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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Oct 30. 2022

셋이 함께 제주도로.

그냥 운전이 좋아서 16화 : 12 LAP

제주도 출발 전날. 라포는 전봇대와 뜨거운 후방 키스를 나누었다.

차 밖 상황을 신경 쓰다가 후진하고 있던 걸 까먹은 나는 후방카메라도, 백미러도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쿵.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차에서 내려 상태를 살피니 불행 중 다행으로 범퍼가 완전히 박살 나지는 않았다. 도장이 좀 벗겨지고 플라스틱 부품이 찌그러진 정도면 선방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좋지 않았다. 많은 애정을 주고 아끼던 차를 바보 같은 실수로 부셔 먹으니 스스로가 한심해 미칠 지경이었다.


다시 봐도 끔찍하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느라 오랫동안 기다린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여행에 필요한 짐을 실었다.


금요일, 라포와 함께 출근하면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출발해야 하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뒤에 실어 놓은 여행 짐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왔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중에도 하나도 힘들지 않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설렘은 커져만 갔다.


13455km. 기름 가득. 트립 초기화. 여행이 시작되었다.


칼퇴 후 곧바로 차에 올랐다. 드디어 고대하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오산 휴게소였다. 일전에 우연히 오산 휴게소를 들리게 되었는데 식당가 메뉴판에서 짜파구리를 발견했다. 그때는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라 먹지 못해서 다음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었는데 마침 멀리까지 가야 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니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들렀다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인 계산기 속 짜파구리는 품절이었다. 굉장히 아쉬웠지만 다른 메뉴를 시키고 자리를 이동하려다 다음에 다시 올 때 시간을 맞춰 오기 위해 짜파구리는 금방 품절이 되는 것인지 물었다.

직원분께서는 오히려 ‘짜파구리가 품절이에요?’라고 되물으며 확인을 해주셨다. 알고 보니 짜파구리는 조리에 번거로움도 있고 하다 보니 바쁜 시간대에는 품절로 돌려놓는다고 했다. 짜파구리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원래 주문했던 음식을 취소하고 짜파구리를 먹을 수 있었다.

두 개의 라면이 들어가니 양도 많고,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굳이 또 오산 휴게소를 찾아와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짜파구리는 짜파구리였다.


굳이 오산 휴게소까지 찾아와서 먹을 정도는 아니다.


배도 든든해졌겠다 본격적으로 목포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배를 타야 했기에 너무 늦게 도착하면 내일 여행 때 피곤에 찌들어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과하지 않은 빠르기와 안전운전으로 한참을 달려 목포에 도착했다.


어둠을 헤치고 목포로.


목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주유였다. 미리 알아본 대로 주유소로 향했지만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주변에 있는 고급유 판매 주유소를 더 방문했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항구와 그다지 멀지 않은 주유소들을 24시간이 아니었다. 좀 더 멀리 있는 주유소를 갈까 하다가 시간을 보고 이젠 숙소에 들어가 얼른 자야 했고, 기름이 바닥이 난 것도 아니었으니 주유는 제주도에서 하기로 했다.


목포항 근처 숙소에서 짧은 잠을 잔 우리는 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한 시간 전에 도착했더니 직원분께서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오라고 했다. 대기하는 차 수가 별로 없는 걸 보면 이미 많은 차들이 선적을 끝낸 것 같았다.


승선 대기 중.


안내를 따라 천천히 배에 올랐다. 차를 끌고 배를 들어가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순서대로 가장 안쪽부터 선적을 하기에 늦게 온 나는 입구와 가까운 곳에 선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제주도에 도착해서는 빠르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두근두근 승선.


선적을 끝내고 다시 배를 나왔다. 차만 실어두고 사람은 터미널을 통해 승선해야 했다. 거대한 배에 오르자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큰 배를 탄 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가는 다섯 시간 동안 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쉽게 잠들지 못하면 뭐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사치였다.


배에는 뭐가 참 많다. 다른 사진은 사람들 얼굴이 많이 나와 올리지 않았다.


배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었다. 세븐일레븐과 식당가부터 파리바게트에 오락실과 환상적인 뷰를 가진 흡연실까지. 있을 건 다 있으니 앞으로의 다섯 시간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냥 휴게소 밥이다. 근데 좀 비싼 편.
아주 훌륭한 흡연장 뷰. 갑판에 나갈 필요가 없다.


식당에서 아침도 먹고, 낮잠도 자고, 갑판에 나가 바다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맑은 날씨와 파란 바다 위 제주도가 눈에 보이니 여행의 설렘은 제곱이 되었다.


날씨가 미쳤다.
배에서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차를 가져온 승객들은 제주도 도착 전에 본인의 차로 가 대기해야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차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현재 위치도 헷갈릴 정도였다. 게다가 큰 트럭들은 시야를 방해했고, 시동 걸린 차들의 엔진음은 소통을 방해하고, 차를 고정하기 위해 설치한 지지대로 인해서 이동에도 불편함이 많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겨우 라포를 발견하고 차에 앉을 수 있었다.


수십대의 트럭들이 울어대니 엄청 무섭다.


순서대로 차들이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 차례가 되어 안내를 받고 배 밖으로 차를 몰았다. 서울은 한동안 날씨가 쌀쌀해져서 조금 추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쨍쨍한 해와 맑은 하늘이 우리의 제주도 입성을 반겨주었다.


제주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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