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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08. 2020

지혜로운 말의 습관

일상 속 생각

세상에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이야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만났을 때 자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고 상대방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친구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다. 대화 내용은 주로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대화를 할 때 나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쉽지가 않다.

      

우선, 나는 내 이미지보다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할 때도 웃기게 표현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조금 낮추어서 말을 할 때가 많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나는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게 그저 좋았다. 그래서 슬프고, 속상한 일을 겪어도 숨기지 않고 다 이야기하는 편이다. 내가 망가지더라도 사람들이 웃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기분 좋아하는 반응을 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아팠던 일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듯이 해학적으로 표현을 하게 된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그런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나의 그런 말의 습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자세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글 속에서 장점이 될 수가 있지만, 말의 경우는 잘못 말할 경우 다시 담을 수도 없고 생각 없이 이야기한 것이 후회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예전과 같은 말의 습관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것이 내게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될 때가 많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느낄 수 있다.      

몇 개월 전에 동창들을 만났다. 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를 해주고, 위로할 일이 있으면 격려해주는 분위기였다. 5명이 만났는데 나를 포함한 2명은 이루고 싶던 일을 해냈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3명은 하고 있는 일을 잘하면서 여러 가지 취미활동에 도전하고 있었다. 모두들 좋은 소식이라 더 반가워서 축하를 했다. 그냥 대화의 주제가 거기까지여야 했나 보다.     

그들은 내 동생과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생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동생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서 쓸데없이 그의 결혼생활에서 겪는 일상적인 고민들까지도 말이 나오게 되었다. 사실은 결혼을 하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별 일 아닌 내용이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나와 같은 미혼이었기에 마치 문제라도 있는 듯이 느끼는 것 같았다. 말을 하고 나서 그들의 걱정스러워하며 위로하는 반응을 보니 그제야 아차 했다. 게다가 그들은 몇 해 전에 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사소한 말들을 싹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그때 네가 ―그랬다고 했었잖아.”하는 말을 들으니 ‘뭐야. 내가 그때 그런 얘기까지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있나. 주책바가지가 바로 나였다. 

나도 그들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 남매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안부를 물으면 그들은 “그냥, 잘 지내.”라는 대답을 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대충 좋게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나는 왜 그들처럼 그러지 못했을까. 대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난번, 장례식 때문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에 했던 소개팅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겪은 에피소드를 말했고, 그들은 내가 하는 말에 집중을 했다.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이야기했을 뿐이었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것은 내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반응이거나, 나를 걱정하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들은 일 년에 고작 한두 번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 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무작정 그 일화를 듣게 되면 듣는 사람마다 제각각 생각이 다를 것이다. 같은 내용을 들었어도 다들 자신의 기준에서 듣고 싶은 대로 들을 것이다. 그러고는 제멋대로 나를 평가하려 드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의 이야기하는 습관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재미도 있으면서 아무도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건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쪽으로 인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당분간 나는 좋은 이야기만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나 나빴던 일들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기로 했다. 말로 충분히 모든 사람이 훈훈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그런 지혜가 부족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늘 이야기했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이제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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