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달 타고 출근해 봤어요?
교실 환경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이제 집에서 학교로 그림책을 옮겨야 한다. 500권이 넘는 그림책을 그림책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야심 차게 학교에서 집으로 이고 지고 날랐었다. 어언 1년 전에. 하지만 나의 쉴 공간을 모조리 차지한 그림책들의 역할은 작가수업 선생님으로부터 '독립출판에 어울린다.'는 코멘트 이후 간간히 나의 위로와 안식이 되어주는데 그쳤다. 자신감과 의욕이 훅 쪼그라듦과 동시에 '내가 쉬려고 휴직했지 스트레스받으려고 휴직했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잘 쉬는 법을 찾겠다며 결정한 휴직이었다. 오늘은 그림책 이사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므로 휴직 스토리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림책을 날라주셨던 용달 기사님께 일 년 만에 다시 연락을 드렸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린다고. 일 년 전 그날, 웃는 낯으로 학교에서 뵌 기사님은 500여 권의 책보따리를 집으로 나르는 동안 급격히 미소를 잃어가셨더랬다. 그래서 긴장했다. 거절하실까 봐. 다행히 인성 좋은 기사님은 그 고난을 기억하면서도 책들을 또 한 번 날라주시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드시기 좋게 다 묶어 놓았습니다!> 당일날 도망가서 안 오실까 봐 질척한 한 문장을 날렸다. 용달 예약 완료!
이제 힘을 쓸 차례다.
책이 오면 바로 책책 꽂을 수 있게 장기위탁했던 책장을 찾아왔다. 1층 1학년 교실로 가서 맡아주신 샘께 꾸벅꾸벅 감사인사를 한 후 책장을 4층 6학년 교실로 날랐다. 나는 이사의 달인. 카트 하나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지! 단전에 힘을 주고 한 번에 책장 하나, 총 네 번. 껌이지! 예전과 같이 주제별로 그림책을 정리할 예정이라 칸의 크기를 고려해 네 개의 책장 세팅을 마쳤다. 이제 아이들은 매일 칠판 아래 아기자기 알록달록한 그림책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슬금슬금 다가와 그림책에 손을 뻗는 매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림책을 교실 전면에 배치하는 이유다. 나 또한 수업구상을 위해 그림책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어야 했다.
새 날이 밝았다.
역시 이사는 일찍 시작하는 게 국룰! 출근 복장(츄리닝, 목장갑, 운동화, 패딩점퍼)을 마친 나는 용달 기사님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그림책을 옮겼다. 패딩은 왜 벌써 입었을까? 미친 듯이 흐르는 땀에 패딩 따윈 벗어던지고 헉헉 헥헥. "이거 30묶음이 아닌데!!!! 50개는 훨씬 넘겠구만!" 용달에 그림책을 다 실은 기사님께서 기어이 한 마디를 하셨다.
기사님 죄송해요.
사실 올해 6학년 담임이라
청소년 문학도 슬금슬금 쌌어요. 데헷!
그렇게 나는 용달을 타고 출근을 했다.
이날 나의 모습은 학교 주차장에서 마주친 친한 샘이 웃기다며 용달에서 내리는 나를 찍어준 덕분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이제 책은 안 옮겨요."라고 깊은 한숨을 쉬는 기사님을 이제 집으로 옮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학교에서 학교로 옮기는 건 쉽다고, 다음에 또 잘 부탁드린다고 살살 꼬셔두었다. 원래 가격에 2만 원을 더 얹어 드리며.
이십 년 넘도록 매년 교실짐을 싸온 나다.
일 년 전 교실 짐을 쌀 때 그림책은 주제별로 나눠 묶었었다. 책장의 어느 칸에 어떤 주제의 책들이 꽂혀있었는지 사진으로도 남겨 놓았다. 오전 중에 책정리를 끝내고 오후엔 주안을 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분명! 데피니틀리! but 인생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학년 한글과 수학 관련 그림책을 빼고 청소년 문학을 더한 나의 책들은 고이 책장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그렇게 그림책 이사는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교실 앞이 완벽해진 느낌이었다. 배가 고픈데 배가 불렀다. 하하하. 하지만 이 만족감과는 별개로 슬슬 불안해졌다.
내일은 전직원 출근 마지막 날이다.
나는 아직 주간학습 작성도, 수업준비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