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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18. 2022

처음, 실리콘밸리의 교육을 듣다

실리콘벨리의 교육


3년 만에 실리콘밸리에 사는 친구가 한국으로 놀러 왔다. 전에는 일 년에 한 번씩은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볼 수 없다니 서로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을 보며 실감했다.


A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미국의 문화가 궁금해 기자처럼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우리 아이는 학교 끝나고, 학원을 다니는데 숙제가 많아서 너무 힘들어해. 네 아들의 일과는 어때?

학교 수업 끝나면 놀이터에서 놀고, 운동하러 다녀. 럭비 하러 가자는 친구, 축구하러 가자는 친구, 농구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그때그때 참석해.

주말에도 거의 스포츠 클럽 경기가 있어서, 그 스케줄이 메인이야. 캠핑 가거나.


-학원 다니는 친구들은 없어?

거의 없어. 인도에서 온 아이들은 종종 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 해. 끝나면 놀이터 가거나 운동 가는 게 다야. (9살 아이)


-학교 수업은 안 어려워?

학교에서 아이의 수학 실력이 조금 부족하거나, 리딩을 힘들어 하면 교사가 잘 지켜보았다가 그 친구들을 따로 모아서 30분 정도 보충 학습을 해. 아이가 부족한 걸 채워줘. 그래서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는 것 같아.


이야기를 들을수록 미국은 학창시절에 스포츠클럽에 많은 비중을 두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시작이 궁금했지만 친구도 이유를 잘 모른다기에,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그런데 유튜브마저도 한국인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대입에 에세이와 스포츠클럽 활동 이력이 중요하게 차지해서라고 했다. 처음엔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의견이 맞나 물어보았더니 아니란다.

자기도 중,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열심히 스포츠 활동을 하는 지인의 아이들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단다. 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이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그것이 삶의 일부분이 되면서 아이 스스로 축구에 애정이 생겼단다. 애정이 생기니 더 오래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더 좋은 팀에 들어가고 싶어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좋은 스포츠클럽에 가입하고 싶어 열심히 연습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그 시간에 공부도 한다고 했다.)


그 답변을 듣는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 문화권에 있으니 모든 공부의 결말은 대입을 위한 것이고, 대입과 관련 없는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아해서 하는 스포츠 마저도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한다고 해석했다.


생각의 틀이 딱 정해져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것이 충격적이었다. 친구의 말을 통해 이해는 했지만, 사실 그 문화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알 수 없는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더불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모두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이지만, 미국은 좋은 대학이 목표인 아이들은 소수이고, 컬리지에 들어가서 그때 뜻이 있으면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차선책이 있고,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좀 편안하게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가 요즘 내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밖에 안 되었는데, 공부량이 많다고 여겨졌다. 버거워하고, 체력적으로 힘겨운걸 엄마인 나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갑자기 어려워지는 중학교 수업을 위해 어린아이에게 견디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내가 너무 별로였다. 그래서 한동안, 오랜 시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내 아이가 대학에 안 가도 되지.'

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과정은 참아가며, 버티며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잖아.'라는 생각이 모든 과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왜 대입에 열성적인 엄마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그것에 자유롭지 못할까? 무엇인 두려운 것일까?



다수의 생각에서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국처럼 아이 친구들이 놀이터를 가고 스포츠를 한다면 나도 그랬겠지만, 한국 안에서 학원을 보내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시작은 아이가 원해서 한 것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온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도 내가 아이와 한국에 살게 되면, 좋은 학원, 좋은 학습지 열심히 알아보는 엄마가 되었을 것 같아."


인간의 환경적 동물이니 그럴 수 있겠지만

친구를 만나 다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처한 환경을 탓하기만을 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교육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글로벌 인재로 자라는 방법! 실리콘밸리 학교의 '질문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 사피엔스 스튜디오>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질문법이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트래트포드 스쿨에서는 입학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1학년 학생들에게 처음 꼭 하는 수업이 있었다.


