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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16. 2020

 합격을 축하합니다ㅠㅠ(한 이직준비생의 이야기)

상상더하기 에세이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보고 싶어서 어떡해요.”  

“또 연락할게요.”

4년 동안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짐들을 차 트렁크에 하나씩 실어 담았다.

 “탁! 부르릉.”

트렁크 문을 닫으며 시동을 걸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나는 일이랑 맞지 않아......’

터덜터덜 집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쓴다.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을 자본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늘

 ‘이건 아니잖아. 언제까지 이 일 하면서 살 거야.’

되뇌며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뒤적이며 이직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퇴근 후에 집에 가서 직업적성검사를 인터넷에서 시도했다.

 ‘그래! 내 적성에 맞는 분야가 있을 거야.’

열심히 시험지를 채웠고 컴퓨터가 분주하게 내가 푼 답을 이리저리 분석하더니 결론을 내려준다. 헉. 지금 그만두려는 직종이 나와 적성이 제일 잘 맞단다. 말도 안 된다. 컴퓨터가 사람을 어떻게 판단을 해. 아닐 거야. 이건 아니잖아. 그러다가 주말이 되면

 ‘청년창업을 해볼까.’

하면서 창업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년창업 지원금을 받으려 알아보다가

 ‘아……. 복잡해. 받기 엄청 어려운 거였네.’

하며 담배를 피웠다면 벌써 한 갑은 피웠을 만큼의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어딘가에 이직을 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비록 바로 이어서 취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래. 재계약 안 하길 잘했어. 잘 한 선택이야.’

라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만 왔으니 잠시 내게 휴가를 주는 것도 훗날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질 때 일어났다. 일어나서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요리하기 귀찮으면 배달을 시킨다. 누구를 만날 일이 없는 날은 씻지 않고 빈둥대기도 한다. 그러다 불규칙적인 습관을 바꾸고 싶어 져 계획을 짜서 지키기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은 뒤 근처 공원을 돌며 상쾌하게 조깅을 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래. 이런 것이 진짜 휴가구나!’

가끔씩 서울 근교에 차를 몰고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고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기를 며칠……. 평화로운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왔던 덕에 고용보험에서 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상당 부분을 매월 내 통장에 지급해주었다. 고용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2주에 한 번씩은 구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제껏 일해 왔던 분야에 싫증이 나서 다른 쪽 일을 구하기 위한 이직이 워낙 어려웠기에 마음을 내려놓은 채로 매번 지원서를 냈고, 그 증빙서류를 제출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느 곳에 지원서를 넣을지 살펴보던 중이었다. 그중에 지원분야가 나의 전공, 경력에 들어맞는데 이제까지 일했던 회사와 다른 분야의 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설마, 여기도 마찬가지겠지. 나랑 비슷한 전공을 졸업하고, 내가 가진 경력과 비슷한 사람이 엄청 많이 지원했겠네. 경쟁률은 안 봐도 뻔하지 뭐. 그래. 어차피 떨어질 것. 마음 편히 지원하고 고용보험에 서류나 내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증빙서류를 고용보험센터에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사실을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몇 개월 정도는 취업 전에 재정비도 하면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었다. 아직은 일을 그만둔 지가 한 달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조금은 여유를 두고 싶기도 했다. 사실은 고용보험센터에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낸 돈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받을 수 있을 동안은 받으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고생했던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평소처럼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고 어제 배송되어 온 한 끼용으로 밀 포장되어있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반 토막을 냉동실에서 꺼내 들었다. 역시 이것만큼 조리가 편하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 없다며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최신 음악차트에 있는 음악을 틀은 채 가스레인지의 손잡이를 돌린다. “따다 다닥.”하고 프라이팬 아래에 불이 점화되자 냄새가 집안에 퍼지기 전에 주방과 거실, 방에 있는 창문을 모두 열었다. 지글지글 고등어가 노릇한 색을 띠어가자 불을 끄고 접시에 잘 익은 고등어를 담아 식탁 위에 놓았다. 젓가락으로 한 점의 살을 떼어 입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잠깐 동안 망설였다. 그래도 그냥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00 회사에 지원하신 000님이시죠? 지원서를 보고 전화드립니다. 1차 합격하셨어요. 개별면접과 저희 회사 임원 면접이 있으니 내일 0시 0분에 회사 00부 서로 오세요.”

