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이비 글라스 May 04. 2020

바다의 위로

일상 속 감상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 가족들과 찍었던 사진첩을 오랜만에 꺼내어 봤다. 사진 속 가족들은 저마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뜨거운 한여름 날에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문득 ‘그때의 내가 바다를 보는 시선은 어땠을까.’하는 마음으로 그때의 추억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앨범 속에 들어있는 제주도 바다사진의 발자취를 한 장 한 장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용의 머리를 닮은 용두암 앞에서 브이를 하고 있는 우리들. 그때의 바다는 내게 신비롭고, 수평선 위에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존재였다.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둘러보며 화려한 색상의 열대어들과 산호초, 그리고 조개류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바다가 아기자기하고, 반짝거리는 예쁜 곳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잠수함에서 내려 바닷가로 나오니 검은 해녀복을 입은 해녀들이 우리에게 방금 막 잡은 생선을 썰어서 손으로 집더니 빨간 초장에 찍어서 맛보라며 입에 직접 넣어주었다. 서울에서만 살아서 바다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회를 먹어볼 일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내던 나에게 그날 바다는 맛있는 것을 선물해주는 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회를 먹어봐도 그때의 그 생생했던 맛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 전 우연히 ‘목포의 눈물’이라는 곡을 들었다. 옛 노래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 전에는 이 곡을 접하지 못했고, 어쩌다가 과거의 노래를 들어도 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갑자기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애절한 가사와 구슬픈 멜로디가 악기들과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내 가슴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시대를 초월하는 단골 소재이자 최대의 관심사인가 보다. 노래의 가사 속 주인공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운 님이 보고 싶어 목포 항구에서 울고 있는 새색시의 내용은 현대 사람들도 겪고 있는 연애와 이별과 비슷하다. 나 또한 사랑했던 사람과의 좋았던 시절 추억과 헤어진 다음에 슬펐던 심정을 경험했기에 그 노랫가락은 나와 한마음이 되어 내게 와 닿았다. 그 노래를 지었을 시절에도 이별한 사람이 부둣가에서 처량하게 눈물지을 때 조용히 바다는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주고, 혼자인 그녀 옆에서 말없이 위로해 주는 친구 같은, 엄마 같은 존재였을 듯하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 실연당한 사람들이 연인을 그리워하며 바다에 가는 장면이 있나 보다. 

      

대학 시절 이스라엘에 가서 지중해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갔던 당시 지중해는 평온해서 주변까지 고요했었다. 그곳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빛의 물을 배경으로 밝은 햇살이 나를 비춰주었다. 그때의 에메랄드 색의 물결이 넘실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바다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그곳 전체에 물들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바다 안에는 끝없는 도전과 보석 같은 아름다움, 사람을 위로해주는 따듯함과 엄마와 같은 포근하고 인자한 미소가 담겨있다. 어부들은 바다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다. 바다는 무섭도록 엄청난 자연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포용하고, 그들이 살 수 있게 먹이를 주는 부모 같은 존재이다. 때로는 나에게 하늘로 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고,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다독여주기도 한다. 바다의 은은한 위로를 느끼며 나는 또 오늘의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짜 원하던 일이 찾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