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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22. 2024

왜 떨어진 나뭇잎을 그리나요?

초록이 점처럼 번지는 그림의 노트였다.


ZINE을 만드는 모임에서 처음 만난 S는 조심스레 자기의 노트를 펼쳤다.

“이건 제가 그동안 기록한 잎인데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S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노트 안에는 손톱처럼 작은 초록 이파리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0.9 x 2.2, 1.1 x 2.4cm 등 크기가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4, 5, 6, 7, 8, 9달과 1-30일 날짜가 적혀 있었고, 엑셀파일처럼 떨어진 이파리의 개수가 표시되어 있다.      


석화회

바로크 벤자민

이오난사     


식물학자의 노트를 본 기분이었다. 식물학자라고 하기에는 글자는 쌀알처럼 작았고, 그림은 앙증맞았지만. 떨어진 잎이라는 주제도, 날마다 기록하는 형식도 새로웠다. 이렇게도 기록할 수 있구나. 그때, 누군가 떨어진 잎을 기록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다 애정을 가지고 산 화분이라서 마음을 주며 돌보는데, 떨어진 잎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처음에는 하나, 둘 주워 버리다가 계속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냥 버리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떨어진 잎이 갈색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렸어요. 하나하나 생김새가 다 다르더라고요. 그걸 노트에 날마다 그리기 시작했어요.”     


모두 잠깐 멍했다. 그 말이 모두의 가슴에 스며든 것 같았다. s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노트를 보며 시간이 느껴졌다. 섣부른 생각보다 마음이 말랑해졌다. 여운이 오래 남았다.


떨어진 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을 만났다. 한 번도 마음 두지 않았던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s의 말을 들으며 마음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 안에는 그녀가 작고, 연하게 그린 나뭇잎들이 데굴데굴 구르듯 일렬로 놓여있었다. 비록 생을 마감한 잎이었지만 s의 그림으로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나뭇잎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떨어지는 것이고, 바닥에 떨어진 잎을 먼지처럼 여겼다. 쓸모를 다한 쓰레기일 뿐이었다.



모두에게 마음은 있지만 각자 사용처가 다르다. 그녀의 마음은 구석에 있는 것들, 쓸모를 다한 것들에 가 있었다. 오랜 시간 그곳에 마음을 주고 있었다.      


나는 왜 그 마음이 좋았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늘 새로운 상품을 사라고 아우성치는 광고는 피하고 싶어도 끈질기게 붙어 다닌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에 시선이 가고, 저 물건을 사야 하나? 를 고민하며 귀한 마음을 쓴다. 모두가 비슷한 곳에 마음을 쓸 때, 나 홀로 다른 곳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는 어떤 광고도 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마음을 빼앗았다.     


마음은 이렇게 다양하게 쓸 수 있구나. 떨어진 나뭇잎도 좋아할 수 있구나.

혼사 속으로 속삭였다. 동시에 거기에 마음을 쓰는 s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마음도 조물조물 빨아서 햇빛에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오염된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남들 다 보는 것 말고, 남들 좋다는 것 말고, 내 마음이 가고 싶은 곳, 내 마음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겠다. 세상에는 마음이 따라 가는 곳은 많지만, 마음 스스로 가는 곳은 얼마 없으니까.


마음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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