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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읽씹', '안읽씹'도 답장이다

기다림의 미학

by ㅇㅈㅇ

조급함은 자주 실수를 불러오며,

여유는 항상 명확한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 벤저민 프랭클린


기다림은 때로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상대방의 반응이 없을 때, 그조차 하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며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더욱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기다림의 미학


매년 3월은 전년도 실적 보너스를 지급받는 달이다. 이를 위해 급여일 1~2주 전부터 미리 확인 요청을 하지만, 본사 내부 절차상의 소요 기간으로 인해 답변이 지연되기 일쑤다. 이번에도 급여일이 다가오는데도 영업이사와 HR 팀의 소식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결국 세무사로부터 급여대장을 전달받았고, 보너스 지급은 다음 달로 미뤄졌다.


본사가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무작정 재촉하기도 어렵다. 마치 사장실에 들어가기 전 비서에게 사장의 기분을 묻는 느낌이랄까? 혹시 이메일을 못 받은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알고 있다. 둘 중 하나다. 잠시 보류 중이거나 처리 중이거나. 지금까지 원활히 주고받던 이메일이 보너스 관련 메일만 누락될 리 없다. 결국 나는 답장이 없는 것도 하나의 답장임을 깨닫는다.


답장이 없는 것도 답장이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으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왜 '읽씹'할까? 왜 '안읽씹'할까? 왜 콜백이 없을까? 당장은 바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쯤이면 연락이 올 법한데도 없다면, 그것이 곧 상대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읽씹'도 '안읽씹'도 하나의 답장인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조급해지고, 상대방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개의 문자를 남기고, 전화를 두세 번 넘게 건다. 과거에 한 번쯤은 상대방에게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읽씹'이나 '안읽씹'을 당하면 당황스러움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사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안부 문자나 전화를 하면, 한 번 연락하고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급한 일이면 두 번, 정말 위급한 일이면 세 번 이상 연락할 것이다. 가족과도 이런 말을 하지 않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연락하면 상대방은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술 주사인가?" "집착인가?" 상대의 마음에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결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유의 중요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다.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 기다려 보자. 기다려도 연락이 없다면, 그 또한 하나의 답장으로 받아들이자. 상대방이 연락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빠서일 수도 있고, 단순히 귀찮아서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나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우리는 관계와 정황을 고려해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굳이 상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끊임없는 확인과 재촉은 오히려 상대방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면에서도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 뜻대로 살면 좋겠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조화와 배려도 필요하다. 기다림 속에서 여유를 찾을 때,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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