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도 한 때 초등학생이었지.
1학년 숙제로 기억한다.
교과서의 악보를 그대로 베껴 써보는 것. 1학년 교과서의 음표들은 큼지막했고 음표 머리 안에 계이름이 쓰여있었다. 고지식하게 성실한 나는 절대 법과 같은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자 했다.
그랬다. 그런데,
음표 머리에 계이름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 더 크게 그려야겠다. 지우개로 음표 머리를 지우고 더 크게 그렸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가 또박또박 큼직하게 쓴 ‘도’은 이번에도 음표 머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음표 머리는 점점 커져갔다. 이쯤 되니 이제 나의 목표는 음표 머리에 계이름을 써넣는 것! 더 이상 솔인지 파인지 라인지 그도 아니면 높은 도인지 당최 알 수 없는 대갈장군 같은 음표가 거듭된 지우개질로 걸레짝이 된 오선 위에 그려졌다. 그렇게 ‘도’를 음표 머리에 넣는데 성공했다. ’아, 숙제를 해갈 수 있겠구나.‘ 나는 대갈장군 옆에 대갈장군 하나를 더 그렸다. ‘미’도 쓰고 ‘파’도 쓰고. 음표라고 보기 어려운 괴상한 원 안에 계이름을 부득부득 써갔다.
그리고, ’솔‘ 차례가 왔다.
오선의 반을 차지한 음표 머리에도 ㄹ 받침을 떡하니 지닌 ’솔‘은 들어가지 않았다. 분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어찌 이리도 어려운 숙제가 있단 말인가. 걱정의 걱정이 보태지며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교과서 악보를 똑같이 그려오는 숙제를 못해가면 어쩌나. 선생님이 내준 숙제인데. 울다 울다, 퇴근한 엄마 앞에서도 울며 악보를 똑같이 못 그리겠다 말했다. 엄마는 음표 밑에 계이름을 쓰라고 했다.
아니야!
선생님이 똑같이 그려오라고 했단 말이야!
엄마의 조언은 전혀 나를 이해시키지 못했다.
선생님 말이 법인 국민학교 1학년 어린이, 고지식하고 성실한 어린이에게는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망언이었다. 그 숙제를 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음표 머리에 계이름을 써넣고자 애를 쓴 그 순간만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을 뿐.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음표 아래 계이름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던가? 펑펑 울고 징징대다가 결국 미완성 악보를 책가방에 넣고 등교를 했던가? 그때 엄마는 얼마나 복장이 터졌을까? 이 미련한 딸내미 때문에.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