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Jun 22. 2023

치앙마이에서 하는 탐정놀이

치앙마이는 주말마다 곳곳에 마켓이 열렸다. 맛있는 간식뿐 아니라, 수공예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주말이 되기를 기다렸다.


2월이었지만, 오후가 되면 금방 더워졌기에 호텔에서 서둘러 나왔다. 치앙마이에서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다고 한 징자이마켓을 찾았다. 마켓 입구는 차가 막힌다고 해서, 마켓 근처에 택시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도착하자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활기찬 분위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예쁜 나무양산으로 만든 포토존이 있었고, 그 옆에는 물감을 짜 놓은 듯한 색색의 초록이 누워있었다. 아보카도주스일 뿐인데 별게 다 예뻐 보였다.





야외에 파라솔을 쳐 놓고, 라탄가방, 의류, 귀걸이, 가방, 스카프 등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고, 건물 안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다. 세련된 시장의 느낌으로 우드톤이 멋스러웠다. 진짜 치앙마이에 온 것 같았다.




혼자 왔다면 이 기분을 온전히 즐겼을텐테, 남편과 아이는 별 흥미가 없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특히 아이는 더워지기 시작하면 못 견디기에, 신데렐라처럼 빠른 시간 안에 춤을 춰야 했다. (쇼핑을 해야했다.)







라탄으로 만든 등도 봐야지, 의자는 어떻게 만들었나 봐야지, 볼 것 투성이었다. 미리 알아봐 둔 아이스크림도 먹어야 했다. 워낙 넓어서 아이스크림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 헤매는 순간, 저 멀리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연보라와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꽃을 꽂고 목에 꿀 목걸이를 두른 그녀가 나타났다. 환상의 맛이었다. 날씨가 더워서 빨리 녹아도 먹는 속도를 따라올 순 없었다. 아이스크림도 먹었겠다, 더 이상 소원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쁜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소원이 다시 생겨났다. 오후가 되자 아이는 호텔로 돌아가 수영이 하고 싶다며 어서 가자고 했다. 남편에게 시원한 건물로 들어가 음료를 먹으며 아이와 쉬고 있으라고 부탁하고 나는 빠르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 못봤단 말이다)


나 역시 이마와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외의 마켓을 빠르게 훑어보고, 에어컨이 켜진 시원한 내부로 들어갔다. 원하던 가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구나.




평소에 라탄 가방을 좋아해서 종류별로 가지고 있는데, 치앙마이는 라탄의 고향 아닌가? 다채로운 것들이 많았다. 이토록 정교한 코끼리 가방은 처음이었다.


섬세하게 엮은 지갑도 예뻤다.





물에 강한 재질의 가방은 종류가 많아서 어떤 컬러를 사야 하나 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마음은 급하지 볼 건 많지, 다시 또 6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이 곳에 올 수 없기에 마음이 바빳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아이가 달려오며


"찾았다." 하고 나를 꽉 껴안았다. 무슨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아빠랑 여기에서 엄마 찾기 게임을 했거든. 근데 내가 찾았어."

"어떻게 찾았어? 여기 엄청 넓잖아."

"엄마 핸드폰에 핫스팟 켜 있잖아. 내 핸드폰이랑 연결되어서 와이파이 신호를 봤어. 엄마랑 멀면 신호가 약하고, 가까워지면 강해지거든. 와이파이 신호가 다 켜져. 그거 보고 찾았어. 이 건물 들어오니까 신호가 잘 잡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여기 있다고 생각했지."

"오호. 탐정 같은걸.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니..."



가까워질수록 파랑불이 켜진다.


핸드폰에 강한 청소년의 생각은 기발했다. 아빠의 엄마찾기 놀이덕에 아이도 재밌어 했다. 아이에겐 역시 쇼핑보다 놀이다.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즐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고민하던 검은색 체크가방 하나를 사서 나와 우리는 밥을 먹기로 했다.



징자이 마켓 안에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곳도 함께 있었다. 자연친화적인 치앙마이에서는 처음 보는 음식들도 많았고, 바나나도 비닐봉지가 아닌 끈 하나를 껴서 들고 갈 수 있게 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한 포장법이었다. 이토록 미니멀한 포장법이 있었다니....



치앙마이에서는 커다란 초록 잎이 볼이 되고, 접시가 되었다. 음식이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꽃이 늘 함께 있어 보기도 좋고,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미식의 나라에서 그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잠깐 현지인이 되어보았다. 종종 김치찌개가 생각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망고 앞에서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만나는 즐거움이 크지만, 가족이 그곳에서 공유하는 경험도 특별하다.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징자이 마켓에서 산 가방보다 아이가 와이파이 핫스팟으로 엄마를 찾은 순간이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전 09화 스웨덴집에서 배워온 기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