지났다 한 달은 지났지만 여전히 볼 영상은 많았고 볼 드라마도 많았으며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 달이 흐르는 동안 머릿속에서 문득 그만둔 직장에서 사람에 대해 실망하게 되었던 순간이 떠올랐고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사람과 현재 내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꼈던(느끼고 있는) 어려움과 받았던 상처가 같이 떠올랐지만 생각한다고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회복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을 억눌렀다


일을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으며

하루만, 이번 주만, 이번 달만 지나면 진짜 뭐라도 한다며 의미 없는 다짐만 반복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즐거웠냐고 물어보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계속 보다 보니깐 이 드라마나 저 드라마나 비슷했고 유튜브도 이거나 저거나 다 비슷하게 느껴져서 무료하고 지겹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집 밖을 나가지 않으니깐 누굴 만나지도 않았고 그때쯤 처음으로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두렵게 느껴져 누굴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이대로 있으면 왠지 모르지만 큰일 날 것 같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뭘 해 볼까 고민하다가 자전거가 타고 싶었고 계획에 없던 자전거를 샀다

빌려 탈 수 있는 거 알지만 돈이라도 쓰면 아까워서 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돈이 아까운 건 내 귀찮음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깐


처음에는 '그래 이걸 사기 위해 돈을 썼어! 움직이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자전거를 갖고 나와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일이었다 또 내리막길은 무서워 자전거를 못 타는데 우리 집은 나오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이라 평지까지 끌고 가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어야 자전거를 탈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너무 귀찮아 좀 타다 말았다 그렇게 방치된 자전거는 내 곁을 떠났다 (엄마가 자전거 안 타면 누구 줘버린다고 하길래 어차피 안 탐 줘라~ 했더니 진짜 줘버렸다!?)


그다음에는 뭘 했더라?

나노 블록을 조립하고 싶어 조립했는데 이것도 잠깐 재밌고 그다음부터는 재미없길래 하지 않았다

아! 실업급여받는 동안 면접 보러 다녔지 면접은 봤지만 의욕이 없던 난 딱히 마음에 드는 곳도 없었고 의욕 없는 게 티 났는지 오라는 곳도 없었다


깨작깨작 뭘 하긴 했지만 지속성 없이 금방 끝냈고 이거 조금 하다 귀찮아져 포기하고 가 반복되자 이제는 뭘 시도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 없이 보내는 동안 밤낮도 완전히 바뀌었다

내 감정과 생각은 서서히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지만 늘 그랬듯 풀지 않고 쌓았다

그때는 감정을 쌓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감정에 둔한 나는 상처받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받았던 상처가 문득 생각났지만 훌훌 털어냈다고 착각했다


그때의 난 몰랐지만 안 좋은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 직전의 상황이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폭발 조짐이 보이던 시기에 실업급여 기간도 끝나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나올 돈은 없고 모아놓은 돈은 더없는데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구해야 했다

직장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직장 말고 알바를 하자 싶었는데 일할 곳을 찾기 전에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밤낮이 바뀌었으니깐 출근 시간이 늦어야 하고 일을 안 하고 쉬는 동안 너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좀 움직이고 싶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되 단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는지 멀지 않은 곳에 딱 맞는 조건으로 일을 구했다 물류센터에서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언제까지 다니자 딱 정해놓은 건 없었고 밤낮이 바뀌었으니깐 적어도 이걸 돌려놓기 전까지는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포장하는 일이지만 물건을 찾아야 해서 중간마다 몸을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단순한 일의 반복이며 정신없이 해치워야 할 만큼 바쁘지도 않았기에 (일이 많기는 했지만 오후에 1~2시간 정도는 일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강제로 부여 됐다 강제로 주어진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 슬슬 지겨워져서 주변에 있는 사람을 관찰했다

‘저 사람은 말하는 게 꼭 군인 같다 나 군대 왔나??’

‘저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세심하네’

‘저 사람은 겉보기에도 까칠할 것 같은데 생긴 대로 까칠하잖아’

‘저 사람은 입에 욕을 달고 사네 욕을 하면 속이 후련해지나?’

하면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 말투를 본의 아니게 관찰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가 주변 사람을 관찰하다가 그다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시간은 잘 갔지만 생각하는 게 괴로웠다


내 생각이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었으니깐 그만큼 나는 불안했으니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는데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깐 부정하고 싶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울하다’이 사실을 인정했더니 여러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다 짜증, 분노, 억울, 절망, 외로움 뒤에는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혼자 많이 울었다


처음부터 눈물이 났던 건 아니다 무기력함이 먼저 왔고 무기력했을 때는 감정이 없었다

웃음이 나와야 할 상황에는 웃음이 나오긴 했는데 내가 진짜 즐거워서 웃는 건지 즐거운 척을 하는 건지 헷갈렸고 슬퍼서 울고 싶은데 딱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무기력해져서 움직이기 싫었지만 출근은 해야 하니깐 시간 맞춰 출근했다

출근해서 몸을 움직이고 퇴근해서는 다시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했는데 어느 날은 배가 너무 고팠다 진짜 너무 고파서 배가 고프다는 생각만 들었고 배고프니깐 방금까지 내가 무슨 감정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배가 너무 고플 때 밥을 먹었더니 기분이 괜찮아졌길래 에이 뭐야 나 우울한 게 아니라 배고파서 기운이 없던 건데 괜히 심각했네 하며 뜬금없이 괜찮아지기도 했다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싶어 들어갔던 곳인데 예상과 다르게 강제로 부여된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많이 느끼기도 했고 회피했던 생각도 많이 했다


생각을 하다 보면 분명 내가 하는 내 머릿속 생각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인데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져서 괴롭기도 했다 괴로웠지만 그 와중에 배는 고팠고 웃음이 난 걸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내 상태가 심각했는데 물렁물렁할 줄 알았던 내면이 아예 물렁하지는 않았는지 괴로움의 감정은 금방 지나갔다


낯선 나의 모습에는 사람과의 관계 맺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라면 마냥 좋아하고 쉽게 믿는 줄 알았다 그만큼 쉽게 정을 붙였으니깐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본 나의 모습은 사람을 믿지 못했고 사람이 나에게 베푸는 호의에 경계했으며 사소한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모습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외에도 생각을 하다 보면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했던 나의 모습과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들여다본 나의 모습이 달라서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지만 계속 생각하며 글로 끄적였더니 헷갈렸던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이 재밌어 틈나는 대로 많이 생각하고 글로 끄적였다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이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하는 엉뚱한 상상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깐 생각이 복잡하거나 생각하는 게 괴롭지가 않았으며 밤낮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이제는 더 이상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아도 예전처럼 생활이 엉망이 될 것 같지 않아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고 그렇게 나의 2023년이 지나갔다

2024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요즘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는 게 좋아 밖에 나가 걷는다 매일같이 걷지는 않지만 추운 날은 꽁꽁 감싸고 나가서 걷고 그러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끄적여 보기도 한다 집 밖을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뒹굴하지만 다행히 밤낮은 바뀌지 않았다


이 글은 목적성을 잃어 2023년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며 끄적였어야 할 글이지만 이제라도 뒤늦게 끄적였고 끄적여 본 김에 새해 다짐을 해보고 싶다


2024년에는 새롭게 뭔가를 하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좋으니깐 꾸준히 했던 기억을 쌓고 싶다 그래서 2024년 연말을 마무리하는 글을 적을 때는 2024년은 시작부터 좋았다 내가 다짐했던 걸 잘 지켰기 때문에라고 나의 글이 시작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끄적임 끝!

작가의 이전글글쓰기로 결심한 날(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