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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25. 2020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짜 원하던 일이 찾아왔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우리 지금 권태기인 것 같아. 아무래도 서로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20대 중, 후반을 향하고 있을 그때, 6년 넘게 매일같이 만나던 남자 친구는 그렇게 멀어졌다.  나는 영문과를 졸업해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었기에 이별을 가슴에 묻고 일에 더 집중했다. 한때는 강사 일을 좋아했었다. 열정으로 가득 차서 일에만 빠져 밤낮없이 수업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을 하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거나 새로운 일들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영어 번역가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하고, 영어연수를 담당하는 대학의 연구원으로 이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퇴근만 하면 다른 것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공허함에 이것저것 고칼로리의 음식들을 입에 계속 집어넣었다. 외로움을 채우려고 먹다가 잠이 들었다. 나중에는 습관처럼 먹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되고, 배가 부른 것을 느끼지 못해서 계속 먹다가 새벽에 응급실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1년 사이에 몸무게가 20kg이 불었다. 건강검진에서 대사증후군이라며 병원에서 따로 나를 불렀다. 고혈압은 물론이고, 당뇨 수치가 높아서 주의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니 고지혈증이라고 경고를 들어야 했다.      


대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서 2주 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위반해 정차된 내 차에 돌진했고, 내가 탔던 차는 폐차되었다. 몸도 아팠지만 사실 직장일도 내게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이 일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에 집중하면서 진정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바쁜 일정으로 혹사당하던 내 몸을 병원에서 잠시 쉬게 했다. 그리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깊은 생각을 했다. 이제껏 학업과 일을 병행해왔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기에 중간에 한 번쯤 재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하던 대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집에 돌아왔다.       


2017년 초반, 뉴스에는 한진해운이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며칠 뒤, 몇 년 전부터 나와 동업을 하기로 했던 친구가 갑자기 내게 고백할 것이 있다고 했다. 사업을 보류하면서 내가 일할 때 모은 돈을 모두 그녀에게 맡겨두었었다. 그 돈은 몇 년에 걸쳐 마련한 돈이라 대강 합쳐보면 1억에 가까웠다. 그중에는 사업을 알아보느라고 쓴 돈도 있었긴 하지만 당시 그 돈밖에 없었기에 내게는 중요했다.      

“미안……. 주식으로 대박 날 줄 알았는데……. 네가 맡긴 돈으로 투자한 기업이 한진해운이야. 뉴스 봤지? 지금이라도 손절하고 남은 돈이라도 돌려줄게.”

손절한 돈은 전체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돈도 잃고 나니 비록 늦은 나이지만, 적성과 상관없는 직업공무원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전공과 경력에 관련된 직업들만 취업의 기회가 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직은 아직까지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국가고시를 치러본 적이 없던 나는 그때부터 수험생으로 살았다. 시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무작정 노량진에 있는 공무원학원에 가서 설명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예전에 연락이 끊겼던 공무원 친구에게 염치 불고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고 모의고사를 봤더니 100점 만점에 5과목 평균이 20점대였다. 친구의 조언대로 하루에 순수 공부시간을 13시간 이상으로 잡고 4시간만 자면서 약 2년의 시간을 보내어 모의고사 평균 90~95점이 되었다.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받을 때도 등에 침을 꽂은 채로 엎드려서 행정학 책을 펼쳐놓고 이론을 외웠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외우고, 집에 가는 길에도 책을 보면서 걸어가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들기 위해 누워서도 잠이 들 때 까지는 책을 손에 쥔 채로 암기했다. 법 과목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시험장에 가면 대부분이 20대 초반……. 그런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에 더욱 독해져야 했다. 수험기간에 얻은 것들이 있었다. 운동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서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세탁 건조 복합기에 의존하고 음식도 배달을 시켜서 먹던 나의 게으른 습관은 공무원 시험 수험생이 되면서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사람으로 변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수험기간 2년 동안 공부시간이 부족해서 운동을 잘 못했어도 체중이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졌다.      

시험을 마치고 나도 건강한 몸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이제껏 받아온 은혜를 하나씩 갚아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살이 쪄서 생겼던 대사증후군의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을 극복하기 위해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다. 돈만 낭비하는 인위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힘이 들고 귀찮더라도 자연적인 방법을 실천하기로 했다. 수험 기간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헬스장에 가서 근육운동을 1시간 하고, 1시간 동안 계단 오르기 기계 스테퍼를 타며 유산소 운동을 했다. 점심때는 공원에 나가서 햇볕을 쬐면서 1시간 동안 빠르게 걸었다. 저녁에는 집 근처 중랑천을 따라 2시간을 걸었다. 하루에 만보기 기록으로 2만 7 천보 이상이 나왔다. 먹는 것은 고구마와 두유, 삶은 계란, 닭 가슴살, 사과, 두부 등을 배부르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있다. 그렇게 한 지 6개월 정도 지나자 15kg 정도를 감량했고, 지방은 전보다 빠지고 없었던 근육량이 늘었다. 당 수치가 항상 180~200이 나왔었는데 이제는 식사를 하고 측정해도 102로 정상 수치가 되었다. 혈압도 120/80으로 정상이다.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하니 점차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여유가 생겼다. 공무원 시험 결과에 실망했을 때는 하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부모님께 큰소리쳤던 것이 부끄러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수험기간 중에 남들은 방광암 치료가 5년 이상 걸리는 현실인데 아버지는 1년여 만에 암 말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삶에 대한 용기가 생겼고, 나 또한 당뇨를 극복하면서 또 다른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위기는 또 다른 희망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정리하고 그것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유명한 말을 그저 남의 일처럼 여겼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돌아보니 감사할 일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서 한 권을 완성했고,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를 받게 되어 올해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머릿속 한구석에 있었어도 지금처럼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이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일들을 통해서 다른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자신의 상황이 감사하다는 용기를 줄 수가 있다.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글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까 내가 계획한 대로 되기보다는 구불구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갈 때가 더 많다. 그런데 그 길을 지나 보면 나중에는 더 잘 왔다고 느끼는 날이 꼭 오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든 진흙길이든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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