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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Apr 22. 2023

K리그 최고의 경기장을 가다.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5화

K리그1과 2를 합쳐 25팀의 경기장들 중 최고의 경기장은 어디일까?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FC서울의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가장 오래된 축구전용구장인 포항의 스틸야드? 아니면 우리 광주의 광주축구전용구장? 앞으로 내게 K리그 최고의 경기장이 어디냐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DGB대구은행파크라고 말할 것이다.


대구는 원래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대구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었다. 대구의 첫 FA컵 우승 경기를 보기 위해 간 적이 있었는데 광주월드컵경기장처럼 육상트랙으로 인해 경기장과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 축구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무려 66000석에 달하는 규모의 거대한 경기장이다 보니 당시 관중이 적었던 탓에 경기장의 빈자리가 더 커 보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대구가 새롭게 지어진 DGB대구은행파크(이하 대팍)으로 홈구장을 변경하면서 리그 내에 대팍을 방문만 팬들의 칭찬일색인 후기들이 넘쳐났다. 기사들도 많이 나왔고, 12,419석의 관중석을 가득 채우는 만원 관중을 연이어 기록하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나 역시 기사나 유튜브를 통해 대팍의 영상을 보고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코로나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고, 우리는 강등까지 당하면서 대팍 방문은 점점 뒤로 미루어지다 드디어 대팍에 방문하게 되었다.


경기일정이 나왔을 때부터 대팍 원정은 무조건 가야겠다 생각했지만 경기 시간이 쉽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7시 경기는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서울시민에게는 쉽지 않은 원정길이었다. 하지만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다음 시즌에나 올 수 있는 곳이 될지도 몰랐기에 고민을 거듭하다 월요일 연차를 신청하면서 대구행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3주 간의 직관 휴식기를 거친 후라 오랜만에 떠나는 직관은 설렘이 가득했다. 게다가 그곳이 대팍이라니. 대구에 일찍 가서 놀까 싶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일찍 갈 필요는 없겠다 싶어 푹 자고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대구로 출발을 했다.


대구 원정길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생각보다 서울을 빠져나갈 때도 길이 많이 막히지 않아 큰 불편함 없이 고속도로에 올랐다. 그런데 처음 보는 길로 안내를 하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습관적으로 광주 가는 길처럼 운전을 해버려서 길을 잘못 들었다. 도착 예상 시간에 큰 변화는 없어서 딱히 상관없네 하면서 웃으며 운전을 하는데 눈앞에 푹 파인 포트홀이 보였다.


‘저걸 밟으면 무조건 타이어 터진다!’는 생각과 함께 핸들을 조금 틀어 보았지만 차의 속도와 급격히 핸들을 틀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위험 때문에 결국 포트홀을 밟게 되었다. 나름 고성능 차라고 딱딱한 서스펜션 세팅이 되어 있는 내 차는 심한 충격음과 함께 튀어 올랐고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쌍욕이 나갔다.

그나마 경고등이 뜨지 않았지만 타이어에 분명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주행 중에 기존에 없던 소음과 진동이 발생했다. 갓길에 차를 세울까 싶었는데 길이 막히지 않아 쌩쌩 달리는 차들 옆으로 차를 세우고 싶지는 않아 가까운 휴게소로 차를 이끌었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 앞바퀴의 측면이 혹이 난 것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타이어 코드절상이었다.


벌써 두 번째다. 돈이 얼마야...


단골 타이어 가게 사장님께 전화해 사진도 보내드리고 상태를 말씀드리니 무리해서 주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구에 다녀와도 괜찮다고 하셨다. 대구 원정길을 포기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새로 타이어를 교환해야 하는 비용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새 차를 산 지 1년이 막 지났는데 벌써 2번의 코드절상을 경험했다. 이전 차는 5년을 타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참…


당연히 짜증이 나긴 했지만 이런 일로 오랜만에 떠나는 원정길을 망칠 수 없었다. 게다가 황금 같은 주말에 함께 먼 대구까지 함께해 주는 여자친구는 죄가 없지 않은가. 그저 담배 연기에 이 짜증을 한숨 한숨 날려 보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밤 9시가 되어서야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중앙로에 갔다. ‘혜옥당’이라는 고깃집이었는데 인테리어도 독특하고, 옆테이블과 거리가 가깝거나 하지도 않아 넓은 테이블에서 마음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둘이서 고기와 볶음밥, 감자탕 라면에 술까지 세 병을 마셨는데도 8만 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 비해 물가가 싼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예상했던 10만 원보다 싸게 먹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중앙로는 대팍과도 거리가 멀지 않으니 숙소를 근처로 잡았다면 ‘혜옥당’ 추천한다. 특히 감자탕 라면이 굉장히 맛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차 사고와 장시간의 운전에 더해 두 병의 소주가 들어가니 잠이 잘 왔다.


