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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19. 2024

악플 받으면 어떻게 해요?

 ( 이토록 다양한 악플 )

처음부터 괜찮은 건 아니었다. 처음 악플을 본 날, 도둑을 본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밤에 잠을 이루기도 어려웠고, 며칠 동안은 우물에 갇힌 듯 허우적거렸다. 활발한 사람이었지만 내 몸의 햇빛을 걷어간 듯 우울한 사람이 되어갔다. 집에 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글 한 줄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


브런치에 쓴 글이 메인에 실리면서 몇 십만, 몇 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땐 아이에 관한 이야기여서였을까? 훈훈한 이야기들이 달렸다. 이렇게 따뜻한 공간이 있다니.. 호들갑을 떨며 세상의 긍정을 다 끌어 안았다. 하지만 그건 특수한 일이었다.

그 후, 공항에 관한 글이 노출되었는데, 그 밑에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무슨말을 하는거지? 모호했다. 그렇게 궁금하던 차에, 한 사람이 정확한 단어를 써어 이야기해서 알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그 글의 주제는 공항에서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팁을 담고 있었다.(지금은 상용화가 된 셀프체크인)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공항풍경을 묘사하고, 출국 전 먹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돈가스 이야기가 화근이었다. 하필 내가 간 돈가스가게가 사회적인 이슈가 있었던 돈가스 집이었던 것. 몰랐다. 알았다면 글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돈가스 상호명을 본 사람들은 그 부분만을 가지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전하고자 하는 글의 주제는 사라졌다.


연예인이 아닌, 내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어떻게 그걸 맛있다고 할 수 있냐는 것부터,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죠?라는 말까지... 나를 향한 화살에 깜짝 놀라, 그 글을 삭제했다. 남편은 뭘 그걸로 삭제하냐고 물었지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가게의 돈가스를 맛있다고 하며 광고하는 사람이(그들 의견) 되어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첫 악플이었다. 처음 겪는 일은 삶을 흔들 만큼 강력했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대로라면,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가게의 이슈를 다 알아야 한단 말인가? 억울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가게의 도덕성까지를 생각하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쓸 때 조심할 것. 상호명을 쓰지 않고, 대명사를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커피숍, 식료품점, 치킨집. 이렇게 말이다.


그 후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불특정 다수가 보는 건 두려웠다. 그런 마음에 글을 쓰지 못하다가 점차 마음이 아물어져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또 글들의 조회수가 올라갔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좋기보다는 두려움의 수치가 덩달아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글의 한 부분만을 보고는 한 세대를 통틀어서 욕하는 사람의 댓글이 달렸다. 그건 그 사람의 무례함이었지, 그 나이대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통과하며 비슷한 행로는 겪는데, 한 세대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다. 내가 공들여 쓴 글 아래에 비난의 글이 달리면 원래의 의미도 퇴색되었다.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되자, 지인이 "답글창을 닫는 건 어때요?" 제안했다.

"답글창 닫는 기능이 있었어요?"

"네."

그녀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바로 답글창을 닫았다. 그래도 처음의 답글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 번째, 또 다른 글의 조회수가 치솟았다. 나는 그 나라의 좋은 점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지만 이번에는 그 나라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의 답글이 올라왔다.


/


악플의 경험이 쌓이면서 내게도 마음의 변화가 찾아왔다.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게 되었다. 처음 악플을 받았을 때,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의 경험이 쌓이니 댓글의 양상도 눈에 보이고, 내 마음도 지킬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답글 중에는 내게 도움이 되는 글도 있었지만, 쓴 사람이 한 부분에 꽂혀서 쓴 감정적인 글, 원색적인 비난도 있었다. 그리고 악플이 달리기 시작하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건 선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다수의 의견이 노출되면, 그것이 전체의 의견이 되는 듯한 양상이 되었다. 이것이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의 축소판이었다.


쫄보였던 내가, 악플을 분석했다. 그렇다고 악플들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댓글이 달리면 눌러보기 어렵고, 계속 그 말에 사로잡힐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더 이상 그 글들로 인해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악플을 쓰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 삶을 산다. 나만 몇 달을 전전긍긍했다. 이젠 그들이 쓴 글은 그대로 두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악플이 모이면 사람들이 어떤 단어에서 그렇게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고, 상대가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악플에서 사람들의 심리도 배울 수 있다. 반응값은 여러모로 소중하다.


최근 지인이 내게 물었다.

"00님 저번에 악플 받은 적 있다고 했잖아요? 그 때 어떻게 했어요?"

그녀도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에 달린 글 하나 때문에 글 쓰기를 멈췄고, 아직도 무서워 글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일단, 처음에는 사람이라 안 힘들 수 없더라고요. 힘든게 맞아요. 저도 한 달은 힘들었어요. 그 마음을 잘 다독여 줘요. 그리고 계속 써요. 안 쓰면 00씨만 손해예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요."


악플경험도 쌓이면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필요하다. 앞으로 또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은 유명작가가 아니라서 책에 대한 악평도 없지만, 앞으로의 책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 지금의 마음을 꺼내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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