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모여 202! 17화
이 회사를 다닌 지 5개월째다.
수습 딱지를 떼는 증표인 아이패드도 받았다. 이제 회사의 모든 복지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원이 되었다.
맡게 되는 일의 양도 조금씩 늘어났다. 하게 되는 일이 늘어날수록 회사에서 시간이 빨리 가서 참 좋다.
잠시나마 재택근무도 했었는데 회사 일은 재택보단 출근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아직 짬이 덜 차서 그럴까?
재택근무가 끝나고 전원 출근으로 바뀌니 그전까지 내가 다니던 회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사실 3개월 정도가 될 때까지 팀원분들의 이름과 얼굴도 제대로 몰랐다.
마스크도 쓰고, 재택근무를 하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야 출근해서 뵙는 팀원분들의 얼굴과 성함의 매치가 끝이 났다.
이렇게 몇 달 동안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나도 직장인화가 진행되어 가는 중이다.
여기서 말하는 직장인화는 특별한 건 아니다. 그냥 프리랜서일 때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던 직장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고, 이런 거구나 싶은 그런 거다.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건 퇴근을 하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거였다.
입사 전, 취직을 결정하고서 ‘퇴근하고 작업하면 돼.’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매일 같이 왕복 3시간을 지하철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건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출근은 어찌어찌 버티지만 퇴근은 정말 끔찍하다.
어깨가 무겁고,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 이게 삶의 무게인가 싶다. 그래서 초반에는 퇴근하고 열심히 작업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가 맞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피곤함은 더 심해져 갔고, 그만큼 내 작업은 점차 뒤로 밀렸다.
근데 사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많지는 않다. 팀원들 중에 가장 적게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매일 작업을 하고 있다. 여전히 몸은 피곤하고, 잠을 푹 자지 못해서 아플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고 있다. 몸의 고통보다 글을 쓰지 못했을 때 오는 자기혐오와 스트레스가 더 싫었다.
앞으로 작업 일정을 짤 때는 좀 더 신중해야겠다. 마냥 패기로 일을 할 수 없는 체력이 되어 버렸다.
두 번째는 주말과 공휴일의 소중함이다.
직장인들에게 주말은 정말 소중하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는 집에 붙어있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똑같은 이틀이어도 평일과 주말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흐른다. 분명 이틀은 48시간이지만 주말은 24시간인 것 같이 느껴진다.
회사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요일은 큰 약속이 아니면 무조건 쉰다는 분들도 계셨다. 다음 날이 출근이니 약속은 토요일만 잡는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말인데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었다. 직장인에게는 노는 것보다 쉬는 것이 우선이었다.
오랫동안 주말이 없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공휴일 인지도 모르고 지나간 날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 달력에서 빨간 날이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빨간색이 더 좋아졌다.
마지막 직장인화는 날짜를 세는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한 달이 바뀌는 기준은 당연히 1일이었다. 달력이 넘어가거나 핸드폰 속 월의 숫자가 바뀌어야 한 달이 지났음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의 기준은 25일, 월급날이다. 나의 시간의 흐름은 정확히 월급날에 맞춰지고 있다.
‘오, 몇 주 뒤면 월급이다.’
‘이번 달은 이때가 월급날이네.’
이런 식이다.
월급의 액수보다 월급이 들어오는 것 자체에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수많은 알바를 해왔지만 그때 받던 월급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게 정규직이라는 건가…?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았기에 아직 많은 일을 겪은 것도 아니지만 직장인의 삶은 쉽지 않다.
각자 삶의 걱정에 회사에서의 걱정도 하나 더 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직장인은 피곤하고, 고달프다.
뭐… 요즘 세상에 안 고달픈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긴 하다.
얼마 전 출근을 위해 일어난 나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 개피곤해. 회사 가기 존나 싫다.’
이렇게 나도 직장인이 되어 간다.
이렇게 나도 어른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