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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29. 2023

버스에서 한 여자가 울었다

너무 궁금하고 같이 슬퍼져

비가 내리는 날,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목을 쭉 빼고, 저 멀리서 오는 버스가 나의 버스일까, 기대하다가 실망하다가를 반복한다. 비가 오는 날의 버스는 더 반갑다. 버스 안으로 쏙 들어가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추장스러운 비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엑스에 갔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라는 커다란 우비를 입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온몸에 묻은 축축함을 보송하게 했다. 조금 개운해진 상태로 창 밖의 종종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방금 전 나의 모습이었는데, 이젠 남의 일이라는 듯 평화롭다.

버스가 한 정거장을 가는데 오래 걸린다. 비가 차들의 발목을 잡은 듯했다. 차 문이 열렸고, 고요하던 차 안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일단 타요."

버스 아저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현금이 없어요? 안 내도 되니까, 어서 타요."


내용만으로 추측해보면 한 탑승객이 현금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이 아닌,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무슨 소리지?

계속 버스카드 없어서 그런 줄 아는 아저씨의 질문에 여성은 울며

"버스카드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방을 뒤지며 버스카드를 찾기 시작한다.

잠시 뒤, 찾았는지 카드를 꺼내어 기계에 찍는다. 아저씨의 예측이 빗나가자 다른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왜 울어요? 누가 아파요?"

"......"


버스기사는 그칠 줄 모르는 울음에 자꾸 질문했지만, 그 여자는 답이 없었다. 모른척 해도 될텐데 아저씨는 계속 물었다. 자기만의 위로를 하는 듯 했다. 그 여자는 버스카드를 찍고 돌아서다가 뒷사람들을 보았는지,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남자친구와 이별했나?'

어른이 공공장소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낼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누군가와의 이별 중 하나이지 않을까? 보통 눈물은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내밀한 일인데, 그런 감정을 공공장소에서 표출할 때에는 이성이 감정을 잡지 못하는 순간이다.


나 역시, 첫사랑과 이별할 때 길거리에서 눈물을 동반한 격한 감정을 쏟아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창피한 장면이었다. 인생에 걸쳐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그 여자를 보며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는 평소 감정의 끈을 붙잡고, 균형을 맞추며 살지만, 누구나 한 번쯤 그 끈이 끊기는 순간이 있다.나조차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 사람의 인생 한 장면에, 내가 있었다. 우연히 커다랗고 깊은 슬픔을 공유했다.

흐느낌으로 물든 버스 안, 누구도 그 사람의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묵으로 위로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커다란 슬픔을 마주하던 때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슬픔이란 감정은 이유를 알아야만 이해 되는 건 아니다. 슬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전히 느낀다.


버스는 엔진소리를 내며 달렸고, 우리는 조용히 눈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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