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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Jun 05. 2020

낙동강에서 할머니의 따뜻했던 품속을 느끼다

일상 속 감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0일인데……. 묻히신 곳에 가서 인사드리자.”     


나의 외할머니는 지난겨울 하늘나라에 가셨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할머니가 나를 가장 처음 보셨고, 돌아가실 때도 제일 마지막에 눈감는 순간까지 내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는 할머니의 유일한 손녀였다. 그녀를 닮은 데가 많았던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녀의 자랑이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인생의 소울메이트이자 나의 분신 같이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 그녀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돌아가셨다. 다행히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내가 누구인지는 잊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금 그녀의 고향 성주에 묻혀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에 가고 싶어. 성주 우리 집…….”

하며 그녀의 어린 시절 고향인 성주 이야기를 하셔서 묘지를 그곳에 해드렸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100일이 되었을 때 할머니를 뵈러 우리 가족은 성주에 갔다. 그런 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낙동강을 만났다. 잔잔한 모습의 넓디넓은 낙동강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낙동강을 보니까 어릴 때 생각이 나네. 그날 이후로 나는 물이 무섭다.”

하며 엄마가 어릴 때 왜관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외할아버지가 왜관에서 형사를 하실 때였다. 어떤 동네 분이 외할머니를 보더니 갑자기

“도 형사땍! 그 집 아가 아까 크일 날 뻔했었는데, 집에 잘 드갔소?”

“예? 그기 무신 소리십미꺼?”

“아 여태 그것도 모리고 있었소? 아들내미 죽을 뻔 안했다아입니까. 낙동강에서 낚시하고 있었는데 뭣이 물에 드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게 보이가 자시보이 그 집 아들내미 아인교. 그래마 내가 물에 뛰드가가 꺼내왔소.”

그랬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아직 열 살도 안 된 어릴 때였고, 내게는 외삼촌이자 엄마의 남동생은 당시에 엄마보다 5살이 어린 나이라서 꼬마였단다. 둘이서 집 근처 낙동강에 놀러나갔는데 같이 흙장난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동생이 안 보여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가 강 속에 빠져서 휩쓸려가고 있는데, 어떤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바로 물속에 들어가서 동생을 건져냈던 것이다. 그래서 십년감수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에 돌아왔는데 이 일을 모르던 부모님이 길에서 만난 낚시 아저씨에게 그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아부지께 엄청 혼났다. 남동생 가지시려고 불공까지 드려서 겨우 낳은 자식인데 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그 후로도 동네 아이들 중에 낙동강에 빠져서 죽은 사람도 여럿 봤어. 그래서 우리는 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랬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니 그저 반가워서 낙동강을 한참이나 더 바라봤다. 그런 일들이 옛날에는 많이 있었단다. 내 눈에 지금 보이는 그 낙동강은 그저 바다처럼 넓고 투명하고, 엄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존재로 보였다. 마치 그런 일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아마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쉼터이자 절망 속에서 다시 살고자 다짐을 하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는 또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왜관에서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던 외삼촌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학력고사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맞아서 경북대학교에 가야 했을 때 그는 꿈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낙심해서 낙동강에 갔단다. 물에 빠지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할머니가 울면서 나타나 그를 안아주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서 결국 뛰어들지 못하고, 새롭게 다짐해서 박사까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외삼촌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도 매주마다 외할머니 산소에 찾아가 울었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땀으로, 눈물로 자식들을 키우신 할머니. 내가 한창 방황하고 다닐 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었다. 할머니의 크고 따뜻한 사랑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만나야 했다. 하지만 낙동강을 보면서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낙동강에는 할머니의 추억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할머니의 품속을 느낄 수가 있다. 낙동강이 품고 있는 것들이 할머니의 모성애와 닮았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지금도 아무런 말이 없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이제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는 낙동강에 가서 그 물을 말없이 지켜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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