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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pr 19. 2023

엄마를 인터뷰하다

엄마를 인터뷰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다. 글쓰기의 영역도 다양하기에 어떤 글쓰기가 나의 적성에 더 맞을지 궁금해 시, 동시, 소설, 평론, 인터뷰 등 다양한 것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컨셉진에서 운영하는 <미션캠프>를 알게 되었다. 잡지 에디터로서 해야 할 일들에 흥미가 생겼다. 그중 4주 차 과제가 인터뷰였다. 김경희 편집장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 자체가 큰 배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중 부모님을 인터뷰하기를 권했다.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엄마와 정말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엄마를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어느 날은 올케가 "어머님은 치킨 가슴살 좋아하시잖아요."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엄마가?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몇 십 년을 같이 산 나는 엄마가 치킨의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정말 몰랐다. 늘 좋은 건 우리에게 내어주고, 과일도 깎고 남은 뼈만 먹었게기에 그게 엄마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올케는 엄마의 행동을 관찰하며 엄마의 취향을 알아챘다.


그 일이 충격이었기에, 어쩌면 이번 과제가 나에게는 엄마를 깊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엄마랑은 한 번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기에 각 잡고 이야기하는 인터뷰 형식이 걱정되기도 했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뜨개질 하는 엄마.

거미처럼 끊임없이 실을 엮는 엄마.


요리하는 모습보다 뜨개질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자라, 그 모습이 질리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떠 준 손가방이 예쁘다며 부러워 했지만, 나는 싫다고 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너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뜨개질인(옷, 모자, 가방 모든게 뜨개질로 만든 것) 엄마의 취향이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왜 뜨개질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 시간만 할애하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노력하지 않았었구나 반성하기도 했고, 인터뷰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의 삶을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어 좋았다.


엄마가 아닌, 한 여성의 서사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



2022년 4월의 어느 날

수요일 9시 30분 엄마를 인터뷰했다.





제목 : 엄마의 덕질

에디터 : 고하연






어릴 때 어떤 걸 잘했어?

그림도 좀 그렸고, 학교 다닐 때 미화부장이었어. 교실 뒤에 작품을 걸고, 예쁘게 꾸미는 걸 했는데, 그 후로도 여러 번 미화부장으로 뽑혔어.




엄마가 처음 뜨개질.

 어릴 때도 뜨개질을 했어?

겨울이었는데, 벙어리장갑이 가지고 싶어서 양말에 구멍을 뚫어서 엄지손가락이 나오게 하고, 엄지 손가락 부분을 뜨개질로 해서 벙어리장갑을 만들었지.


 뜨개질하기 전에 어떤 걸 했어?

리본 자수, 퀼트, 십자수


 그런 것들을 어떻게 접했어?

결혼 전 아가씨일 때, 언니네 집 근처의 지하철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공방 같은 게 있었어. 리본 자수 가르치는 공방, 퀼트 가르치는 공방이 따로 있었어. 거기에 가서 한두 작품씩 해봤지.


 많은 것 중 뜨개질을 선택한 이유는 뭐야?

리본 자수, 십자수는 해봤는데 사용처가 많지 않았어. 액자로 거는 게 다였지. 스킬자수는 발판 정도 만드는 거로 한정되더라고. 액자로만 활용할 수 있어서 간단하게만 배웠어. 뜨개질은 할 게 많아. 소품, 옷, 하다 보니 끝도 없어.


 뜨개질은 언제부터 배웠어?

처녀 때부터. 목도리, 모자 같은 거 만들고, 결혼하고 너희 낳고 쉬었지.

너희 키우다가 너 나이 4~5살에 일을 시작했으니까 쭉 못하고, 17살 때쯤 일 그만두고 다시 시작했지.


 뜨개질은 어디서 배웠어?

실 집에 가면 실사면 가르쳐줘. 옷을 쭉 뜨다가 진동 파는 걸 몰라서 실 집에 가서 배우고, 집에 와서 또 쭉 뜨고, 그렇게 배웠어. 실 집의 실이 비쌌어. 실값 안에 배우는 비용이 포함된 거더라고. 다른 곳에서 실을 사 오면 안 가르쳐 줬어. 거기서 실을 사야 배울 수 있었어. 거기도 남겨야 하니까, 비싼 실, 수입사 등을 권해. 강사를 하려고 풀잎문화센터를 간 게 아니라 뜨개질 공식을 배우려고 갔어. 그래야 실 사다가 내 마음대로 뜰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게 직업이 된 거지. (현재까지 풀잎문화센터에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뜨개질로 제일 먼저 뜬 건 뭐야?

