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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17. 2020

외로운 봄

상상더하기 에세이

봄이 다가온다.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이제는 달력에도 입춘이 적혀있는 날짜가 훌쩍 와버렸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주변의 풍경도 흑백이 아닌 컬러버전으로 바뀌고 있다. 집 앞에 있는 공원에 나가보니 초록빛의 잎사귀가 나무에 매달려 “안녕. 반가워.”하면서 온 몸으로 봄날을 알려줬다.     

전화 벨소리가 울려서 받았다. 친구였다. 그녀는 오랜 솔로 생활을 하고 있던 내게 마침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겨울 내내 혼자서 다니며 외로움을 느꼈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연인이 없어서 혼자 시내에 나가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어딘가에 다닐 때는 혼자도 편할 때가 있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오랜 기간으로 이어지다 보니 ‘나도 같이 돌아다니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1살 연상인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그는 골프를 좋아해서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닌다고 했다. 직접 만나보니 키는 177cm에 운동으로 다져진 적당한 체격의 짧은 흑발 머리를 한 한국인 평균 밝기의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이보다 좀 더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깔끔하고, 그에게 나는 향이 내가 좋아하는 레몬 향이었다.      

나는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것이나 약속 장소를 선택할 때 그가 미리 준비한 계획을 내게 몇 가지의 선택지를 주고 고를 수 있게 하는 점이 좋았다. 성의가 있는 태도이면서도 나를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연락을 할 때도 돌아오는 대답이 재미있고, 짧지만 시원한 말투였다. 그래서 메시지를 받고 혼자 웃음이 나올 때가 여러 번이었다.     

그는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처음에는 그 점이 멋있다고 느껴졌다. 

그는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1시간 반을 했다. 그리고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자기 전에 매일 영어공부를 30분씩 하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영어는 회사에서 바이어 미팅을 할 때나 회의 때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관리를 한다고 했다.

주말이 되면 오전에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골프장에 갔다가, 오후에 자기가 읽고 싶던 책을 읽거나 공원에 가서 걷는 등의 취미생활을 하고, 중간에 음식을 먹고 나면 또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가서 잤다. 하루도 그것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꼭 주말 낮 시간에 4-5시간만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운동을 강박적으로 했고, 수면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나는 그와 연락을 할 때 마음이 조급했다. 그의 그런 바쁜 스케줄을 알게 되면서 혹시나 그가 지금은 ―일정을 하고 있을 시간이니 연락하면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의 생활에서 일과 운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운동은 강박적으로 하는 내가 봐도 그가 나보다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도 전보다 살이 많이 찌기 시작하자 몇 개월 전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해서 꾸준히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조금씩 체중을 감량하는 중이었기에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평일에는 헬스장에서 1시간을 운동하고 1시간 동안 공원을 빨리 걷고, 저녁에는 2시간 동안 또 걸어 다녀서 하루에 만보기 어플로 측정한 바로는 2만 7 천보 이상이 나온다.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런데 나는 프리랜서였기에 그렇게 할 여유가 조금 있었지만 요즘같이 그의 회사에서 바쁠 시즌에는 야근을 해서 8시~10시에 퇴근을 하는데도 어플로 2만 보 정도를 움직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얼굴을 볼 때마다 처음보다 점점 수척해 보이고,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나중에는 나랑 만나서 대화하다가도 금방 잠이 들 것처럼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어둡게 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러니 그의 철저한 일정에도 내게 시간을 쪼개어 연락을 하는 것 자체도 왠지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말에 잠깐 만나는 것이지만 그는 내게 최대한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기에 고맙기도 했지만, 또 그의 운동과 수면시간 일정 때문에 신데렐라처럼 가야 한다는 그의 뒷모습을 아쉽게 지켜봐야 했다.      

연락을 내가 먼저 하게 되어도 왠지 내가 그의 생활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서 조심조심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도 야근했어요?’

‘좀 전에 퇴근. 지금은 헬스장’

이렇게 답이 오면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기다리게 됐다. 근데 헬스장을 마치고 바로 스크린골프장으로 갔다가 집에 돌아와 정해진 시간에 하는 영어회화 공부를 할 텐데 그 일정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도대체 언제 연락을 해도 될지 난감했다. 그래서 그가 영어공부를 마칠 때쯤인 11시에 그에게서 연락이 와서 반갑게 이야기를 하면 얼마 안 가서 그는 12시가 되기 전에 잠을 자야 하는 게 자신의 일과라고 내게도 빨리 자라고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이 재미있어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그것에 맞춰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있으면 어느새 그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게 되는 식이었다. 원래 나는 그저 혼자인 것이 외로워서 함께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와 만나면서부터는 잠깐 연락이 될 때 설레는 순간을 빼면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죄도 짓지 않았는데 괜히 눈치가 보인다.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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