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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Apr 09. 2020

혼자가 아니야

일상 속 생각

혼자 걷고 있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걷고 싶었다. 그러나 꼭 뭔가 생각이 난다. 앞으로의 생활이 문득 걱정이 된다. 이제 책이 출간되면, 그 책을 어떻게 홍보하는가…….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글로 다음 책을 어떻게 출간할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서와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막상 시작하고 보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단지 글만 써서 올린다고 다가 아니었다. 블로그의 특성상 정보성 글들이 인기가 있었고,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는 포스팅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시기에 맞게 올려야 사람들이 그 블로그에 재방문을 한다. 처음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배운 대로 해 본다며 실험정신으로 여러 가지 나의 관심분야인 책 소개 글, 맛집, 여행, 음악, 작품 전시, 영어 표현, 성경구절 등을 포스팅하면서 사람들과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하게 되었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본래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취지는 블로그에 나의 글을 포스팅하면서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피드백을 얻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독자들과 대화도 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곳에 순수한 창작 글을 올리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정보성 글을 올린 것들이 반응이 좋은 것 같아서 괜히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내 생활 속에 블로그 하나만 추가된 것뿐인데 그곳에 무엇을 포스팅할 건지 고민하고, 포스팅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고, 블로그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가입한 모임의 대화창은 수백 명이 모여 있어서 메시지 알림 음이 수시로 울려댔다. 처음이라 잘 모르니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그것들을 다 읽고 내 블로그에 적용하다 보니 이건 뭐 내가 글을 쓰는 작가인지 포스팅하는 블로거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시간 할애가 바뀌었다. 

그저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소통이 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되니 글을 쓸 시간이 줄어들어서 다시 중심을 잡으며 적절히 시간 분배를 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사소하고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1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늘 봤던 풍경이지만 매일 다른 느낌이 든다. 오늘은 30분에 한 번씩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냥 살짝만 부는 바람이 아니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오늘 부는 바람은, 나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정도로 힘이 느껴진다. 몇 시간 전에 아주 잠깐 태풍 같은 바람이 불면서 동네 도넛 가게 앞에 서 있던 가벼운 풍선 모양의 간판이 쓰러지고, 갑자기 하늘에서 딱딱하고 투명한 유리조각 같이 생긴 우박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자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바람이 한 번씩 불었다. 


내가 걷는 길은 밤에 사람이 한 시간 동안 4-5명 정도만 지나갈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날씨가 궂어서 그랬나 보다. 어쨌든 바람의 힘이 엄청 세서 내 등과 엉덩이, 다리를 뒤에서 감싸면서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걸음을 걷고 있는데 힘이 들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2배의 속도로 길을 걷고 있었다. 누가 뒤에서 내가 힘들다고 안고 밀어주는 것 같이 포근하고 가볍고, 따스했다. 신기하게 상쾌한 느낌으로 걷는데 마치 운동화가 약간 땅에서 공중으로 뜬 채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바람은 처음 느껴봤다. 마치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힘이 들어서 조금 지쳤을 무렵 에스컬레이터를 발견해서 그것을 타고 자동으로 올라가는 듯했다. 바람이 내 몸을 밀자 살짝 붕 뜨는 것 같고, 날아가는 느낌이 들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분명 나 혼자 있었는데 바람이라는 존재가 나를 감싸면서 밀어주니 포근함에 잡생각도 잠시 멈췄다. 이제 나 혼자가 아닌 자연 바람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는 집에 돌아오는 걸음이 지치지 않고 가벼워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가득했던 크고 작은 걱정들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나와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신이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존재가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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