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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un 14. 2023

버스기사가 자꾸 승객들을 혼냈다

계속 혼내니까 언짢아

살면서 몇 번의 버스를 탔을까? 아마 몇 천 번은 넘지 않을까?

그동안 많은 버스를 타면서 버스기사에게 혼난 건 처음이었다.


동네에서 서울에 가려면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정류장에는 광역버스 전용푯말이 있다. 한 기둥으로 양쪽의 다른 번호가 쓰여 있다. 그날은 압구정에 가야 해서 900@번 900#번 둘 중 먼저 오는 걸 타야 했다. 어떤 게 올지 몰라 아무 곳에 서 있었는데 멀리서 코너를 돌아 광역버스가 보였다. 나를 못 보고 지나칠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타는 손님이라는 걸 티 냈다. 정류장에 서는가 싶더니 방향을 다른 차선으로 꺾길래 나는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겨우 타서 버스카드를 찍는데 아저씨가


"거시 서 계시면 안돼요. 900#에 정확이 서 계셔야 제가 서죠."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번 버스를 탔지만 정확히 번호 앞에 서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이 난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했지만, 아저씨 말이 맞으니까 수긍하며 자리에 앉았다. 다음역에 정차했다. 한 할머니가 천천히 올라타시는데 또 같은 말을 했다.


"거기 서계시면, 제가 안서요. 900# 앞에 서계셔야 해요."


아저씨는 규칙을 정확히 지키는 스타일인가 싶었다. 몇 번 언성이 높아지자,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손님이 혼나지는 않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운전도 차분하기보다는 급하게 몰았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울로 진입해 코너를 돌자마자 내리는 정류장이었는데, 한 승객이 벨을 촉박하게 눌렀다.


"안내방송을 3번이나 했는데, 벨을 미리미리 누르셔야 제가 준비하죠?" 라고 말 했다. 누구라도 잘못하면 계속 훈계를 듣는 버스였다.


보통은 그런 일이 있어도 버스기사가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내려주거나 태우는데, 승객들의 잘못을 일일이 말하는 기사님은 처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승객은 차가 정류장에서 떠나자 바로 벨을 눌렀다. 미리 벨을 누르라는 말에 바로 행동했다.


아저씨가 하는 말의 내용은 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혼내듯이, 나의 일을 방해한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 교정버스를 탄 이후 나는 앞으로 제대로 된 번호 앞에 설 것이다. 아마 그 할머니도 번호를 확인하시겠지(아닐 수도 있지만), 그 청년은 벨을 미리미리 누를 것이다.(아닐 수도 있지만)


다만 다음에는 그 버스를 타고 싶지 않다.

버스에서까지 혼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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