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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Mar 28. 2020

행불행은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감상 에세이

원효대사의 ‘해골물’ 사건을 떠올려본다. 그가 긴 여정으로 피곤한 몸을 잠시 동굴에 들어가서 쉬며 마신 물. 그물은 그때까지 달고 맛있는, 갈증을 해소시켜준 고마운 물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그 물이 해골에 담긴 해골물인 것을 알기 전까지는.     


오후에 교대역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집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어서 어머니께 전화를 하니 아버지와 집 근처 냉면집에 계시다며 그리로 오라고 하셨다. 마침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라 잘 됐다 싶어서 갔다. 부모님은 친구 부부와 방금 냉면집에서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셨고 그분들은 집에 물이 새서 고쳐야 한다고 가셨다고 하셨다. 

물냉면과 튀김만두를 시켜서 나 혼자 먹고 있었고 부모님은 이미 드셔서 말씀만 나누셨다. 그러시면서 친구 분이 올해 4월부터 시작해서 8kg이나 체중을 감량했다고 하셨다. 나는 몇 년 전에 갑자기 살이 20kg이 쪄서 지금까지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며 간신히 12kg을 감량했고, 아직도 꾸준히 관리를 하며 신경을 쓰는 중이다. 조금씩 체중이 줄었지만 최근 몇 주는 변화가 별로 없다. 정체기인가 보다 하며 계속 운동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현미밥 반 그릇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1시간 동안 근육운동을 하고, 20분은 스테퍼를 타고, 20분은 실내 바이크를 타고, 20분은 러닝머신을 타고, 30분은 스트레칭을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2시간 동안 집 앞 중랑천에서 빠른 걸음으로 걷고 온다. 이런 생활을 한지는 약 2-3달간 이어오고 있다. 그전까지는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거의 운동을 못했었지만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은 글을 쓰게 되고, 음악 작업도 시작하고 있어서 슬슬 운동량을 약간씩 줄이며 시간 배분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분은 체중을 빼기 위해 스테퍼를 많이 타고, 음식량을 조금씩 줄여나갔다고 하신다. 평소에는 조금만 드시지만 냉면집에 오셔서는 그래도 한 그릇을 다 비우시고, 만두도 맛있게 드셨다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부모님은 내가 운동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셨고, 냉면 반 그릇과 만두를 먹은 나를 보시며 많이 먹는 것도 고쳐야 한다고 하셨다. 


그분들은 딸이 두 명 있다. 그중 첫째 딸이 이번 겨울에 결혼식을 한단다. 그녀의 나이는 30살이다. 혼자 일해서 모은 돈과 대출을 받은 돈으로 신랑과 둘이 알아서 14평 아파트를 사서 신혼 가구들도 들여놨단다. 나는 몇 년 전에 6년 정도 만났던 남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별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남자 친구가 자립해서 살 생각이 없이 남자 친구의 부모님 집에 들어가서 살림이며 돈 버는 것이며 그분들께 의지해서 편하게 살자고 말하던 그의 태도에 황당했었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분명 그 당시에는 그를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그이야기가 나오자 “그래도 그와 결혼했었어야지”하며 나에게 그때 왜 헤어졌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저 나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안 드시는 태도로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식사할 때 나는 현미밥 반 공기를 퍼서 먹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로 6시 30분에 일어나서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는 요즘 따라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서 문제라고 하신다. “자기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을 봉양해야 할 나이인데......” 하시며 시작되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매주마다 6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해서 7시 15분에 출발을 한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6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해서 도착하니 성가대 연습 시작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서 제일 일찍 오신 두 분과 인사를 나눴었다. 그분들이 일찍 온 나를 보시고 부모님과 함께 일찍 와서 열심히 연습하니 예쁘다고 어머니를 보시며 칭찬을 하셨다. 어머니도 그때 나를 보시며 기분 좋게 웃으셨다. 오늘 아침이 되니 내가 어제 교회 갈 준비를 해야 되는데 늦게 일어나서 나 때문에 늦게 출발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며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매일 지각하던 부하직원과 내가 똑같다며 걱정된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분명 어제는 교회에 일찍 도착했다고 흐뭇하게 웃으셨는데...... 부모님이 어제저녁에 친구 부부를 만나시기 전까지는 내가 부모님께는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예쁜 딸이었었다. 내 기억에는......     


그저께는 토요일이라 어머니가 일을 쉬는 날이었다. 나는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근처에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점심에 부대찌개도 사 드리고, 근처 테마파크에 가서 사진도 찍고, 아메리카노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때는 몇 달 뒤에 부모님이 베트남에 가실 일이 있어서 가실 때 필요한 커플 여행가방 세트를 큰 맘먹고 사 드렸다. 나는 현재 돈이 생길 일이 없다. 잠시 다음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 이제까지 일하며 벌어놨던 돈으로 살고 있다. 그게 거의 다 떨어져 간다. 부모님도 상황을 알고 계신다. 통장잔고가 텅 비고 있지만 또 열심히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내가 아직 결혼하기 전에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좋은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요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가기 위해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오징어 구이를 파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징어를 파는 분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어머니를 보시고 칭찬을 하시며 딸을 잘 키우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이 두 명 있는데 경찰공무원과 카이스트 출신 연구원이라고 31살이고, 34살이라고 모두 결혼을 아직 안 했으니 내게 며느리 삼고 싶다고 하셨다. 빈말이라도 좋은 말씀이니 감사했다. 어머니도 기쁘게 웃으셨고, 내가 요즘 운동해서 건강도 회복되고 있고, 글도 쓰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에 어머니도 걱정이 다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일이 있던 바로 다음날 교회에서도 나에게 예쁜 내 딸이라며 웃음 지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부모님께 착하고, 건강한 딸이었다. 저녁에 냉면집에서 친구 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방이 그렇게 보이나 보다. 하루에도 아침에 교회 갈 때는 마음이 천국이었다가 저녁에 친구를 만난 뒤로는 지옥으로 바뀔 수가 있었다. 좋은 딸, 기특한 자식이었다가도 순식간에 많이 먹어서 살을 못 빼고, 게을러서 늦잠을 자고, 결혼도 못하는 문제가 많은 한심한 딸로 바뀔 수가 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이 살고 있다. 내가 변한 게 아니고 부모님의 나를 보는 시선이 변하자 나는 예쁜 자식에서 바로 골칫덩어리가 된다. 마치 동창회에 가기 전까지는 자신의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이었다가 친구들의 남편 자랑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부터 형편없는 남편이 되어 괜히 시비를 거는 아내의 모습 같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가 문제아로 보이게 되기도 하듯이 자신의 마음이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음 상태에 따라 자신이 행복하기도 했다가 불행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내가 선택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이 될지, 불행한 사람이 될지. 남들이 좋은 딸을 두었다고 부러워하는 행복한 부모님이 되실지, 한심하게 살고 있는 천덕꾸러기 자식을 둔 부모님이 되실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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