대답할 틈도 없이 서류전형 합격소식을 듣고 말았다. 나는 기뻐야 하나……. 그런데 마냥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평소에 가고 싶던 회사였다. 이곳보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도 매번 불합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에서 온 연락이었지만 왠지 두 가지 마음이 요동치듯 가슴에 번져갔다.

아마 원인을 생각해보니 이렇다. 지금까지 일한 곳과는 다른 분야의 더 큰 규모의 회사였지만, 나는 내가 졸업한 전공과 그와 관련된 경력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꿨었는데 이곳은 또다시 과거와 연결된 역할을 맡아야만 하기에 그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걸고 채용하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 그것이 현실이다. 여태까지 해 왔던 모든 것을 무시하고는 도저히 내가 원하는 수준의 취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1차 합격 통보를 받으면 2차 면접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이 고용보험센터의 수칙이었다. 그래서 불참은 할 수가 없었다. 급하게 면접 때 입을 블라우스와 정장치마, 면접에 어울리는 구두를 챙겨 주섬주섬 입어보고 있는 내 모습이 방에 놓인 전신 거울을 통해 보였다.

“그래. 고민할 수도 없는 문제야. 그냥 가자. 설마 최종까지 가겠어? 떨어지겠지.”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린 고등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음날…….

취업준비생이었을 때부터 수없이 거쳐 왔던 면접이기에 내게는 조금 익숙한 일이었다. 면접고사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최대한 옆으로, 위로 올려서 밝은 이미지를 면접관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치아의 일부가 약간 드러날 정도의 미소를 장착했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이때만큼은 세상의 어떤 일이 내게 주어져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인 듯 답변에 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려했던 경력을 미화시킴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태도를 겸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임원 면접관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큰일이다. 내 의도와는 다른 쪽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최종면접에는 나와 다른 지원자 한 명, 이렇게 두 명이 살아남았고, 이제 단 1명이 뽑히는 과정만이 남았다. 어차피 떨어질 것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 한자리다. 들은 바에 남은 지원자는 우리나라 최고 학부 출신에 유명 방송국의 홍보, 마케팅 직원 경력에 유명대학 석사과정도 이수했다지. 저 자리는 그 사람 거야.’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해졌다. 그 상태로 1대 1 면접에 들어갔더니 면접관과의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내가 솔직한 것도 마음에 들어했다. 그리고 면접관은 둘 중에 정말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제발, 고민하지 마세요.’

이런 나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결국 긍정적이고 겸손한 이미지로 마무리가 되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허무했다. 그렇게 영혼이 탈탈 털린 상태로 집에 돌아와 현관에 검은 구두를 던지듯이 버리고, 거실에 가방을 팽개치고, 마침내 방으로 들어서 침대에 다이빙을 했다. 마치 주선자에 떠밀려서 나간 소개팅 자리의 어색한 만남을 끝내고 들어와 편하게 은색 양푼 그릇에 밥과 나물, 고추장, 참기름을 비벼서 먹는 기분과 비슷했다.     


다음 날 햇살이 따갑게 내 얼굴을 향해 직진을 해서 눈을 저절로 뜨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있던 실내용 사이클 위에 올라가서 다리를 굴렸다. 또다시 일상이 시작된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벨소리는 왜 이렇게 큰지 매번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불길하게 공공기관 느낌의 번호가 화면에 찍힌 채로 받을 때까지 재촉하듯이 울려댄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2차 면접에 통과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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