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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May 21. 2023

큰일이다. 우리 언제 이겨?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8화

광주FC는 10라운드 울산 원정 경기까지 4승 1무 5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세 경기에서는 1무 2패로 무승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광주에게는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 열리는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승리를 챙겨야 했다. 무승이 길어지면 팀에 좋을 게 하나 없으니까.


어린이날은 프로 스포츠 구단에게는 대목이다. 홈경기가 열리는 팀들은 어린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이 팬들은 팀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어린 친구들은 초등학생 이상이고 경기장과 거리가 가깝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경기를 보러 온다. 그러면 티켓이 한 장만 팔리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티켓보다 비싼 성인 티켓이 최소 한 장 이상 팔린다는 소리다. 이건 구단의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경기장을 찾아 축구를 좋아하게 되고, 그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 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오랜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 팀을 오랫동안 서포트하고 경기장을 찾아오는 골수팬이 늘어난다면 경기장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또, 그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오고 가족들을 데려온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광주도 대전과의 경기에서 ‘다이노맨’이라는 애니메이션과 콜라보하여 포토존도 운영하고 캐릭터가 시축도 하는 등 어린 팬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하지만 비 때문일까 관중수는 수용 관중의 절반인 4000명도 채우지 못했다.


요즘 부쩍 늘어난 대전팬들은 원정도 많이 오셨다.
시축을 마친 다이노맨. 축구는 연습을 좀 해야겠더라.


양 팀은 시종일관 빠른 템포로 공격을 하며 서로의 골문을 노렸지만 0:0, 두 승격팀은 사이좋게 승점 1점씩 나눠 가졌다. 광주는 대구 원정에서 4골을 넣은 후로 4경기 1득점이라는 빈약한 공격력을 유지했다. 다만, 초반의 쌓아둔 승점 덕분에 11라운드까지 시즌의 1바퀴가 돌고 난 후 여전히 상위 스플릿에 안착해 있다는 점은 잔류를 꿈꾸는 광주팬들에게는 큰 위안거리였다.


선수들을 지켜보는 효버지. 우리 언제 이깁니까?



광주는 이번 시즌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구단의 창단 이래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우리 갓동님, 우리의 아버지 ‘효버지’ 이정효 감독님이 있었다.


승격팀이며 1부리그에서 가장 적은 연봉과 예산을 가진 팀 답지 않은 전술과 공격적인 축구, 경기장에서의 리액션과 이후 튀어나오는 직설적인 인터뷰까지. 기존 K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런 감독님의 발언 중 가장 핫했던 건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진 후 인터뷰에서 나온 ‘저런 축구’였다.


이 발언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건 아니다. 서울 팬들과 선수들은 기분이 나빴을 것이고, 경기를 잘하고도 결과적으로는 패배를 했는데 감독님의 발언을 비웃는 듯한 FC서울 선수들의 SNS를 본 광주팬들도 속상하고 기분 나빴다. (모든 팬들이 같은 반응은 아니었을 거다.)


아마 이 사건으로 양 팀 팬들은 다음에 만날 FC서울의 홈경기에서 승리를 간절히 원했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장인인 나는 평일 경기는 연차를 쓰거나 빨간 날이 겹쳐야 직관을 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가까운 수도권 경기여야 가능했다. 하지만 평일 저녁에 펼쳐지는 경기가 FC서울 원정 경기다? 이건 내게 개꿀이다. 게다가 경기 시간도 7시가 아니라 7시 반이었다. 여섯 시에 칼퇴하면 무리 없이 경기장까지 갈 수 있었다.


아주아주 칼같이 여섯 시에 퇴근 후 경기장으로 갔다. 광주 유니폼을 지하철에서 입고 있었는데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오, 광주!’ 하면서 지인들과 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알았지만 이어폰 때문에 안 들리는 척하다 보니 경기장에 도착했다.


평일에도 만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서울은 단연 K리그 최다 관중 팀답게 평일 저녁 경기임에도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광주 원정팬들 역시 꼭 이기고 싶은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예상보다도 많은 관중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광주 선수들은 그런 팬들의 기대를 전반전에 모두 날려버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2023시즌 광주FC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선제골까지 먹힌 채 전반전이 끝났다.


너무 화가 났다. 이 따위 경기를 보기 위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돈 써가며 축구를 보러 온 게 아니었다. 축구는 질 수 있다. 특히 광주는 리그 최약체로 평가받는 팀이니 어찌 본다면 지는 경기는 수도 없이 봤었다. 하지만 이 경기의 전반전은 역대급으로 형편없는 경기력이었다.


라커룸에서 감독님에게 호되게 혼이 났을까, 후반전에 광주 선수들은 공격이란 걸 하기 시작했고 광주의 축구를 조금씩 펼쳐 보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서울을 뛰어넘기에는 경기력도, 선수들의 기량도 부족했다. 허율이 동점골을 넣으며 설마!? 하는 생각도 잠시 연이어 터진 서울의 두 골로 광주는 패배했다.


2023시즌 가장 형편없는 축구를 보여준 광주 선수들.


지난 홈경기에서의 ‘저런 축구’ 발언 때문에 더 이기고 싶었던 경기에서 진 것도 있었지만 광주팬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던 건 이 날 골을 넣은 세 선수(윌리안, 나상호, 박동진) 모두 광주 출신 선수들이라는 점이었다. 우리와 함께했던 선수에게 골을 먹히니 우리 팀이 돈이 더 많았다면, 더 이름값있는 팀이었다면 저 선수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어진 대구와의 홈경기는 직관하지 않았다. 그동안 바쁘게 직관을 다녔으니 한 경기 쉬어가자는 생각에 광주까지 가지 않고 핸드폰으로 ‘폰관’을 했다. 나는 운전을 하느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조수석에 앉아 경기를 보는 여자친구는 훌리건이 된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여자친구가 축구에 점점 빠져든다.


아, 리액션은 광주의 득점이 아니라 대구의 득점에 분노하는 리액션이었다. 그렇다. 광주는 대구에게 0:2로 패하며 무승 행진을 여섯 경기로 늘렸다. 게다가 득점도 없었다. 울산전과 서울전에 넣은 두 골을 빼고는 여섯 경기동안 넣은 골이 없었다. 승리도, 승점도, 득점도 없었다. 순위는 9위까지 내려갔다. 올 해는 강등 걱정 좀 덜 하고 축구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김없이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순위까지 내려왔다. 날은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는데 광주의 축구는 너무나 추웠다.





1R 수원삼성 0:1 광주FC / 승

2R 광주FC 0:2 FC서울 / 패

3R 전북현대 2:0 광주FC / 패

4R 광주FC 5:0 인천유나이티드 / 승

5R 광주FC 2:0 수원FC / 승

6R 포항스틸러스 2:0 광주FC / 패

FA컵 3라운드 광주FC 2:1 부산아이파크 / 승

7R 대구FC 3:4 광주FC / 승

8R 광주FC 0:0 강원FC / 무

9R 광주FC 0:1 제주유나이티드 / 패

10R 울산현대 2:1 광주FC / 패

11R 광주FC 0:0 대전하나시티즌 / 무

12R FC서울 3:1 광주FC / 패

13R 광주FC 0:2 대구FC / 패


번외 경기

8R FC서울 3:1 수원삼성


2023시즌 광주FC 직관 성적

8경기 2승 2무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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