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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9. 2020

마음 선거

아이가 3학년 때 처음 하는 반장선거에서 반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경우 앞장서서 하는 것을 잘 못해서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놀랐다. 아이도 평소 또래의 놀이에서 리드하기보다는 따라가는 쪽에 속해 있었다.

스스로 반장이 하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신기해서 물어보았다.


내 친구네 집에 놀라갔을 때 아이보다 한 살 언니의 부반장 임명장을 보고 그런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혼자 조용히 보고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혹여 안 되더라고 자신 있게 나가서 도전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주말이 되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 주에 있을 아이의 반장선거에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친구들에게 물었다. J가 말했다. 무조건 햄버거지.


“내가 반장이 된다면 햄버거를 사서 돌린다고 해.”


우리 때에도 있었던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연필 열 자루를 준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누군가 실내화를 들고 “이 신발에 구멍이 날 때까지 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공약이 신선했다. 아직도 떠올랐다. 도구를 이용한 주장이 눈길을 끌 것 같았다. 아이에게 열 자루의 연필을 들고 혹시라도 수업시간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반장이 되겠다고 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다 연필 가져와.”    


나의 비유와 상징적 공약을 거절했다. 우리 중 유일하게 반장 경력이 있던 j의 남편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입을 열었다.    


“예린아 너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음으로 임해야 해. 그러면서 전 안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뽑아주신다면 그때에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지.”    


남들이 다 하고 싶어 할 때 심드렁하는 태도로 차별화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결은 아이와 맞지 않았다. 아이를 도와주려고 시작한 대화였는데 갑자기 부담스러웠는지 “나 그냥 반장 안 할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코로나로 인해 주 1회 등교만 하는 금요일이 다가왔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반장선거 정말 안 나갈 거야?”

“응”    


마음의 방향은 자신만이 바꿀 수 있으므로 그 대답을 그대로 인정했다. 학교를 마친 아이가 집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잘 다녀왔냐고 인사하는데 아이는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나 반장 됐어.”

“어머 머머, 진짜? 너무 축하해. 어떻게 된 거야?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

“응 할 생각이 없었는데 반장 후보가 1명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순간, 나가고 싶어 졌어.”

“잘했네. 친구들한테 뭐라고 말해서 된 거야?”

“반장이 되면 반 청소를 열심히 해서 깨끗한 교실이 되도록 한다고 했어.”

“그 말에 된 거야?”

“그 친구는 종이에 써서 이야기했는데 조금 미안했어. 다음 학기에 그 친구가 하면 좋겠어. 그런데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뭔 대?”

“점심시간에 내가 하루살이를 잡았거든. 손으로…….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올~~ 역시 반장!이라고 하는 거야. 다 웃었어.”

“진짜 웃기네. 날 파리 한 마리 잡았을 뿐인데? 이제 교실 쓰레기도 잘 줍고 선생님도 잘 도와드리고 해야겠다.”

“응 나 그런 것 좋아해.”    


기대하지 않았던 일인데 기분이 좋았다. 코로나로 아이의 초등학교는 32명을 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a조 b조로 나누어 등교했다. 목교일 수업을 한 a조는 반장선거에 8명이나 지원했다고 했다. 그 사진들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b조는 두 명만 지원한 것이었다. 경쟁자가 적어서 벌어진 행운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한 경험이기에 의미 있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가볍지 않다는 것을 한 학기 동안 아이가 온전히 깨닫길 바랐다.    


아이의 반장선거 전날이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한 남편은 선거에서 실패를 맛보고 속상해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등산을 하는데 그 안에서 회장을 뽑았다고 했다. 후보는 두 명이었고 그동안 열심히 해왔기에 당연히 자기가 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 한 표 차이로 떨어진 것이다. 충격이 꽤 컸다. 날마다 즐거운 사람인데 우울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 일의 다음날 딸은 반장이 되었다. 어제 있었던 남편의 일을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아이는 그럴 수도 있다며 아빠를 다독였다. 아빠는 자기가 이길 줄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가 회장이 안 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말이야. 내가 안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아빠는 당연히 아빠가 될 줄 알았지? 사람이 겸손해야 돼. 겸손해야 반장이 되는 거야.”    


반장선거는 마음 선거였다.



상대의 마음을 사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의 일리 있는 말에 웃음이 터졌는데 아빠만 웃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공교롭게도 당선인과 낙선인이 함께 있었다. 아이의 반장을 축하하기 위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서 초를 꽂았다. 노래를 부르며 당선인을 축하해 주었다.     


아이의 등굣길 일찍 집을 나섰다. 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가 말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꼭 반장뿐 아니라 친구들, 선생님과 어울릴 수 있는 상황마다 아이가 보다 진한 경험들을 해 나가길 바란다. 반장선거를 통해 ‘겸손’이라는 가치를 배웠듯이 말이다. 몸소 겪은 삶의 가치는 평생 내 몸에 새겨져 순간마다 꺼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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