목도리, 모자, 큰 아이 돌 때, 카디건도 뜨고 바지도 떠서 입혔어. 둘째는 3~4살 때 조끼 떠서 입히고….


 만든 것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뭐야?

요상한 옷. 디자인이 특이한 볼레로. 뜨개 방에서 특이한 것을 주로 배웠어. 흔한 것은 남들이 다 입어서 별로였어. 특이한 걸 떠서 입고 나가면 “저건 뭐지?” 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우선 뒷모습을 보고, 앞모습을 보러 와. 그리고 “그거 뜬 거예요?”하고 물어.


 뜨개질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봐도 뜨개질 옷만 보인다고 하던 데….

맞아. 뜨개질 좋아하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야. 관심 없는 사람은 지나치는데….


엄마가 떠서 입은 것 중에 사람들이 예쁘다고 떠 달라고 한 것 있어?

여러 번 있는데, 안 떠줬어. 왜냐면 주문하는 사람이 나랑 몸매가 달라서 맞춰 뜨기가 어려워. 내 건 내가 입어보면서 뜰 수 있는데, 뜨개는 원단이 아니다 보니까 그 사람의 체형을 맞춰 뜨기가 어려워. 신축성이 있어서 맞춤복처럼 딱 떨어지지 않아. 그래서 돈을 받고 뜨면 여러 말이 나올 수 있어서, 안 떴어. 대신 가방 같은 건 몸에 상관없으니까 떠주지. 스카프나 볼레로 같은 것도 떠주고.


 일본여행할 때, 뜨개질 가게에 가서는 어떤 걸 느꼈어?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언어는 몰라도 기호만 보면 뜰 수 있는 게 신기하더라.


 뜨개어라는 외국어를 한 개 하는 거네. 외국어는 몰라도 도안을 보고 알 수 있으니….

(하하하하) 그렇지. 뜨개질 동영상을 보면 일본말, 중국말로 설명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몰라서 소리는 죽여놓고 뜨는 것만 봐. 그거 보고 뜨는 거야.


 영상으로 보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또 봐. 여러 번 보면 결국 되더라고.


엄마가 뜬 옷과 내가 선물한 책


풀잎문화센터를 간 이유는?

뜨개 공식을 배우려고 갔어. 뜨개 방에서는 귀찮으니까 잘 안 가르쳐 주고 어려운 건 자기들이 다 해줘. 소매 진동도 잠깐이면 하니까 그네들이 파주고, 쭉 몇 센티 떠오세요. 해. 그러니까 진도도 안 나가고, 내 것이 안 되더라고.

풀잎(문화센터)은 체계적이어서 1단계, 2단계, 3단계가 있어. 1단계는 간단한 것 가르쳐 주고, 2단계는 조끼 정도, 3단계는 게이지 공식을 알려줘. 게이지를 알려줘야 옷을 내가 뜨거든. 뜨개방에 백날 다녀야 잘 안 가르쳐줘. 거기엔 프린트물이 없어. 옛날식으로 알려줘서 체계적이지가 않았어.


 풀잎문화센터에서 3단계까지 다 배우면 무엇이든 다 뜰 수 있어?

뜰 수 있어. 근데 혼자 이론공부를 많이 해야 해. 거기서는 한 번 밖에 안 가르쳐 주니, 책 보고 하다 보면 공식은 비슷하니까 할 수 있어. 지금은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지.


 그 과정 다 밟고 자격증 따서, 처음에 학생들 가르치는 게 어렵지 않았어?

떨렸지. 교생선생님 같은 거지. 작품 하나 만들고 바로 가르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이해 못 하고 끝나는 일도 있어. 그래도 가르칠 때, 단계별로 하다 보니까 시간이 있어. 학생이 1단계 할 때, 내가 2단계 미리 공부하고 그랬어. 그렇게 준비하면서 했어. 지금은 경력 10년 차야.


 3단계 끝까지 배우는 사람은 많아?

자격증 따려는 사람은 몇 안 되고, 주로 기초만 해.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격증을 따려고 배워. 그런 사람들은 뜨기는 잘 뜨는데, 뜨개 계산법을 몰라.


 계산법(뜨개옷)이 뭐야?

폭이 50cm 옷을 떠야 해. 그러면 몇 코를 잡아야 하는지? 뜨고자 하는 실에 맞는 바늘로 10cm를 떠보면 그 안에 20코가 들어가지? 그럼 100코를 잡는 거야. 사람마다 뜨는 솜씨가 달라서 다 100코가 아니야. 코가 다 달라. 진동 파임, 브이자, 소매산 공식도 있어서 배워야 혼자 뜰 수 있어.

