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Aug 26. 2020

우리는 서로의 계기가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듯 우리의 삶은 친구 따라 빚어진 일들이 많다. 친구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삶의 선을 그려나간다. 친구 따라 피아노 배우고, 친구 따라 책을 읽고, 친구 따라 또 다른 친구를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하는 것은 늘 좋아 보이고 가지고 싶고 따라 하고 싶어 진다.


친구는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하다.


아이가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늘 새로움을 손에 들고 왔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아이는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핸드폰에 녹음해 왔다. 주춤거리고 수제비처럼 뚝뚝 끊기는 친구의 수줍은 ‘이치 비치 티니 위니 옐로 폴카닷 비키니’ 연주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매끈한 연주곡도 많은데 울퉁불퉁한 연주를 계속 들었다. 숙제를 마치면서도 듣고, 차 안에서 비 오는 창밖을 보면서도 연주곡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피아노의 세계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친구뿐 아니라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누군가의 계기가 된다. 계기란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이다. 삶의 변화를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끈다.  


고 2 때였다. 늘 수학이 어렵고 싫었다. 새로 들어간 학원의 수학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졌다. 말도 안 되게 수학 시간을 기다렸다. 선생님을 좋아하다 보니 수학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덕분에 수학 점수는 내 기분처럼 저 위로 날아다녔다. 선생님이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 사람이 한 학문을 좋아하게 만든 것이다.   


친구가 독립 서적 책 <시 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꽃다발처럼 시들이 묶인 책이어서 시 다발이었다. 제목부터가 짜릿했다. 정형화된 책이 아닌 개성이 묻어나는 책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후 독립 책방, 동네의 작은 서점에 관심이 생겼다. 여행길에는 코스처럼 그 지역의 책방을 들렀다. 곳곳에서 만난 책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서 모으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마주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담은 책 <편의점에 이런 손님 있지>와 유치원에서 일을 할 때 마주한 아이들의 말은 옮긴 <이토록 간결하고 귀여운 말들>, 유년 시절 저마다의 피아노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 <피아노를 위한 소곡>, 아침마다 먹는 시리얼 및 음악, 인터뷰, 사진이 포스터처럼 실려 있는 매거진 <achim>, 엄마의 첫사랑, 엄마의 첫 여행, 엄마의 첫 직장 등 엄마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인터뷰 책인 <엄마 일기>, 여행의 순간을 드로잉으로 기록한 <연필로 여행> 등...



저마다 귀여움이 숨어있는 책들을 볼 때면 마음속에 낙지가 한 마리가 꿈틀거렸다. 기분이 간질간질거렸다. 조약돌 같은 책들을 만나고 수집하다가 나도 만들고 싶어 졌다. 그래서 <위트 윙크>라는 책을 만들게 되었다. 평소에 즐겨 찍던 위트 있던 순간들의 사진을 모아서 짧은 글들을 적었다. 편집디자인을 하고 교정, 인쇄까지 했다. 전국의 책방을 조사해서 입고 메일을 보내 책을 발송했다.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 나갔다. 내게 없던 길 하나를 만드는 일이었다. 휘파람처럼 신나는 책 만들기의 시작은 친구의 책 선물이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그녀는 윤동주의 시집을 들고 나왔다. 중간중간 한자가 있는 < 별 헤는 밤>은 내가 읽다가 자꾸 멈추어 선 책이었다.

시집에 한자들이 등장해서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녀는 괜찮았고 술술 읽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중국에서 일 년 유학을 해서 한자에 대한 거부감 없이 한글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고 했다. 중국 유학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한 중국 배우를 너무 좋아했어요. 소원이 그 배우에게 중국어로 편지 하나를 보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중국어 학원을 등록해서 몇 달을 배웠어요. 배우다 보니 이런 속도와 내용이라면 편지를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중국 유학을 떠나자고 결심했고 일 년을 있다가 돌아왔어요. 아이러니한 게 유학을 다 마치고 연애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배우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어요. 배우는 떠나고 중국어만 남았죠.”



언어의 가장 빠른 습득은 연애라고 했다.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더니 한 사람을 향한 마음 하나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유학까지 가게 되고 소설 속 이야기 같았다.



마음의 작용은 어디까지인 걸까?




그 배우는 알지 못할 것이다. 본인이 한 사람에게 들어가 어떤 일을 펼쳤는지.....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거센 비처럼 끼어들었다. 흠뻑 적셨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머리와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무한한 가능성만 존재한다. 초월적인 세계이다.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은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가는 길이 멀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속 아우성은 바로 그 나라로 달려 가게 만든다.


살다가 보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어떤 일이 계기를 만날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아 알아채기 어렵다. 우연한 계기가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삶은 경험의 총합이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오늘도

여러분 곁을 수많은 계기가 스칠 갈 것이다.

운명처럼, 인연처럼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