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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2. 2022

엉덩이 악기

우리 집은 날마다 엉덩이 악기(방귀)가 연주된다.


어떤 집은 엉덩이에서 연주할 신호가 올 때, 화장실에 가서 해결을 하고 오기도 한다던데, 우리 집은 어느샌가 자유롭게 생리현상을 분출했다. 남편, 나, 아이 등 서로의 관악기가 다르다 보니 다른 소리를 내는데, 아이의 연주는 경쾌하고 맑아서 들어줄만한데, 남편의 경우는 소음이다.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예고 없이 연주되는 엉덩이 악기 소리에 서로 질색 팔색 하기를 하루에 여러 번이다.


주로 오케스트라 연주는 모두의 일상이 끝나는 저녁에 이루어지는데, 내가 할 땐 괜찮고, 남이 할 때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매너가 없다고 타박한다. 그렇게 누구도 고칠 생각 없는 무의미한 전쟁이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핸드폰으로 어떤 영상을 본 건지 이런 제안을 했다.


"엄마 우리도 미안합니다댄스 추자”

"그게 뭐야?"

"누군가 방귀를 뀌면,  순간 미안합니다. 춤을 추는 거야."


아이의 말이 기발했다. 댄스와 방귀를 만나게 하다니...


"괜찮은 생각 같은데... 여보 앞으로 방귀 뀌는 사람 미안합니다. 댄스 추는 거 어때?"

"좋아."


그 약속은 그날 저녁 바로 실행되었다. 아이가 자려고 침대에 가는 길에

'뽕'

소리가 났다. 미세한 소리였다. 아이는 내가 못 들었을 줄 알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이거 무슨 소리야?"

아이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어떻게 하기로 했지?"


아이는 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뉴진스의 안무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무슨 <방귀 페스티벌>에 온 듯 아이도, 나도 신이나기 시작했다. 잠이 다 달아난 축제의 시작은 방귀 폭죽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의 관악기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늘 그렇듯 무성의하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평소라면


"윽~ 정말 싫어. 뭐 하는 거야?" 타박했겠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며

"<미안합니다> 댄스 춰야지."라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슈퍼 주니어의 쏘리쏘리의 안무의 일부인 두 손바닥을 비벼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듬을 붙여가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노래를 불렀다. 큰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는데, 마당극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의 춤은 웃음 버튼이었다. 평소였으며 그저 불쾌하게 끝났을 상황이었는데, <미안합니다> 댄스가 이어지니 웃으며 끝낼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엉덩이 악기는 연중무휴였고, 우리의 댄스는 날이 지날수록 진화해갔다. 이런 식이면 우리 집은 댄스 전문가가 양성소가 될 것 같았다. 막춤이라 그건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날마다 천안흥타령축제였다.


10년 넘게 고치지 못했던 우리의 생리현상. 늘 불쾌하고 서로를 지적하기에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아이의 제안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선물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었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중에서


모기에 물렸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기에 물린 건 살아있다는 증거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시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아이가 잇샤처럼 그런 시선을 선물했다.

엉덩이 악기가 연주되는 이상 우리의 삶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러니

풍악(엉덩이 악기)을 울리고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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