 언젠가 진동 파임 공식을 이해 못 해서 사위랑 같이 계산한 적이 있어. 계속 답이 안 나왔어. 알고 보니까 뜨개에만 해당하는 공식이어서 사위도 못 푸는 거였어.

풀잎에서 배웠는데 응용이 안 돼서 사위한테 물어본 거거든. 근데 이게 수학 공식이 아니어서 답이 안 나왔던 거야. 결국, 내가 알아냈어. 요즘은 새로운 형식의 뜨개 공식이 나와서 계속 공부해야 해.

 

뜨개 공식이 뭐야?

우리가 배운 방식이랑 달라. 인형 만들 때 우리는 머리, 몸통, 팔다리 따로따로 만들어서 잇는데, 포코그란데작가의 인형은 대부분 통으로 짜는 기법이라서 다시 배워야 해. 머리 부분이 어려웠는데, 오늘 다 하고 왔어. 어떤 수강생이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며칠 애먹었지. 머리를 통으로 짜는데, 부리랑 귀랑 눈이랑 동시에 짜야하니까. 몸은 쉽더라고. 몇 번 해보면 익숙해질 것 같아.


  뜨개질을 지금까지 계속하는 이유는 뭐야?

해서 완성품을 보면 마음에 들고, 옷을 사 입다 보면 똑같은 옷을 마주칠 때가 있어. 그게 싫었어. 잘 뜨든 못 뜨든 이건 하나밖에 없잖아. 혹시 디자인이 같은 뜨개옷이라도 색은 다르니까…. 그게 좋아.


 망한 건 어떻게 해?

풀어서 다시 떠.


 다시 뜨면 실이 쭈글거리진 않아?

풀어서 뜨고 세탁하면 똑같아져. 사이즈가 틀리면 맞는 사람 주기도 해.   


 뜨개 선물을 많이 하던데 누가 제일 반응이 좋아?

막내 이모. 자주 가방을 떠달라고 주문해. 이번에 또 주문했어.


 한 명의 팬이 있어도 큰 힘이 되는데 그 팬이 막네 이모네?

그럼. 큰 이모는 시큰둥해.


 실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어?

어마어마해. 투피스 하나에 십만 원이 넘게 들었어. 그래서 요즘은 콘사를 사. 큰 덩어리로 된 것. 실가게에서 콘사를 나눠서 파는 거거든. 콘사를 사면 비용이 저렴해.


 그동안 뜨개질 몇 개가 있나요?

옷이 몇백 개야. 안 입는 건 사람들 주면 너무 좋아해.


 하나가 끝나면 계속 뜰게 나오는 거야?

뜨개질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있어서 동영상 찾아보면 희한한 옷이 많아. 앞으로도 할 게 많아.


 창작은 안 하시나요?

도안 보고 뜨기도 바쁜데. 창작까지 뭐 하러 해?


워낙 실력이 좋으시니까 조금씩만 자기 생각을 담아서 창작품을 만들어 봐.

그럴까? 한 번 해볼게.




/


엄마가 뜬 노랑 옷



현재, 엄마는 좋아하는 뜨개질로 풀잎문화센터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친다.

노년에 뜨개질로 덕업일치의 삶을 이루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며 다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르치기 위해 배움을 지속한다.




책 <#낫워킹맘>에도 쓴 말이지만


부모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고, 성취하는 태도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취하는 부모의 모습이 필요하다.



엄마가 뜨개질을 좋아하는 모습을 내내 보고 자랐다. 엄마가 내게 꿈을 찾아야 한다고 교육 한 적은 없지만 엄마의 삶 자체가 그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사람은 행복하구나.

오래 그 마음을 잡고 있으면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구나.

더 잘하고 싶어 배우고 성장하는구나.


라는 막연한 말들을 엄마는 내 옆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 역시, 끊임없이 좋아하는 걸 찾고자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를 인터뷰하면서 나를 사랑해 준 엄마를 내가 사랑한 적 있었나? 되물었다. 엄마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칭찬하고, 표현한 적 있었나? 없었다. 나 살기에만 바빴다. 인터뷰라는 형식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나와 엄마는 여전히 서로를 잘 안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잘 모른다. 기회가  된다면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부모님을, 가족을 인터뷰하길 바란다. 친구에게 보였던 관심을 내 가족에게도 보여주는 일. 해보진 않아서 몰랐던,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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