껍데기 아니고 항정살이다.


대구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했더니 전기가 나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번 대구 원정은 타이어도 망가지더니 뭔가 쉽지 않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해장 겸 ‘조조칼국수’ 본점에 갔다. 검색해 보니 유명한 맛집 이래서 갔는데 주차장이 협소하긴 했지만 만차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웨이팅이 10팀이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웨이팅과 동시에 미리 주문도 했다. 칼국수와 낙지해물파전. 메뉴는 칼국수와 조개탕 그리고 해물파전 밖에 없다.


메뉴가 칼국수라 그런지 회전율이 빨라 오래지 않아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낙지해물파전이 먼저 나왔는데 얇은 파전에 새우, 오징어, 낙지가 한가득 토핑 되어 있었다. 이 파전이 겨우 13000원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칼국수도 정말 맛있었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갈 때도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맛집이니 이 가게 역시 강추다.


너무 배고파 먹기 바빴기에 음식 사진은 없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곧바로 경기장에 가려 했는데 시간이 너무 일렀다. 이대로 경기장에 가도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것 같아 대구에 있는지도 몰랐던 더현대와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아이쇼핑도 하고 수형당이라는 빵집에서 만들어 파는 ‘능금빵’(발음에 주의하자)도 사고 나니 이젠 대구에서 특별히 할 게 없어졌다. 이젠 경기장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이동 동선이 대팍과 멀지 않은 곳 위주였는데 들렸던 모든 곳들이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그만큼 대팍의 접근성이 정말 좋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드디어 그렇게 오고 싶었던 대팍에 도착했다. 그동안 홈이든 원정이든 경기장에 가도 제대로 경기장을 둘러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하니 천천히 경기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드디어 대팍에 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대팍에 입점해 있는 식당들이었다. 고깃집, 고바슨커피, 치킨집, 피자집 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파는 식당들이 입점해 있었다. 다른 경기장에도 대형마트 같은 것들이 입점해 있기는 하지만 대팍처럼 이곳을 놀러 오는 축구팬들이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곳은 처음이었다. 대팍이라면 경기 몇 시간 전에 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참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식당들도 찍었는데 사람들 얼굴이 너무 나와서 고바슨 커피만 올린다.


팀스토어가 있는 쪽으로 가니 벌써부터 많은 대구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있었다. 이 날은 대구의 스트라이커 에드가의 K리그 통산 100경기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해 스페셜 유니폼도 판매하고 포토존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에드가가 벌써 6년 차...? 시간 참 빠르다.


우리 광주에도 이번 시즌부터 꼬꼬네라는 이름으로 팀스토어가 생겼지만 대구의 팀스토어를 따라가기에는 아직 멀었다. 매장 내 크기는 비슷한 것 같았지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수는 대구가 월등히 많았다. 뭘 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수의 굿즈들이 있었고 특히 유니폼 디자인으로 만든 그립톡, 엠블럼 메탈 키링은 제발 부탁이니 우리 광주도 만들어서 팔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다.


이외에도 대팍에는 즐길거리가 참 많았다. 대구FC의 마스코트 빅토와 리카의 대형풍선 앞에서 사진도 찍고, 처음으로 뽑아 본 실물티켓에는 멋진 일러스트도 담겨 있었다. 여러 행사들을 진행하는 부스들도 여러 개 있었는데 대구 선수들의 이미지가 들어간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부스도 있었다. 비록 대구팬은 아니지만 이런 건 다른 경기장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니(대팍에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재밌는 사진도 기념으로 남겼다.


대구의 에이스 세징야가 반겨준다.
우리는 이 프레임을 선택했는데 이외에도 여러 프레임이 있다.
대구는 뭐든 다른 팀들과 달랐다.


