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끝나는 적이 없는, 그 매운맛
몇 학년인지 발표가 나면 학급교육과정 수립에 들어간다. 교실 환경 구성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이 작업은 각 학급의 수업운영계획이 학년부장님의 컴퓨터로 흘러들어 마침내 관리자에게 도달해야 하기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하는 일 되시겠다.
이거 하다 저거 하다 같이하다 그러다 보면 ‘아, 이러다 내가 ADHD에 걸리겠구나!’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자, 기초시간표를 만들어보자.
먼저 주당 수업시수(월~금요일 몇 교시씩 수업을 하느냐)를 확인한다. 초등학교 6학년은 일주일에 총 29시간을 공부한다. 일단 국어 5, 수학 4, 사회 3, 과학 3, 영어 3, 음악과 미술과 실과와 체육과 창체가 각각 2, 마지막으로 도덕 1을 넣어 29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연구부장님이 대략 10년을 늙어가며 짜신 전담시간표를 소중히 받아 빈 시간표에 우선하여 넣는다. 그 후 남은 빈칸들에 전담 외 교과들을 채우는데 그냥 막 채우면 일 년 동안 지옥을 맛보게 된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상태가 메롱한 월요일 특히 1교시엔 어렵고 지루한 교과는 절대 피해야 한다. 서른 명의 꽈배기와 예순 개의 초점 없는 눈을 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보는 선생님도 그리 상콤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고심 끝에 월요일은 도덕으로 열기로 결정했다. 수업내용과 연계된 그림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나눠도 좋으리라.
전담시간이 없는 요일엔 미술이나 실과, 음악, 창체 등 다소 부담 없는 교과를 꼭 넣어주어야 한다. 전담이 없는 날 주지교과를 모두 때려 넣으면 힘든 트레이너에게 걸린 헬린이처럼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각종 교과를 썼다 지웠다 하며 빈칸을 다 채웠다. 어디 보자. 오메, 국어가 여섯이다. 부족한 교과를 눈 빠지게 찾아 국어를 지운 자리에 써넣었다. 이렇게 기본시간표 작성이 끝났다.
step 2. 교육과정 작성 프로그램에 기본시간표를 입력하여 연간시간표를 생성한다. 연간시간표는 기본시간표에 학년부장님께서 사전에 입력해 두신 학교행사(시업식, 졸업식, 현장체험학습, 임원선거 등) 일정이 반영된 ‘일 년 치 시간표’이다.
당연히 교과별 연간시수는 아직 맞지 않는다. 창체(창의적 체험활동)의 자율활동은 +38이고 체육은 -29인 것을 비롯해 0인 교과가 별로 없다. 모든 교과의 오차가 0이 될 때까지 클릭을 반복한다.
기계적으로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전담교과를 잘못 클릭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자칫 나의 손목과 바꾼 클릭질을 무로 돌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기초 시간표 대로
반영을 초기화하시겠습니까?
도깨비는 무로 돌아가면 평온해진다지?
나에게 저 버튼은 중간지점까지 달린 나를 누가 들어 올려 출발점에 사뿐히 내동댕이치는 잔인한 해결방법 되시겠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포자기의 상태로 선택하는 메뉴란 뜻이다. 난 매년, 꼭 몇 번은 이 버튼을 누르며 피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묵묵히 하다 보면 끝은 온다. 보라! 깨알 같이 적힌 교과들을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바꾼 결과 모두 평화롭게 0이 되었다.
그럼 이제 끝이냐고?
훗
설마...
#일년내내만지는것이교육과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