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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Jun 03. 2023

바쁘다 바빠, 인천 원정.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9화

서울의 서쪽에 살면서도 인천에는 참 인색하게 굴었다. 고양과 파주를 놀러 갔고, 시흥과 평택도 가봤지만 부천과 인천은 강화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가 맞는 것 같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탁한 서해보다 동해의 푸른 바다가 좋아 동해로 떠났고, 해산물이 먹고 싶으면 노량진으로 갔다. 아, 문득 생각해 보니 조개구이를 먹으러 을왕리에 갔던 적이 있긴 하다. 이렇게 손에 꼽는 인천 방문 횟수를 가진 내가 인천을 가 본 또 다른 경험은 인천축구전용구장이 개장했던 시즌이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축구만화를 연재하던 때였는데 한 번씩 직관을 갈 때면 직관 이야기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곤 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브런치 에세이가 되었다.)


그러다 인천에 새 경기장이 생긴다는 소식에 한 번 가보리라 생각할 때 인천이 고향인 대학 동기가 손수 티켓까지 구매해 줘 직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가 오던 날, 인천의 벤치가 가까운 비싼 자리에 앉아 홈팬들 사이에서 광주를 응원했던 기억은 지금도 동기를 만날 때면 종종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그때는 혼자 축구를 보던 시절이라 홈관중석에 원정팬이 앉으면 안 되는 줄 몰랐었다.)


그때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야 나의 인천축구전용구장 두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다. 지난 대구전까지 여섯 경기 무승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인천을 상대로 홈에서 5골을 넣으며 대승을 거두었던 기억이 있어 이 날은 승리하리라 굳게 믿으며 인천의 명소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6경기동안 승리가 없어 슬픈 짐승.


햇빛이 뜨거워 날이 꽤나 더웠음에도 차이나 타운은 주말이나 공휴일은 차량 없는 거리로 운영 중이라 차량 통제로 인해 조금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주차 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리 알아본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잠시 훑어본 차이나 타운은 사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조금 중국 스러운 느낌이 나고, 조금 특이한 음식들을 파는 정도?


주변에 삼국지 벽화거리,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 동화마을 등 다양한 것들이 인접해 있지만 사실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저 좀 더 중식에 어울리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였다. 물론 나는 여자친구와 둘이 가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이것저것 신기한 볼거리가 많아 즐거워 보였다.


맑은 하늘 덕분에 거리가 더 예뻐 보였다.


우리가 방문한 중식당은 ‘연경’이었다. 차이나 타운의 명물 중 하나인 백짬뽕도 먹을 수 있고, 검색해 보아도 가장 많이 보이는 식당 중 하나여서 결정했다. 토요일 점심시간이라 꽤나 웨이팅이 걸려 있겠구나 싶었는데 조금 줄이 있었지만 10분 정도 대기 후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줄 서는 곳에 화장실도 있고, 빌라 주차장처럼 그늘도 있어서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참 좋았다.


백짬뽕
우육탕면
멘보샤

주문한 음식들이 빠르게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차이나 타운의 명물 백짜장과 연경의 대표 메뉴라는 우육탕면 그리고 멘보샤. 백짜장은 말 그대로 하얀 짜장면인데 뭐로 만드는지, 굳이 짜장면을 두고 이런 음식이 탄생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특이한 음식을 한 번 먹어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전혀 짜장면 같지 않지만 약하게 짜장 맛이 나기도 한 독특한 음식은 굳이 두 번, 세 번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건 우육탕면이었다. 면도 면이지만 특히나 두툼하고 부드러운 고기가 참 맛있었다. 다만, 향이 센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여자친구는 특유의 향 때문에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못 드시는 분들은 참고해야 한다. 멘보샤가 우리가 주문한 세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겉의 빵도 부드러웠고, 새우는 탱글탱글함이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그래도 여자친구도 나도 굳이 굳이 이곳까지 와서 또 먹을 생각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구슬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차이나 타운을 걸었다. 주변의 삼국지 벽화거리 같은 곳은 우리의 흥미를 끄는 곳이 아니었기에 과감하게 패스 후 개항장거리, 개항누리길, 개항로라 불리는 곳에 있는 ‘라이트 하우스’라는 카페에 갔다.


이런 게 요즘 갬성인가.
일광전구 제품들도 파는 듯했다. 전등들이 다 이쁘다.
병원의 인테리어를 살리고 전구로 포인트를 주었다.
여기 빵이나 케이크 꽤나 맛있다.


일광전구라는 전구회사에서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인데 원래는 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다. 병원 인테리어를 어느 정도 보존하면서 예쁜 조명들을 배치해 요즘 유행하는 감성 카페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카페였다. 이곳에는 맛있어 보이는 빵과 케이크도 팔고, 커피도 파는데 냉장고에서 개항로 맥주라는 것을 발견했다.


양은 적고 비싸지만 한 번은 먹어볼 만하다.