한참을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며 대팍 탐사를 마치고 슬슬 경기장에 들어가 볼까 싶어 원정석 입장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니 조금 전 우리가 찍은 스티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매장이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보던 스티커 사진 매장처럼 여러 대의 기계와 각종 액세서리도 비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드라이기와 고데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더 대박은 안쪽이었다. 라커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포토존이 있었는데 이런 포토존은 유럽에서만 봤지 K리그 경기장에서는 처음 봤다. 새삼 많은 K리그 팬들이 ‘전용구장은 대팍처럼!’이라고 이야기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인 대팍.


저녁으로 먹을 피자까지 사고 나서야 경기장에 입장했다. 경기장에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원정석이지만 전용구장인만큼 축구를 보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날 메인은 100경기 출장을 달성한 에드가였다. 지금의 대구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세징야와 에드가. 이 두 선수는 대구 축구의 핵심이며, 특히 세징야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선수였기에 저 둘을 어떻게 막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에드가와 세징야 두 선수 모두 선발이 아닌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좀 구석이지만 축구보기는 괜찮았다.
몸 푸는 광주 선수들
대구의 서포터 그라지예.


지난 포항 원정에서 패했던 광주였지만 대구 원정에서는 달랐다. 전반에만 2골, 후반전에도 60분이 되기 전에 1골을 추가하며 경기를 30분 남겨두고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특히, 득점이 필요했던 두 스트라이커 산드로와 허율이 각 1골씩을 넣었다는 점이 광주팬들을 더 기쁘게 했다.


항상 자신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광주팬이 아니라고 말하던 여자친구는 열심히 소리도 지르고 응원가도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 응원가는 부르지 않았던 나도 덩달아 응원가를 불러댔다. ‘한 골 더 광주!’를 외치며 지난 인천전과 같은 대승을 바라던 그때 대구의 고재현이 만회골을 넣었다. 세징야와 에드가가 교체되어 경기에 투입되니 대구의 경기력이 확연히 달라졌다. 어느새 경기의 흐름은 대구에게 넘어가 있었다.


머지않아 고재현은 한 골을 더 넣었다. 이때부터 뭔가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후반 81분 케이타의 동점골이 터졌다. 대구 선수들부터 관중들까지 모두 난리가 났다. 반대로 광주팬들은 망연자실했다. 마음 편하게 경기를 보고 있던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흐름이라면 역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흐름이었다. 이 멀리 일요일 저녁 경기를 보기 위해 월요일 연차까지 써가며 왔는데 3골을 먼저 넣고 역전을 당하는 경기를 보게 된다면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분하고 짜증이 나 운전에 집중이 안될 것 같았다. 타이어도 망가지고, 숙소에서 전기도 나가고 재수가 없으려니 이렇게 없나 싶었다.


광주팬들은 더 더 크게 목소리를 냈다.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면 역전골을 넣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응원은 하승운의 역전골로 돌아왔다. 제발! 제발!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던 내 손은 하늘 높이 펴졌다. 0:3에서 3:3 그리고 3:4 대역전.


아, 이 맛에 축구를 보는 거지. 이 맛에 직관을 오고 내 팀을 응원하는 거지. 이 행복한 감정을 그날 느꼈던 희열을 어떻게든 글로 표현하고 싶지만 내 부족한 필력으로는 무리인 것 같다. 항상 경기가 끝나면 경기장을 빠져나오기 바빴던 우리는 오랜만에 승리사진에 함께했다. 여자친구도 나도 목이 아플 정도로 응원하고 환호했다.


아무래도 비인기팀 광주와의 경기라 만석은 아니었나 보다.
고재현의 2번째 득점 후 배터리가 없어 사진을 못 찍었다.


피곤함도 잊은 채 행복한 감정을 가득 안고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 여자친구는 광주 유니폼을 주문했다. 촌스럽고 안 이쁜 노란색 유니폼 꼴도 보기 싫다더니 빨리 와야 서울 원정 때 입을 텐데 라며 유니폼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후 나는 며칠 동안 목이 아파 말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회사에서 잔뜩 우리 광주의 승리를 자랑했다.


1R 수원삼성 0:1 광주FC - 결장 / 승

2R 광주FC 0:2 FC서울 - 선발 / 패

3R 전북현대 2:0 광주FC – 선발 / 패

4R 광주FC 5:0 인천유나이티드 – 선발 / 승

5R 광주FC 2:0 수원FC – 결장 / 승

6R 포항스틸러스 2:0 광주FC – 결장 / 패

7R 대구FC 3:4 광주FC – 선발 / 승


2023시즌 4경기 2승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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