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하는 로봇, 영업하는 로봇, 커피 타는 로봇 등 삶의 순간에 다양한 로봇을 만난다. 로봇 공학자가 아니기에 어떤 로봇이 존재하는지 모르며 사는데, 로봇을 만날 때면 정말 미래사회가 달려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교백화점에서 <어린 왕자>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방문했다. 삶이 그렇듯 그날의 주인공은 어린 왕자가 아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길, 커다란 기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화가로봇이었다. 하얀 팩을 한 듯한 매끄러운 얼굴과 왼손 없이 오른손만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검은색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1분이 지났을까? 하나의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3분 라면보다 빠른 시간이었다.
로봇의 이름은 <SKETCHER X>.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도 믿기 어려워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줄이 길어 망설여지긴 했지만, 로봇이 어떻게 내 그림을 그릴지 궁금해 그려보기로 했다. 내 순서가 되기 전, 나는 영업기밀을 알아내려는 사람처럼 로봇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저는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그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어 그리는 로봇입니다.’ 명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가 진짜 화가처럼 특징을 잡아낸다고? 의심의 눈빛으로 그 말을 확인했다. 로봇은 앞사람들의 그림을 각기 다른 순서로 그렸다. 한 번은 눈부터 시작하며 그렸고, 그다음은 턱선을 먼저 그렸다.
‘제법인데... 진짜 화가 같잖아.’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이 “모자를 벗으셔야 해요. 로봇이 모자를 인식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요? 그래서 모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리는지 궁금한데, 쓰고 한 번 그려보면 안 될까요?”
“궁금하시면 그렇게 해보셔요.”
자리에 앉아 정면에 보이는, 로봇의 오른손과 얼굴 사이에 있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았다. 안경을 맞추듯 고개를 조금 올려보세요.라는 안내받았다. 됐다는 신호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 로봇이 그리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완성된 그림 속의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얼굴은 넙데데했고, 모자를 인식하지 못해 바가지를 씌워 놓은 듯 어색했다.
기분 좋자고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림을 확인하는 순간, 전보다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때마침 사람이 얼마 없었기에 직원은 모자 벗고도 한 번 그려보라고 권해서 다시 희망을 품고 자리에 앉았다. 두 번째 그림 역시 헤어 스타일이 정교해지긴 했지만, 미묘하게 다를 뿐 소장하고 싶은 그림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엉뚱한 그림이긴 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확도는 떨어졌지만 로봇의 태도만큼은 배울 점이 많았다.
1. 로봇은 필요한 말만 한다.
‘저는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그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어 그리는 로봇입니다.’라는 말만 했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저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2. 자기가 한 일에 미련 두지 않는다.
좀 더 그릴까? 여기가 부족한가?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고민 없이, 바로 시간이 지나면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3. 시간약속을 잘 지킨다.
사람들의 얼굴이 쉽든 어렵든 1분 안에 그림을 마친다.
4. 자신감이 충만하다.
다들 갸우뚱하면 자신의 그림을 만족하지 않는 듯해도 개의치 않고 다음 그림을 그려나간다.
로봇의 당당함과 실력만큼은 돋보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빛이나 말과 태도에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원래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로봇의 평정심과 자신감을 배우고 싶다. 실력은 그다음으로 따라오는 것. 이런 태도라면 로봇도 몇 년 뒤에는 고흐처럼 뛰어난 명성을 갖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