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일기를 쓰세요. 여러 장소에서 반복해서 들은 말이었지만 행동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그토록 좋다고 하는 일기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초등학교 때, 억지로 쓴 숙제의 영향이기도 했고
- 그거 쓴다고 뭐 달라져?
- 귀찮잖아
일기에 대한 수만은 편견이 나를 꽁꽁 묶고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써야 한다는 의무감, 강박이 첫발을 떼기 어렵게 했다. 이런 견고한 벽을 깬 건 의외의 사건이었다.
어른의 창의력을 키우는 키우는 <호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달 바뀌는 주제에서 호호일기 쓰기를 주제로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신청인원은 한 명. 내가 그랬듯 사람들 역시 일기의 중요성, 일기의 재미를 잘 모르는 듯했다. 참가자와 나, 우리 둘은 일기를 썼다. 그것이 성인이 된 나의 첫 일기였다. 누군가 쓰라고 해도 안 썼던 일기를 그날 이후 계속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지난 시간이 아까웠다. 10대부터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대의 찬란한 연애를 남겨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짝이던 시절이 기억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럴수록 지난날의 반성문처럼 더 강렬하게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기를 다섯 권 꾸준히 쓰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일기의 좋은 점을 말해보자면
1. 하루를 잘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에도 비슷한 하루였겠지만, 일기를 쓴 이후부터는 하루가 밥알처럼 생생히 살아있다. 그리고 그날의 회고를 통해 내 삶의 주체가 된 기분이다. 기록하기 전에는 내 삶이지만 삶을 내가 운전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부터는 하루에 일어난 일 중,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고 보니, 내 삶을 내가 편집하는 기분이 들어 흡족하다.
2. 차곡차곡 쌓이는 즐거움이 있다.
모든 것들은 증발한다. 좋았던 순간도, 절망의 순간도.... 시간은 누구에게 더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공평하다. 하기만 기록을 통해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록하면 보너스시간을 선물 받는다. 물리적 시간의 양은 같지만 기억의 창고에는 더 많은 순간들이 쌓여 몇 배의 시간을 가진 기분이 든다. 줄줄줄 빠져나간 기억 없이, 양 손으로 수많은 시간을 들고 있는 기분이 든다.
(기록 부자의 삶)
3. 호기심의 흐름도를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은 시기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진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산다. 기록이 있으니 그때 했던 경험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를 알 수 있다. 내 삶의 노선이 생긴다.
4. 영화처럼 개인도 서사를 가질 수 있다.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가 일기 안에 있다. 삶의 방향을 바꾼 변곡점의 순간도 기록에 있고, 어떤 지점에서 기분이 소멸되는지도 알 수 있다. 반복되는 기분의 데이터를 쌓으며 삶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
일기의 다음의 단계를 고민한다.
기록이 그저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다.
기록이 정보를 넘어, 감정을 동반해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기록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