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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ug 26. 2020

거짓말의 농도

향기로운 남자였다. 남편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에게 향기는 사라졌고 메케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의 요요처럼 담배에도 요요가 있었다. 끊었던 담배를 한 대, 두 대 서서히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폭음하듯 폭연 했다. 아이와 난 아빠 곁에 있으면 훈제오리처럼 담배연기로 물들었다.


 함께 있을 때면 담배를 피우러 가느라 자주 우리 곁을 비웠다. 휴게소를 가서도, 대화중에도, 식사 중에도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담배를 싫어하는 두 여자에게 그는 담배를 피우러 갈 때면 늘 다른 핑계를 댔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잠깐 물 좀 사 올게.

잠깐 껌 좀 사 올게.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모두가 담배 피우고 올게라는 뜻의 다른 말이었다. 참 다양한 이유를 만들었다. 그의 눈빛과 어색한 연기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아빠 또 담배 피우러 가네.”


하루에도 여덟, 아홉 번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아빠를 기다렸다. 그 후 아이의 핸드폰 속 <비둘기처럼 사랑하는 아빠>는 <담배 아빠>로 바뀌었다. 저장하는 이름은 아이의 현재마음을 보여주었다. 아빠의 거짓말이 쌓여갔다. 아이는 내게 깨달음이 왔는지 이렇게 말했다.



" 아빠는 왜 날마다 담배를 폈으면서 안 폈다고 해? 다 알겠는데……."

" 엄마도 내가 거짓말하는 게 저렇게 다 보이겠구나."


“응, 잘 보여. 예린이가 아빠를 보면서 느끼듯 엄마도 예린이를 보면 딱 보여.”


아이는 그동안 스스로는 거짓말을 잘해서 엄마는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본인은 못 보는데 아빠는 잘 보였다. 본인의 행동은 안 보이는데 아빠의 행동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10살, 담배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짓말의 속성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 후라면 이젠 아이 사전에 거짓말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코로나로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하고 나는 약속이 있어 잠깐 집은 비웠다. 잠시 뒤 아이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몇 시쯤 올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했다. 대충이라도 알려달라고 말하는 아이의 생각이 보였다. 그 시간에 맞춰 계획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엄마, 나 아직 온라인 수업을 다 못 끝냈어. 양이 너무 많아.”


아이의 거짓말이 담배연기처럼 피어났다. 거짓말은 투명하지 않다. 불투명하고 얼룩이 있어서 다 보인다. 수업을 충분히 마친 시간이었다.



아이가 조금 더 어릴 때는 수업을 다 마치고 딴짓을 했다. 지금은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딴짓을 먼저 하고 수업을 했다. 사고체계가 더 섬세해진 것이다. 성장했다. 코로나로 나와 날마다 붙어 있기에 어떤 날의 엄마의 자리 비움은 아이에게 해방감을 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이의 귀여운 거짓말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본인의 거짓말이 여전히 엄마를 속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빠를 보고 깨달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의 속성을 안다고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거짓말할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말이다.

살아가면서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상대와 소통이 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는 아닌데 나는 맞는 상활일 때, 나는 좋은데 상대가 싫어하는 상황 일 때 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불협화음을, 소란스럽게 하고 싶은 않은 마음이 들어있다. 조화롭게 지내고 싶은 배려의 마을일 수도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싫어하는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 동글동글 귀여운 거짓말은 모른 체했다.  


어떤 날은 거짓말이 정말 필요한 날도 있다. 솔직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체크 원피스를 입고 외출을 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 원피스는 라인이 수작이네.”

“수작? 빼어난 작품 그 수작을 말하는 거야?”

열 살 딸이 수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놀라 그 의미를 물었다.

“아니 추리 책 보면 수작 부리다.라고 나오는데 그 수작.”


평소의 엄마는 원래 안 날씬한데 그 원피스만 입으면 허리가 잘록해서 날씬해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체크 원피스는 수작을 부리는 원피스라는 것이다. 솔직함의 농도를 연하게 할 수 없을까? 너무 짙은 솔직함은 마음을 멍들게 했다.





딸아 거짓말은 그럴 때 하는 거야!


 



수작 : 우수한 작품

수작 : 남의 말이나, 행동, 계획을 낮잡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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