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가져온 그림
에어비앤비로 고른 스웨덴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자 그 집만의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했는데, 마음이 좀 차분해지니 집 안 구석구석에서 주인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특징적인 것들 3가지를 소개해 본다.
1. 해골을 수집했다.
2. 곳곳에 그림이 많다.
3. 아이의 방에 거대한 초콜릿 상자가 있었다. (그 나라에서 유명한 제품인 것 같았다.)
장식품이 가득했던 선반에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었다. 책, 화분, 목걸이, 컵, 피겨 등등.
그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건 해골소품이었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아이 방에도 각각 다른 해골을 보며 상상했다.
'영화 코코의 영향일까? 주인은 왜 해골을 좋아할까?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것일까?"
해골 위의 LOS CABOS라는 글자를 보아서는 멕시코 관광지에서 사 온 기념품 같았다.
실버톤의 반짝이는 해골은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이 떠오르기도 했고,
<해골이 딸국딸국>이라는 그림책도 떠올랐다.
해골이 샤워를 할 때도 이를 닦을 때에도 유령이랑 놀 때에도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숨을 참거나 사탕을 먹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고민이었다. 어느 날 유령이 제시한 방법으로 딸꾹질을 멈추게 되는데 그건 바로, 해골에게 거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딸꾹질을 멈추었다는 이야기.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온 집에 그림이 가득했다. 거실 액자 안에 넣은 그림뿐 아니라, 나무 자석으로 포스터들을 붙여 놓았다. 주방에는 흑백의 채소 그림이 있었고, 엘피판 위에는 오륜기를 모티브로 한 포스터가 있었다. 아이 방에는 블랙과 주황의 색대비가 돋보이는 기차 그림이 있었고, 안방에는 동물그림과, 건축 포스터가 있었다.
어디서나 쉽게 구하는 포스터를 테이프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위, 아래로 나무 프레임을 붙이니 순식간에 격조 높은 액자가 만들어졌다. 유리로 된 액자에 넣고 빼고 하려면 약간의 수고로움이 더해지지만 나무자석 액자는 언제든 그림을 바꿔 낄 수 있어 좋았다.
집에 옷을 입히듯 분위기를 변신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 집에서 받은 영감을 여행이 끝난 뒤 집에 돌아가자마자 적용했다. 내게도 좋아하는 포스터가 많이 있었다.
스웨덴 미술관에서 구입한 포스터를 새로 산 나무 액자에 껴서 붙여 놓기도 했고
거실에는 좋아하는 루시 작가님의 전시 포스터도 걸어 놓았다. 평소에는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었는데 한 결 멋있어져 뿌듯했다.
<Achim 매거진>을 펼치면 나오는 가을느낌 물씬 나는 사진도 걸어 보았다. 자석액자 하나 샀을 뿐인데, 그림들이 정장을 입은 듯 근사해졌다. 만약 스웨덴의 그 집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아이디어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그림을 바꾸느라 벽을 비워났더니, 남편이 뭔가 허전하다고 알아챘다. 이제 벽에 그림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 삶으로 스며 들었다. 여행이 가져다 준 작은 변화였다.
그렇게 우리는 스웨덴에서 그림(액자 아이디어)을 훔쳐왔다.
그 집에서 발견했던 신기한 장면은 아이 방에 걸려 있던 커다란 초콜릿 상자였다. KEX라는 초콜릿 상자를 보며 아이가 이 초콜릿을 얼마나 좋아하길래 벽에까지 붙여 두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얼핏 생각했을 때, 내가 먹어본 킷캣과 비슷할까? 상상하기도 했다.
어떤 계절에 어떤 상품으로 나왔던 것일까?
크리스마트 한정판이었을까?
핼러윈 한정판이었을까?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방의 거대한 초콜릿 상자는 잊혀지지 않는 위트 있는 장면으로 마음에 자리잡았다. 다음 날, 마트에 들렀는데 집에서 보았던 패키지의 초콜릿이 보였다.
다른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 혼자만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이거 우리 집에 있는 거잖아. 꼭 사야 돼. 꼭 먹어야 돼."
"그래? 이런 게 있었어?"
남편과 아이는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맛이 어떨지 몰라 일단 한 개를 사서 먹어보았다.
띵호야
너무 맛있었다. 일단 킷캣과 비슷한 맛이지만, 와플 같은 과자가 더 바삭하게 씹히고 밀크 초콜릿이 너무 달지 않게 감싸고 있어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아마도 스웨덴에서 인기 있는 초콜릿 같았다.
여행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지 않는 한 그 나라에서 핫한 것들을 알기 어려운데, 그 방 주인인 아이가 내게 건넨 말처럼 보물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모두 맛본 뒤, 맛있다며 엄지를 올렸다. 그 후 이 초콜릿은 지인들의 선물로 당첨되었다.
아이의 반 친구들, 학원 친구들, 남편의 회사사람들 내 친구들에게 이 초콜릿을 선물했다. 손바닥만 한 초콜릿 8개 세트가 들어간 거대한 초콜릿을 10개 낱개로
80개나 들고 왔다.
다양한 간식을 맛보고 최종 선택을 한 이 초콜릿은 이국적인 패키지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누군가 콕 찍어서 알려준 아이템이 아니라 공간에서 찾아낸 것이었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 순간은 쉽게 잊힐 수 있지만, 서사가 있는 장면은 오래 기억된다.
혹시 스웨덴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초콜릿을 꼭 맛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