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이비 글라스 Apr 18. 2020

홍콩 할매의 밥상

여행체험기 단편소설

윤지는 여름방학을 맞아서 3박 4일 동안 홍콩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구 재영이와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와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블로그에 소개된 맛집과 명소를 스크랩하며 집 근처에 있는 외환은행에 가서 홍콩달러로 환전도 해두었다. 여권을 만들기 전에 미리 스튜디오에 가서 여권사진도 찍고, 2주 전에 구청에 가서 여권 발급 신청도 했다. 부푼 꿈으로 비행기에 올라 4시간 반 만에 홍콩 땅을 밟게 되었다.  

    

한국과는 달리 공기부터 후끈하더니 수증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입고 있던 얇은 재킷을 벗고 2층 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겉은 한류스타 김수현이 초콜릿을 먹고 있는 광고로 가득하다. 공항을 벗어나자 교외 풍경이 이국적이다. 홍콩 영화에 나오던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홍콩식의 작은 평수의 아파트 건물들끼리 사방으로 빼곡히 붙어있는 구조다. 건물들 사이의 공간이 없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이 나온다. 직접 눈으로 보자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달리자 사이사이로 초원이 나타나더니 큰 평수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시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했기에 피곤할 만도 했지만 그들은 기대감이 커서 눈이 동그랗게 커져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나니 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10분쯤 홍콩의 도시를 달리다 보니 마침내 침사추이에 도착했다. 영화에서 본 청킹 멘션 건물을 구글 지도에 검색해서 따라가니 찾을 수가 있었다. 이들이 예약한 한인민박집이 청킹 멘션 건물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에서 민박을 예약할 때 예약금을 미리 인터넷 민박 사이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고, 재영이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기에 민박집에 도착해서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오더니 이름을 확인하고 나머지 금액을 받고 2층에 있는 허름하지만 열심히 관리해서 청결을 유지한 상태로 보이는 2평 남짓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을 열자 낡은 쇠로 된 싱글 사이즈의 2층 침대가 방 안 가득 차 있고, 가로, 세로가 각각 3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창문이 붙어있었다. 창문이 오래되어 알루미늄 소재로 보이는데 열려고 밀었더니

 “끼-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뻑뻑하게 겨우 열렸다. 답답한 창문 바로 옆에 하얀색에서 누런빛으로 빛이 바랜 가로, 세로가 각각 5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의 기계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가동되고 있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에어컨이란다. 방이 너무 좁고 답답한데 작은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이 바로 나오기에 여는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보다 습도가 높아서 그 작은 에어컨을 켜야 진득해서 옷에 붙어있던 살결이 다시 옷과 분리되며 보얀 느낌으로 변했다. 옆에 작은 문이 있어서 열어보니 1평 정도 되어 보이는 화장실이 나온다. 역시 오래된 타일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자주 청소를 해서 겨우 관리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양변기 옆에는 빈 휴지통과 하얀 두루마리 휴지 2개가 놓여있다. 휴지와 수건을 더 받으려면 아침에 주인에게 얘기를 해야 한다.


조식은 한식이다. 그런 장점이 있어서 일부러 한인민박에 예약을 한 이유도 있었다. 물론 주인이 차려주는 것은 아니고 밥과 반찬을 거실 겸 복도에 두면 객실 손님 각자가 상을 펴서 거기에 놓인 그릇에 자기가 먹을 만큼 떠서 먹은 다음 그것을 치우고 나가면 된다. 한국에서 홍콩 한인민박을 검색해서 예약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민박집 이름이 주인 할머니의 세례명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성당에 다니는 모양이다. 거실에는 그녀의 사진으로 보이는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만 볼 수 있었다. 윤지와 재영이는 그녀가 외출했나 보다 생각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루가 지났다. 둘째 날이 아침이 되자 미리 맞춰 둔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그때가 홍콩시간으로 오전 6시경이었다. 윤지와 재영이는 외출을 하기 전에 주인아저씨가 준비해 둔 조식을 먹기 위해 거실에 나왔다. 하얀색 접시들이 식탁 위에 쌓여있고, 그 옆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었다. 얼른 나가고 싶은 마음에 몇 가지 반찬과 한국식 흰쌀밥을 접시에 덜어서 먹었다. 그러고 나서 들뜬 마음으로 거리에 나가 대형 쇼핑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좁고 막혀있던 숙소에서 벗어나 걷는 아침 공기는 습기는 좀 차 있었지만 나름 상쾌했다. 홍콩에 온 김에 옆에 있는 마카오에도 가 보고 싶어서 침사추이 거리를 20분 정도를 걸어가니 페리를 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로 30분 정도를 갔더니 마카오에 도착했다. 마카오에서 유명한 성당에 가서 성전 앞에 서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 검색으로 본 맛집에 가서 마카롱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어 다시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건너와서 강가에 서서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하다는 야경을 바라봤다. 밤이 되니 해가 져서 시원한 한여름의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 주변을 걷다 보니 어두운 밤과 대조되는 빛나는 조명으로 가득한 대형 쇼핑센터 건물들이 대로변에 주르륵 연결되어있었다. 화려한 광고판이 각각의 건물마다 뒤덮고 있었다. 고가의 시계와 보석을 파는 매장이 있는 건물은 특히 더 현란했다. 왠지 아무나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명 배우의 광고가 눈길을 끄는 샤넬 매장, 최근에 생긴 듯한 최첨단 스타일의 아이폰 매장은 건물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도 구경할 수가 있었다. 다양한 색깔과 빛나는 조명이 점점 더 밝게 비치는 큰길에는 사이사이에 가지처럼 연결된 작은 길이 계속해서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접어들었더니 좁은 언덕길이 여러 개가 나 있었다. 그곳 역시 각종 음식점의 간판으로 화려했다.

