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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pr 14. 2023

6년 동안 부캐 : 이빨요정이 되다

처음부터 아이를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6살, 아이의 앞니가 빠졌다.

내가 어렸을 때, 문고리에 실을 걸고, 이에 실을 묶어 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릴 때, 이를 뺄 때면 공포가 밀려왔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프지 않게 이를 빼는 방법이 있었다. 꼭 공포스럽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이가 많이 흔들릴 때까지 두면 작은 힘으로도 쏙 빠졌다.  


아이의 첫니가 빠지자 말에 바람이 들어와  말이 풍선 같아졌다. 같은 말도 동글동글 귀여운 발음이 되었다. 어느 날,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데, 그 친구가 "너네 집에 이빨요정 왔어?"라고 물었다. 아이랑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산타는 알았지만 이빨요정은 몰랐다.

이빨요정은 뭐야?



자기 이가 빠진 날, 이빨 요정이 선물을 놓고 갔다는 친구 아이의 말에 우리 딸은 내게 "왜 우리 집에만 안 오냐고?" 물었다. 그때부터였다. 이이를 속이긴 시작한 건... 나는 그날부터 이빨 요정이 되어야 했다.


6살부터 시작해 7살, 8살, 9살, 10살, 11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이는 계속 빠졌다. 분명 나의 기억에 이 빼는 경험은 한두 번이었는데, 몇 년에 거쳐 아이의 이는 계속 빠졌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처럼 날짜가 딱 정해져 있다면 좋으련만 이는 언제 빠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가 빠진 날 밤이면 아이를 재우고 나와 거실에 작은 조명을 켜고 내가 아닌 척, 글씨체를 바꿔 편지를 썼다. 아이의 기쁨을 위해 하는 거짓말은 달콤했다. 철저히 들키지 않아야 했다. 이가 빠지면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라는 것을 이빨요정인 내가 가르쳐 주어야 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머리맡에 놓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가 갑자기 빠져 미처 준비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 땐, 나의 간식창고에 있던 킨더 초콜릿을 꺼내 베갯속에 넣어 놓았다. 어떤 날은 아이의 샴푸가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 울지 않고 집에서 이를 뺀 용감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가 빠지는 횟수가 늘수록 나의 글감도, 선물의 아이디어도 바닥이 났다.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편지 봉투에 3000원을 넣기도 했다. 아이가 클수록 현금을 좋아했다. 그렇게 누군지도 모르는 이요(이빨요정)와의 우정을 쌓아가던 아이가 궁금증을 품기 시작한 건, 10살 때부터였다. 종이에 그날 빠진 이를 넣어 두고는 엄마 몰래 편지까지 적어 베개 아래에 놓고 잠이 들었다.




편지 안에는 이사를 와서 자리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과 함께 다양한 질문이 적혀 있었다.


"너는 몇 살이니?

실제로 존재하니?

어디에 사니?"


답을 쓸 수 있는 칸까지 마련한 아이의 모습이 진지해서 귀여웠다. 그 질문을 볼수록 더 완벽한 이요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에게 이요와의 우정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렇게 많은 이가 몇 년에 걸쳐 계속 빠질지 모르고 시작한 이요 역할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또래의 다른 가정은 이빨요정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는 애가 둘이잖아. 그래서 이빨요정은 앞니가 빠질 때만 온다고 얘기했어."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그렇게 현명하다니.... 엄마에게도 융통성이 필요했다. 미처 미래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끝까지 거짓말을 계속해야 했다.


그렇게 5학년이 될 때까지 이요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캘리그래피를 한다고 스케치북에 다양한 손글씨를 써 놓은 것이 있었다. 그걸 아이가 보더니...


"혹시, 엄마가 이요야?"

"응? 내가?"

"이것 봐. 이 글씨 이요 글씨인데..."


역시 거짓말은 흔적을 남긴다고...

스케치북에 이요체가 있었던 것이다. 거짓말을 들킨 것에 놀라 말이 빨라졌다.


"응 사실. 엄마야. 들켰네.

근데 엄마가 너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이를 뺄 때마다 네가 이요를 기다렸어.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 엄마가 이요가 아니었다면 너에게 수많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겠지? 베개맡의 선물을 볼 때마다 어땠어?"

"좋았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 기분을 선물하고 싶어서 그랬어."


초등학교 2학년 남편의 실수로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던 아이가 이요의 존재를 5학년이 되어서 알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별말하지 않고 수긍을 했다.


"어쩐지. 나 사실, 언젠가는 이요가 엄마가 아닐까? 해서 실험을 해보려고 했거든. 내가 이를 빼고 조용히 베개에 넣어 두려고 했어. 그런데 이를 혼자 못 빼겠더라고... 그래서 못 알아봤어."


후일담을 들으며 우리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시작한 이요 생활. 6년 동안 들키지 않기 위해 가슴 졸였다. 그리고 아이가 편지를 읽고 놀라는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의 이는 빠지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이요도 찾아오지 않는다.




살다가 아이에게 힘든 날이 오면 나는 또다시 이요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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