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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May 22. 2020

같음의 미학

일상 속 에세이

나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털이 수북한 동물, 비늘로 덮인 물고기, 겉이 딱딱한 곤충까지 모두 이질감을 느껴 잘 다가가지 못한다. 어릴 때는 어려서 그런 것이니 어른이 되면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와 다르다고 느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어쩌다가 길에서 큰 개가 나를 보고 짖는 모습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개가 멀리 가 버린 후에도 몇 분간은 계속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고 있다.   

    

어느 날 조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다섯 살, 여섯 살 꼬마였다. 갑자기 길을 멈춰 서더니 

“하하. 벌레다. 작은 벌레다. 저거 이름이 뭐예요?”

길에서 기어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벌레를 발견하며 길을 멈춰 섰다. 나는 벌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카들이 그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그 벌레의 이름을 모르지만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이름? 딱정벌레 같아.”

“어? 딱정벌레가 한 마리 더 있다!”

나는 개미만큼 작은 딱정벌레를 조카들이 발견한 것도 신기했다.

“한 마리는 엄마고, 한 마리는 애기인가 봐요!”

아이들의 눈에는 그 벌레들이 가족관계로 보였나 보다.

“딱정벌레들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

“응. 밤이니까 우리처럼 집에 가나 봐요. 하하하!”

“딱정벌레한테 인사해봐. 잘 들어가라고.”

“딱정벌레야, 안녕. 집에 잘 가.”

벌레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아쉬운 듯이 계속 그들이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딱정벌레 잘 가라고 쓰다듬어줄래요.”

그러더니 작은 손으로 더 작은 딱정벌레의 등을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아, 귀여워!”

나는 도무지 애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게 기어가는 벌레가 뭐가 귀엽다는 것인지…….

“고모도 만져봐요!”

“고모는 안 만지고 그냥 보기만 할게.”

“왜요? 고모도 딱정벌레 쓰다듬어주세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그들은 딱정벌레들을 보고 있었다. 결국 내가 

“딱정벌레도 집에 갔으니까 우리도 들어가자.”

이렇게 재촉해서 겨우 벌레들과 작별할 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조카들은 벌레에게 거부감이 없을까.’를 생각해봤다. 그들은 벌레를 자기들과 비슷한, 동일한 존재로 바라봤다. 엄마 벌레, 아기 벌레가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져보는 것을 귀여워서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여겼다. 내 눈에는 벌레라는 존재가 나와는 크기, 모양 등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고, 그렇게 느끼면서 그들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생명체로 인식했다. 그래서 벌레를 두려운 존재로 생각했고, 그것이 거부감으로 이어져서 지금도 벌레를 만지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집 근처 공원에 갔다. 거기서 어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꺄아악!”

하고 돌고래 소리를 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멀리서 그 장면을 볼 때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같아서 불안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도 그 아이가 서 있는 곳과 가까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계속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손가락질하며 큰일 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양쪽 귀에 고막이 떨어져 나가듯이 진동으로 울리는 느낌이 났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들던 차에 그 아이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 그러자 아이는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이 순한 양처럼 고함지르는 것을 멈췄다. 어떤 이들은 그가 장애인이라서 그런 거라며 그 아이를 안타깝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는 짧은 단어를 말하기는 하는데 정신연령이 몸에 비해 어려서 말로 표현을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세 살배기 아기들이 울면서 자신의 의사표시를 나타내는 것처럼.     


그는 어린 아이고, 성인인 나는 그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도 있는 존재임에도 그의 행동에 당황하고, 잠시 동안 그 상황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그의 가족 구성원이자, 우리 동네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의 학생일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고,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듯이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같은 존재임에도 나는 그를 대할 때 방어기제부터 튀어나오고 말았다.    

  

내가 몇 해 전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 내가 가르쳤던 반 학생 중 한 명이 도움반(장애) 학생이었기에 평소에 그는 도움반에 소속됨과 동시에 그 반에 소속된 학생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수업도 도움반 수업과 과목 수업을 번갈아가며 듣는 시간표가 짜여 있었다. 


그는 남자 학생이고, 덩치도 나보다 훨씬 컸는데 학습장애가 있어서 말을 잘 못하고 단어만 겨우 말하거나 옹알이를 하기도 했고, 행동도 아기 같았다. 그 아이의 피부가 하얗고 때로는 아기처럼 떼를 쓰며 울었지만 평소 웃음과 애교가 많아서 나는 그를 아기처럼 귀여워했다. 그 이듬해도 그 학년 학생들 수업을 맡았기에 그와 2년간 함께 보내었다. 그러는 동안 정이 들었다. 나는 어떤 때 그가 이런 행동을 하고, 어떤 때는 저런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중에 스승의 날이 되었는데 그가 유치원 꼬마가 쓴 듯한 글씨로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고 쓴 편지를 내게 주며 해맑게 웃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감동했고, 하루 종일 그 학생 덕분에 훈훈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는 착하고 귀여운 아이다. 그 학생을 보면서 웃음 짓던 일들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그와 정이 들고, 그에게 익숙해지자 나에게 그는 귀엽고 애교가 많은 제자이자, 때로는 아기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한 착하고 장점이 많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내가 함께해온 소중한 제자들이 모두 내게 그런 귀한 존재들이었듯이. 그도 똑같은, 오히려 더 귀엽고, 챙겨주고 싶은,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 학생이 문득 생각나면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내게 생소했던 존재와 가족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정이 들면 두려워서 방어하려는 마음이 서서히 걷히고, 그를 나와 비슷한, 똑같은 존재라고 느낄 수가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방학 때 발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큰 수술이라 깁스를 하고 목발도 짚어야 겨우 걸을 수가 있었다. 개강을 하여 학교에 가야 했기에 목발을 짚고 지하철을 탔다. 출근시간대라 만원으로 승강기 안은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을 밟힐까 봐 걱정이 되어 하는 수 없이 노약자, 장애인석에 앉아서 간 적이 있다. 당시 거의 한 달 이상 그렇게 다녀야 했다. 


나는 그때 느꼈다. 아직도 세상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지하철 한번 이용하기도 엄청나게 힘든 일임을.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없는 곳도 많았고, 오르막과 내리막 환승구역은 모두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가끔 계단 옆, 한 구석에 장애인이 오르내릴 수 있는 기계가 있었지만 그것을 한 번이라도 이용하려면 벨을 눌러 직원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해야 했고, 그들을 기다렸다가 타는 데에 시간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걸려야 했다. 그 마저도 기계 자체가 없는 계단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고통과 불편함일 것이다.   

   

우리는 장애 진단을 받지 않았을 뿐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것의 정도가 심하거나 덜할 뿐이지 모두가 몸과 정신이 완벽한 상태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한 해 한 해 나이가 더해지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많다.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하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아 쌓이거나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한다. 비록 병원에서 확실한 병명으로 진단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다르다는 생각은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나와 같다고 생각하면 동질감이 들면서 그만큼 빨리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장애라는 것 자체를 나와 다른 것이 아닌 그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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