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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14. 2020

나는 내 마음의 조종사(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일상 속 생각

우연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 애니메이션인데 아마 성인들도 그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거기엔 ‘라일리’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본부가 있다. 그곳에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가지의 감정들이 그녀를 조종하는 일을 한다. 마치 비행기를 운전하는 조종사처럼 그들은 그녀가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그때마다 어떤 감정을 대표로 표출할지 결정해서 반응하도록 명령을 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는 머릿속 감정 본부에서 순조로이 일을 처리한 덕에 가족, 친구들과 모두 원만하게 지낸다. 


어느 날 아빠의 직장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전까지는 감정 본부에서 주로 그녀를 움직이곤 했던 감정이‘기쁨’이었다. 그러나 이사 후 감정 본부에서의 우연한 실수로 가장 주된 감정인‘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한다. 그러면서 남은 감정인 ‘버럭’, ‘까칠’, ‘소심’만 그녀를 조종하게 된다. 세 가지 감정만 표현을 하니 ‘라일리’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전에는 좋았던 기억들도 거의 잊어버리거나 그것을 나쁜 기억으로 변형해서 잘못 기억을 한다. 그럴수록 학교생활, 가정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엉망이 된다. ‘라일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기쁨’과 ‘슬픔’이 감정 본부로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그녀의 무너져가고, 왜곡되고, 변형되어 가는 좋은 기억들 몇 가지를 겨우 챙겨서 감정 본부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런 과정이 영화 대부분의 내용을 이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에게도 감정을 통제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체계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결국 모든 좋은 기억들이 붕괴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럴 때 라일리는 그동안의 행복했던 추억들은 기억을 못 하고 더욱 깊이 우울해졌다. 한번 우울해지기 시작하니 계속 화를 내거나, 소심해지는 감정만 그녀를 지배해나갔다. 그럴수록 그녀 자신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 친구들마저 잃어버릴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을 장기간 동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작은 일에도 분노하거나 스스로와 세상을 비관하는 태도가 형성되고 있었고, 그 감정들을 기쁜 감정으로 바꾸기가 힘들었다. 그 전의 나는 나쁜 감정이 들어도 그것이 잠깐 나왔다가 금방 지나가고, 머릿속에서 행복했던 일들이나,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면서 스스로 기쁨의 감정으로 바꿀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우울한 감정이 나의 머리를 조종했었던 몇 해 전의 나는 그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었다. 그럴 때는 나조차 모르던 모습이 표출되었고,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낯설고 난감해했다.      

결국 그것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써서 겨우 탈출을 했지만, 지금도 끔찍했던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분하고, 우울한 감정이 주로 나오는 시기에 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도 결국은 나 자신이 나쁜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했다. 영화에서 라일리의‘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은 감정 본부로 되돌아가려고 목숨 건 노력을 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나도 행복했던 감정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겉으로는 반대로 냉정하게 말하고, 거칠게 행동을 했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기쁜 감정인데 감정의 오류로 반대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당시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글로 정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전의 좋았던 기억을 겨우 되살렸다. 그러면서 조금씩 예전의 밝았던 모습이 서서히 돌아올 수 있었다.    

겨우 나쁜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현재도 나는 종종 그런 기분들을 경험한다. 다만, 지금은 감정에 빠져들 때 중간에 그것을 인식하는 시점이 예전보다 짧아졌다. 그리고 깨달았을 때라도 더 이상은 그 감정을 유지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할 뿐이다.      


영화에서 라일리는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으로 ‘슬픔’의 감정을 꺼냄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는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인가. 크게 울면서 가족들과 재회하는 순간 중요한 추억들이 다시 그녀의 머릿속에 돌아온다. 그러면서 그녀는 전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족들과도 예전처럼 돈독해졌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의 예전 일들도 떠올랐고,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 노력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작은 감정에도 흔들릴 때가 많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나는 나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것을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내 마음이 흔들릴 때 감정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기쁨’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의 대표 감정으로 다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소망이 있다면 ‘절망’, ‘우울’의 감정이 들었을 때 최대한 빨리 감지해서 금방 다시 ‘유쾌’의 감정으로 바꾸는 감정 조절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조금씩 내가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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