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욕망을 나누어 갖는 일이다. 여행에서의 한정된 시간을 나누듯 서로의 욕망을 나누어 가진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각자 조금씩 욕망의 부피를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욕망을 나누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이 반복될수록 다양성을 즐기게 되었다. 서로의 욕망 속에서 놀다 보면 내게 없던 새로운 욕망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더 다정하게 만들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했다.
책 <낫워킹맘> 중에서-
책에 우리 가족 3명이 함께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을 썼는데, 이번 9명의 3대 가족 여행으로 더 많아진 욕망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후속 편을 써본다.
아빠의 칠순기념 여행으로 부모님, 동생네 가족, 우리 가족 총 9명이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여행을 간 건 처음이었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거나, 당일의 나들이는 자주 했지만 2박 3일 동안 밀착해서 촘촘한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잠깐의 만남에서는 서로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긴 시간에서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여행 중, 각자의 얼굴에 폭죽 같은 미소가 터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일정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날 때였다.
1. 아빠의 욕망 : 낚시
아빠는 낚시를 좋아한다. 주로 가까운 강을 찾아 낚시를 했는데, 부산의 숙소 앞, 바다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낚싯대가 없으니 직접 할 순 없었지만 가서 어떤 고기를 잡는지, 어디서 왔는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운대에 가서도 낚시인 곁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다가 아빠가 사라지면 주변의 낚시인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 아빠가 있었다.
그리고 평소 내륙지역에서는 살 수 없었던 다양한 그물이 판다며 두 종류의 그물을 사고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팔딱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물은 아빠의 칠순 선물이었다.
2. 엄마의 욕망 : 추억
엄마는 태종대를 가자고 했다. 엄마는 스며드는 사람으로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데, 또렷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거기는 추억이 있는 곳이야." 라며 혼자 과거로 여행을 간 듯 보였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엄마의 추억여행에 8명이 동참했다.
3. 남자조카의 욕망 : 축구
4학년 조카는 요즘 축구에 푹 빠져 있다. 숙소에서도 2002년 월드컵을 보았고, 국제시장에서도 축구복에 관심을 보였다. 고모부는 조카를 위해 빨간색의 축구복을 사 주었고, 여행 내내 그 옷을 입고 다녔다. 학교 갈 때에도 입는다고 했다.
4. 여자조카의 욕망 : 색색의 치마
여행 내내 같은 디자인, 다른 색의 주름치마를 입었다. 1학년인 조카가 온 가족의 사랑은 받아, 안 그래도 귀여운데, 주름치마를 입고 빙그르르 돌면 금세 핑크 꽃이 되었다. 첫째 날은 핑크색, 둘째 날은 하늘색, 셋째 날은 노란색. 치마만 3개가 있었다. 나도 원피스를 좋아해서 여행 내내 입었더니 "고모도 드레스 좋아해요?" 물으며 좋아했다. 00크면 고모 치마 다 줄게.
5. 딸의 욕망 : 탕후루
딸은 탕후루에 진심이다. 집에서 종이컵에 설탕을 부어 전자레인지에 녹여 청포도에, 딸기에 부어 탕후루를 만들기를 여러 번 시도했다. (다 실패했지만) 그리고 친구들과 코인노래방에 갈 때면 꼭 탕후루를 사 먹는다. 국제시장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 나는 보이지도 않던 작은 간판을 발견하고 "탕후루다"라고 소리쳤다. 10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건, 아무리 멀리 있었도 한눈에 발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6. 올케의 욕망 : 경주
경주를 아직 가본 적 없다며 가고 싶어 했다. 서울로 가는 길, 경주에 들렀다. 올케는 스타벅스 지붕도 한옥이라며 신기해했다. 황남쫀드기, 십원빵, 라벤더 아이스크림, 탕후루, 수제 오란다 등 간식거리를 잔뜩 먹고 거리를 구경했다. 뜨거운 태양에 오래 있진 못했지만, 그녀는 드디어 가보았다며 좋아했다.
7. 동생의 욕망 : 요트
부산까지 갔는데, 요트 한 번 타야죠? 했지만 몇몇은 시큰둥했다. 원하는 사람만 요트를 타러 갔다. 동생과 남편, 두 아이들이 탁 트인 바다 중심에서 있으니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도 했다. 석양처럼 행복이 붉게 물드는 추억이 되었으리라.
8. 남편의 욕망 : 탐조
요즘 새를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 남편은 쌍안경을 챙겨갔다. 날도 덥고 짐도 많지만, 서울에는 없는 새를 부산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기대했다. 아침 7시, 동백섬에 산책을 나가는데, 쌍안경을 챙겼다. 아침은 새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천천히 산책을 하는 동안 남편은 여러 번 걸음을 멈추어 새들을 관찰했다. 백로가 목을 접어 다른 새인 줄 착각하기도 했고, 직박구리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지저귀는 장면도 만났다.
9. 나의 욕망 : 책방
9명의 단체 여행이라 내가 좋아하는 책방은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산까지 가서 그냥 돌아오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나 하나를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책방은 동선도 맞지 않았다. 숙소에 집을 풀고, 각자 쉬는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고, 아빠와 동생, 남편은 자갈치 시장을 갔다. 나도 쉬다가 문득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근처에 책방이 있는지 검색했더니 <라이프 앤 북스>라는 책방이 20분 거리에 있었다. 짬을 내어 그곳에 갈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라 더 달콤했다.
/
우리는 가족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각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이번 여행을 통해 9명 각자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조카의 축구사랑 덕분에 나도 2002년 월드컵을 즐겁게 보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조카에게 묻는다. 어제 축구 봤어? 여행이 아니었다면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9가지의 취향을 발견한 걸 보니, 모두가 존중받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 전 계획에서는 아슬아슬했지만, 여행 중에는 큰 갈등 없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행의 대부분의 시간은 함께 움직였지만 가끔은 조별로 움직인 것도 좋았다.
ㅡ아침에 해장국팀, 샌드위치 팀.
ㅡ해맞이 전망대에 올라가는 팀, 아래에서 푸딩 먹는 팀.
ㅡ연속으로 회 먹는 팀, 피자 먹는 팀.
ㅡ새벽기상 팀, 늦잠 팀
9명이 한 가지의 선택권 안에서 움직이면 누군가는 불만이 생겼을 텐데, 2개의 선택지에서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두 가지를 기억하자.
1.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하자.
2. 팀 안에서 조별로 움직이는 선택권을 주자.
그러면 무탈하고, 즐겁게 대가족 여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중 감정싸움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후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함께 하면 복잡하고 소란스럽지만
함께 하면 풍요롭고, 다채로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