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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9. 2020

생일 법안을 발의하다

D-363


아이는 생일이 지난 다음날부터 다음 해의 생일을 기다린다. 핸드폰의 메인 창에 디데이를 설정해 놓는다. 내가 어릴 때에도 생일은 크리스마스트리조명처럼 반짝였다.     


초등학교 3학년생일, 엄마는 양배추를 반으로 잘라서 은박 포일로 싸서 제일 좋아하는 츄파춥스 사탕을 가득 꽂아 주었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본 걸 그대로 만들어 주었다. 김밥, 떡볶이, 치킨, 떡, 젤리 등 별다를 것 없는 음식들이 모여 있었지만 평소에는 한 가지씩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으니 생일은 그것만으로 특별했다.    


평소에는 교실 안에서 발표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루거나, 수학 문제를 잘 풀어야 하는 등의 기술이 돋보여야만 주목받지만 생일만큼은 아무 조건 없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머리에 반짝이는 산 (고깔모자) 하나를 얹고 상 가운데에 앉기만 했을 뿐인데 모두들 나에게 오랜 시간 시선을 주었다. 12명의 산타가 온 듯 친구들이 준 선물들을 풀어보는 시간들도 달콤했다. 여의도 불꽃축제처럼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서 생일은 시든 꽃처럼 시큰둥해졌다. 복작복작 모여 대화를 나누던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드니 생일날은 멀어진 지인들이 전해주는 고마운 기프티콘으로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남편이 혹시라도 내 생일을 잊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보내는 날들을 지나 내 생일 선물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깨닫고 미리 가지고 싶은 선물을 남편에게 주문하는 시기까지 와 있다.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맞이했던 그런 기분의 생일은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의 도로를 후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면서 일상에서 피고 지는 아이의 말 꽃을 기록했다. 그 기록들을 모아 원고를 썼고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쓰는 동안 ‘이게 맞는 걸까?’ 수많은 고민을 하기도 하고 쓰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다. 한 가지를 지속하지 못했다.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다. 쓸수록 더 쓰고 싶어 졌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내 삶의 주인도 아이였다. 생일잔치처럼 모든 순간 아이에게 시선을 향해야 했다. 생각과 몸 모두를 아이에게 써야 했다. 그래야 한 생명이 조금씩 자라날 수 있었다. 육아라는 무대에서 늘 조연처럼 살다가 하루 중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주연이 된 것 같았다. 모니터 속 흰 종이는 무대였고 글자들은 연기 중이었다. 그렇게 35개의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 마무리를 지었다.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시간 속을 뚜벅뚜벅 걸어 결과물을 만들었다.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출판사 대표님과 전화를 하는 동안 심장이 드럼 연주를 했다.     


몇 년 전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안고 투고를 한 적이 있다.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거절의 메일들을 정독하기에 바빴다.  그때 어떤 점이 부족한지 장문의 글로 섬세하게 답을 주신 y대표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많은 원고 속에서 스쳐가는 사람이었을 것인데도 너무 정성스럽게 답해주셔서 마음의 호수에 어떤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었다. 그 피드백으로 더 발전하고 싶었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원고는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책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나름의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터라 출판사에서의 연락은 다시 아이로 태어나는 듯 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원고의 계약서를 쓰기 위해 편집장님과 약속시간을 정했다. 서로의 일정을 조절하며 논의 끝에 출판사 대표님이 2월 5일에 만나자고 하셨다.    

2월 5일이요?

2월 5일.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대표님은 알 리 없었다. 어떤 날은 뭘 해도 자구 실처럼 엉키고 넘어지는 날이 있다. 어떤 날은 모든 일들이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2월 5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오랜 시간 꿈꿔온 책 계약을 생일날 하게 된 것이다. 오후 1시 시청역 폴 바셋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가서 그 순간의 기쁨을 온몸 켜켜이 스미게 하고 싶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대화들, 커피 향, 심지어 의자를 미는 소리까지도……. 다 담아두고 싶었다. 노트에 일기를 쓰듯 몇 자 적다가 너무 떨려 손에 땀이 나 멈추었다. 처음 만나는 출판인들. 독자로서 늘 동경만 하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여는 순간이었다. 14년 전 소개팅 이후로 낯선 이와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대표님과 편집자님 두 분이 들어오셨다. 나는 피아노의 검은 음반처럼 약간의 흥분이 튀어나왔다. 허둥대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원고가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마음속에서 계속 물어보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자신 있게 행동하라는 시인 언니의 말을 실행할 수 없었다. 자꾸 고맙고 고마워서 목마를 태워드리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마치 편집장님을 인터뷰하듯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표지 디자이너가 따로 있는 건가요?

제 책 전에 어떤 책이 출간 예정일까요?   

  

그렇게 말이 많았던 계약을 하고 나오며 ‘왜 그런 거야?’ 후회를 하기도 했다. 얼마나 떨었는지 계약서의 주소 란에 달달 외우던 집 주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병의 와인을 마신 듯 기분에 취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동네에 도착하자 디너쇼의 2부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들러 스테이크와 샐러드, 파스타 그리고 진짜 와인을 먹었다.    


오후에 있던 일들을 무용담처럼 털어놓는데 남편은 꽃다발과 카드를 꺼내 글로 내 마음에 폭죽 터트렸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아이가 가방 안에 넣어둔 작은 네모의 색종이를 내 머리 위로 흩뿌려주었다. 꽃가루였다. 가요톱텐에서 일등을 한 것 같았다. 이어지는 아이의 요요쇼까지, 즐거움은 끝이 없었다.   

    

서른일곱 번의 생일이 있었다. 그 안에는 지루하고 쓸쓸하고 외롭던 생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생일만큼은 연출을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던 생일이었다. 내 생일의 흥행작이었다.  기다리던 좋은 일이 더해져 앞으로도 이런 날은 재방송될 것 같지 않았다. 생일을 멈추고 싶은 날이었다.     

그냥 스쳤기만 했던 아이의 생일날의 말이 떠올랐다.    



" 생일, 이틀 하면 안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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