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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24. 2023

부부싸움의 7가지 주제

화가난다

살다 보면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맹수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결혼생활의 다툼의 원인은 너무 먼지 같아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이다.


1. 신혼 초에는 카메라의 뚜껑을 닫아라. 안 닫아도 된다로 논쟁을 했고.

2. 내가 쓰는 신용카드의 문자가 남편에게 가서 그 설정을 바꾸는 일로도 싸웠다.

3.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의 액수가 달라 싸우기도 했다.

4. 주차를 할 때, 나는 차들이 없는 곳에 세우기를 원하고, 남편은 양 쪽에 차가 있어 그 사이에 주차하는 것을 선호했다. 주차처럼 일상에서 빈도수가 잦을수록 부딪히는 횟수도 많기에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차를 대기 전에 내가 먼저 내리고, 남편이 원하는 곳에 주차를 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5.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바로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걸 선호했다. 외부의 오염물질이 집에 묻는 게 싫었다. 보이지 않는 세균에 신경이 쓰였다. 반면 남편은 외출복 그대로 소파와 침대에 앉는 사람이다. 오염물질에 대한 생각자체가 없기에 그런 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불편해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기에 내가 실내복을 가져다 주거나, 그 장면을 안보기를 택했다.


6. 싸움의 주제는 수건으로도 가능했다. 나는 얼굴수건, 발수건을 따로 쓰는데, 남편은 얼굴을 닦은 수건으로 발을 닦았다. 어차피 빨면 다 깨끗해진다며 상관 없다고 했다. 나는 상관 있었다. 그 후, 불편한 건 나였기에 수건의 색을 구분해서 남편은 계속 그렇게 쓰도록 했고, 나는 내 방식대로 수건을 사용했다.

부부에게 가장 좋은 건, 각자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7. 이렇게 하나씩 조율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분쟁이 튀어나왔다. 미처 손 쓸 수도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운동화를 빨았는데, 며칠을 말려도 제대로 말려지지 않아 냄새가 났다. 두 번을 빨았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세탁소에 맡기자고 했다.

우리는 각 자 일주일에 한 번씩, 총 두 번 빨래를 하는데, 남편이 빨래를 하고 건조기를 돌리는 순간에 그 운동화를 같이 돌렸다. 건조기에서 평소 들리지 않았던 반복적인 소음이 들렸다.


"이거 무슨 소리야?"라고 물었다.

"건조기에 운동화 돌아가는 소리인 거 같은데?"

"운동화를 건조기에 돌렸다고? 다른 세탁물이랑 다 같이?"

"응?"

"운동화 더럽잖아. 그걸 같이 돌리면 어떻게? 다른 세탁물이 다 오염되잖아?"

"운동화 깨끗해. 두 번 닦은 거라 괜찮아."


순간 화가 났다. 내 원피스, 내 속옷,  수건까지 운동화와 같이 돌아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발 닦은 수건의 상위버전이었다. 테러였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내 목소리가 커져도 남편은 건조기를 끄지 않았다. 남편은 자기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운동화 건조기 틀 따로 있어. 저렇게 빙빙 돌면 운동화 다 망가져. 그리고 다른 세탁물도 다 상해. (더러워져서 정말 싫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좁혀지지 않는 오염에 대한 견해)"

"알았어. 다음에는 건조기 틀 사용할게."


건조기를 멈춰 운동화를 빼지 않는 남편의 행동에 내 안의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일촉 측 발의 순간이었다.




운동화 돌아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니 내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일단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아파왔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위생관념이었다. 몇십 년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속을 끓여봤자 나만 손해였다. 남편은 평온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몰라. 될 대로 되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건조기 안에 있는 모든 옷을 다 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전이라면 이 사건으로 일주일은 말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시간이 약이었는지,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만 바꾸면, 아니 잠깐만 기억을 잊으면 되는 거였다. 다음부터는 안 돌린다고 했으니까, 그냥 마음 풀자. 어차피 화내봤자 나한테 해롭기만 해.라고 주문을 걸었다.


대세에 지장 없으면 진행시켜.


요즘 자주 하는 말을 속으로 외쳤다. 부부로 산지 14년 차에 얻은 해결책이었다.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 불편한 상황이야 종종 등장하지만, 평온하고 잘 맞는 순간들도 많았다.


맹수가 튀어나오는 순간은 어쩌다 한 순간이기에 잘 어르고 달래는 것도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란보다는 평온을 택하기로 했다. 본능적으로 싫은 감정이 올라왔지만, 스스로 위기를 잘 극복했다. 끓었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이 의자처럼 각자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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