인천맥주라는 회사에서 만드는 술인데 개항장거리에 있는 가게들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레트로한 느낌의 맥주가 맛있어 보여서 두 병 샀는데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다. 저녁에 집에 와서 바로 마셔봤는데 독특한 향이 났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일반 맥주보다 비싼데 양도 적어서 아쉬웠다. 일반 맥주보다 훨씬 비싼 맥주인데 수제맥주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무 양이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원래 우리는 개항장거리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었지만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서 주차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어 개항장거리는 다음에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인천축구전용구장의 주차장은 지하주차장이었다. 예전에는 지하철로 왔기에 몰랐는데 지하주차장이 있었고, 마침 홈플러스가 쉬는 날이었는지 주차장이 붐비지 않아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좀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서 그런 것이니 경기 직전에 오면 당연히 한정된 주차장은 자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전용 엘리베이터다.


주차 후 어디로 가야 주차장일까 두리번거리는데 축구 경기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경기가 있는 날에만 운영하는 엘리베이터라 경기장 전용 엘리베이터라고 써 놓은 거라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엘리베이터는 경기장 입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진짜 경기장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말도 안 되는 편리함에 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블루마켓 입구. 블루마켓은 문을 통과해 2층으로 올라가면 있다.


엘리베이터에 놀란 가슴을 안고 이번엔 인천의 오피셜 스토어 ‘블루마켓’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 입장했다가 길게 줄을 선 인천 팬들을 보고 광주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조용히 밖으로 나왔었다. 괜히 안 좋은 소리 들으면 어쩌나 가지 말까 싶다가 그래도 구경해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인천팬은 아니지만 돈 쓰러 온 건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싶어 당당히 입장줄에 섰다.


너무 멋진 경기장 뷰.


블루마켓의 입장을 대기하면서도 경기장을 참 잘 지었구나 싶었다. 바로 경기장의 전경이 보이는 통유리 덕분이었다. 경기장 쪽을 벽으로 막지 않고 통유리로 두었는데 위치가 너무 절묘해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여기에 서서 유니폼이나 굿즈를 사기 위해 기다리며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천뽕이 가득 차올라 하나 살 거 두 개 사는 일이 발생할 것 같았다. (물론 난 인천팬이 아니라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친절한 직원분의 인사와 함께 입장한 블루마켓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인천의 20주년 굿즈를 사기 위해 분주했다. 단순히 기념 유니폼만 나온 것이 아니라 유니폼, 맨투맨 등 다양한 형태로 굿즈가 나와서 선택의 폭이 넓었다. 이런 부분은 우리 광주가 20주년이 되면 꼭 본받았으면 좋겠다.


원정석에서 본 경기장.


이제 원정석에 입장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원정석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붕이 없어서 비나 눈, 뜨거운 햇빛을 전혀 피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날은 그림자가 원정석을 가려주어 큰 걱정 없이 쾌적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매점은 불편했다. 원정석에는 따로 매점이 없어서 경기장 옆에 있는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작은 편의점이나 푸드트럭을 이용해야 했는데 줄을 오래 서 있느라 전반전 끝나고 물 사다가 후반전을 조금 놓쳤다.


인천 서포터들은 언제나 열정 넘친다.


경기는 광주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가며 드디어 이기나 싶었지만 인천이 동정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이 났다. 이로서 우리 광주는 승점 1점을 얻었지만 7경기 무승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지난 시즌과 다르게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인천에게 승리하지 못하는 건 강등을 피해야 하는 광주에게 좋지 못했다. 상위권 팀들에게 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쳐도 우리보다 밑에 있는 팀들에게 지거나 비기며 순위가 뒤집히는 일만은 피해야 했다. 점점 무승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다음에는 제발 이기자!


승리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인 월미도로 향했다. 맨날 말로만 듣던 월미도를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여자친구가 삼치구이가 먹고 싶다며 월미도를 가자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삼치구이집이 있는 삼치거리는 전혀 다른 쪽이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월미도는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이 날은 일상복 대신에 유니폼만 입고 돌아다녔는데 월미도의 강한 바닷바람과 흐린 하늘 때문에 너무 추워 조금만 이동해서 사진 몇 장 찍고 후다닥 차로 돌아와 우리의 원래 목적인 삼치구이를 먹으러 갔다.


월미도는 날 반기지 않았다.
이게 그 유명한 월미도 바이킹인 듯했다.


인천에는 개항장거리, 차이나 타운, 삼국지 벽화거리에 삼치거리까지.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거리가 더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간 곳은 삼치거리에서 가장 맛있다는 인천집. 인천의 삼치거리에서 삼치구이를 파는 인천집. 가게는 저녁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뼈와 가시가 전혀 없는 순살 삼치구이도 팔았는데 이건 둘이 먹기에는 양도 많고 술안주 느낌이라 밥을 먹으러 온 우리는 대왕삼치구이를 시켰다. 이건 뼈와 가시가 있다. 맛있게 구운 거대한 삼치와 솥밥 덕분에 과식했다 싶을 정도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블루마켓에서 산 귀여운 유티 마그넷과 대왕 삼치.


우리가 오늘 방문했던 차이나타운, 개항장거리, 월미도, 삼치거리 모두 인천축구전용경기장과 근접해 있었다. 중식스러운 중식을 먹을 수 있는 차이나 타운, 골목 사이사이 다양한 볼거리와 예쁜 카페가 가득한 개항장거리, 바다와 바이킹이 있는 월미도, 밥과 술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삼치거리까지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인천 원정은 볼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했다.


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



성형수술 한 유티 겁나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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