얇은 질문,
 답은 책 안에 있어요. (피상적인 질문)
두꺼운 질문,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해요. (깊이 있는 질문)



학기 초에는 1학년이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질문의 형태가 뭔지, 질문이 왜 중요한지, 선생님이 질문의 형태를 알려 준다고 했다.

얇은 질문의 예를 아이에게 묻자,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든다.

한 친구가 발표한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요?"

두꺼운 질문의 예를 묻자 한 아이가 " 넷은 왜 낚시하러 가지 않았을까요?"라고 답한다.



이 부분이 놀라웠다. 입학한 친구들에게 처음 하는 교육이 질문법이라니...

어른이 된 나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교육이었다.


질문의 형태가 두 개가 있다는 것.

그것을 구분하며 생각의 온, 오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살면서 쭉 가져갈 수 있는 의미 있고 본질적인 교육이었다. 이것이 미국의 교육목표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한 이야기도 비슷했다. 아들 학교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들이 답을 할 때, 선생님과 다른 대답이나, 기발한 생각 모두에 "그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다른 방향의 생각인걸."이라는 피드백을 한다고 했다. 그런 교육에서 아이들은 점점 자기만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서로 발표하려고 손을 든다고 했다.



여기서 얻은 메시지를 통해 한국(판교)에 살고 있는 내가,

실리콘밸리의 교육을 방 안으로 가져와 아이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단체를 바꿀 힘은 미미하나,

내 아이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가능했다.


-


평소 나는 아이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아이가 하는 답변들은 단답형이고 과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더 묻는다. 내 성향 자체가 과정이 궁금하고,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어제 집에 돌아온 아이가

"엄마 나 복숭아 아이스티 24개 사가야 해."라고 말했다.


아이 스스로 그게 학교에서 어떤 상황에 쓰여서 필요한 건지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준비물인가 보다 하고 사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왜 필요한 건지 궁금했다.


"그게 왜 필요한 거야?"

"학교에서 <학생들이 만드는 수업>을 진행 하는데, 내가 아이스티 준비물을 택했어."

"학생들이 만드는 수업에서 무엇을 하는데?"

"국사 수업인데, 고종이 커피와 디저트를 즐겼대. 그래서 거기에 힌트를 얻어서 우리는 커피를 못 마시니까, 코코아나 아이스 티, 크래커, 빵 같은 걸 먹기로 했어."


그때서야 왜 아이스티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아이가 아이스티를 골랐는지도 궁금했다.


"너는 왜 아이스티 골랐어?"

"친구가 먼저 종이컵을 한다길래, 남는 거 했지."

"남는 거 한 것도 있지만, 빵도 아니고 아이스티 고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아이스티 좋아하잖아. 하다가 남으면 내가 집에 가져와서 먹으려고.."


나는 아이의 음료 취향을 알고 있어 그 답변에 웃음이 났다.


복숭아 아이스티도 찾으려면 없다고 동네 편의점을 다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아, 결국 큰 마트에 들렀다. 결국 티백 형태가 없어 통으로 구입했다. 따듯한 물을 보온병에 담고, 가루를 담을 수 있도록 숟가락도 챙겨 넣었다.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수업을 들어본 적 없지만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고, 수많은 생각을 해야 다양한 지식이 연결되고,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질문을 자주 해왔고, 그것이 실생활에서 녹아 있어서 그런지 아이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자연스러웠다.



<프리츠 한센> 전시를 보고 온 날에는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 아름다움이 찰나가 아니라 영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야 할까?


라는 글귀가 너무 멋있더라.


"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뭐라고 생각해?" 물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다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마음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아름다움이잖아."라고 답했다.


나는 노을도 찰나고, 구름도 찰나여서 영원한 아름다움은 물건으로 생각해봐야 하나 싶어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답변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


아이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교육을 받을 순 없지만

판교의 아파트 안에서

질문하는 삶을 살 순 있다.




인생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보다

내 발 밑에 있는 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의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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