화려한 거리를 지나 소박한 가게들도 나왔다. 양꼬치, 닭꼬치 등을 파는 가게도 있고, 달콤한 향이 퍼지는 열대과일 음료를 팔기도 했다. 음식이 썩는 듯한 독특한 냄새가 나서 보니 취두부라는 중국의 전통 삭힌 두부를 파는 곳도 있었다. 그 냄새가 거리를 뒤덮어 5분 정도 걷는 동안은 계속 그것을 맡아야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둘은 힘도 들고 그 전날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야시장까지 다니느라 지쳐서 알람 소리도 못 듣고 늦잠을 잤다. 게다가 정신없이 다니다가 윤지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재영이는 계획이 틀어진 것이 성격이 덤벙대는 편인 윤지 때문인 것 같아서 갑자기 짜증이 났다. 윤지에게

“너는 여기 오기 전에 준비할 때도 환전도 제대로 못하고, 맛집이나 명소도 내가 거의 다 조사했잖아. 그러더니 여기 와서도 지갑 잃어버리고...... 이제는 알람 소리도 못 듣고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어.”

“그게 다 내 탓이야? 한인민박 예약하고 여권 만드는 것 도와준 게 누구였더라? 그리고 아침에 못 일어난 건 너도 마찬가지인데 왜 나 혼자 잘못한 것처럼 말해?”

그날따라 더 높아진 습도 때문에 기분이 불쾌해져서 서로 다투게 되었다. 재영이가 윤지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윤지도 화가 나서 참지 못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윤지는 코딱지만 한 방에서 나가서 콧바람이라도 쐬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이 났거든.’

하고 재영이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오래되어 삐걱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적막한 복도가 나왔고, 방 바로 앞에는 작은 평수의 거실이 가득 찰 정도의 나무색 대청마루 같은 느낌의 좌식 평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불고기, 전, 조기구이, 잡채, 간장게장 등 한정식 집에 온 듯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액자에 걸려있어서 그곳에 머무는 내내 만나보지 못했던 주인 할머니가 새하얀 한복을 입고 그 평상 위에 걸터앉아 윤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민박집이 조용한 데다 방금 전에 재영이와 싸우느라 방에서 큰 소리가 났었는데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창피해서 2초 정도 보다가 황급히 방문을 다시 닫았다.     


윤지가 문을 닫고 다시 방 안으로 몸을 돌리자 재영이는 왜 그랬는지 물어봤다. 윤지는 화가 났었던 것은 잊고 방금 전에 본 광경을 재영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둘은 왠지 주인과 다른 투숙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분쯤 조용히 있다가 나가기 위해서 다시 방문을 열었다. 재영이가 윤지에게

 “근데 그 할머니 어디 있어? 그리고 평상이랑 음식들도 없는데?”

라는 말을 하며 당황스러워했다.

“무슨 소리야? 분명히 액자 속에 있던 그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서 나랑 눈 마주쳐서 못 나가고 다시 들어온 건데.”

윤지도 황당한 듯 말했다. 분명히 방 앞에 앉아있어서 할머니를 지나쳐가기가 민망해서 못 나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3분 만에, 그 잠깐 동안 무겁고 큰 평상과 그 위에 차려진 음식까지 싹 다 치우고 할머니까지 사라질 수가 있나...... 윤지는 소름이 돋아서 재영이를 쳐다봤다. 재영이는 별 일 아닐 거라며 더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가자고 했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조던 역에 가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진 골목을 길게 올라가는 코스도 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맛있기로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에도 가서 맛을 봤다. 그리고 그 근처의 거위 구이를 파는 가게에 가서 겉은 바삭하고, 안에 있는 살은 윤기 나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느꼈다. 스마트폰에 쌓여가는 사진만큼이나 이들의 추억도 앨범처럼 두꺼워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거리마다 자주 볼 수 있는 약재상처럼 생긴 특이한 홍콩식 약국에 들러서 지인들에게 줄 관절통에 좋다는 피부에 바르는 약 타이거밤과 미백치약을 사람들 수에 맞게 구입했다. 민박집에 돌아오자 바로 2층 침대에서 뻗어서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 아침에 눈을 뜨자 아쉬운 마음으로 짐을 쌌다. 머물던 방을 퇴실하면서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했고, 재영이가

 “주인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네? 할머니는 안 계십니다. 돌아가셔서 이제는 액자만 남아있어요.”

“아......”     

할머니가 살아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에 윤지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했다.


그날 한국에 입국할 때였다. 공항에 있는 큰 티브이 화면에는

 ‘한국인 관광객 1명 침사추이 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망시각은 어제 윤지가 방을 나가려고 하다가 다시 들어왔던 시간이었다.  뉴스를 본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외로운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