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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ul 25. 2023

창 밖의 사람으로 소설쓰기

민준이 이마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늘이 세 번째 만남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옷을 단정하게 입는다. ‘여름의 3시는 너무 더운데…. 왜 하필 세 시지? 땀나면 화장도 번들번들해지고 금방 지워지는데... 그래도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이마트 앞에 민준이 서 있다. 그의 뒤로 천천히 다가갔다. 깜짝 놀라며 나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는 손에 있던 커다란 하얀색 종이 가방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오는 길에 예뻐서 정인씨 주려고 샀어요.”


흔하지 않은 보라색과 초록이 섞인 꽃다발이 솜사탕처럼 풍성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꽃다발을 받아도 될까? 부담스러운 마음과는 다르게 내 주위로 시원한 바람이 살랑 부는 것 같았다. 내게 꽃을 선물한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 순간, 나도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른 채,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어디 갈까요?”

“제가 카페 알아놨어요. 거기로 가요.”

그를 따라 카페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

(두 번째 소설)


오늘은 과장님의 마지막 출근날. 내가 회사에 처음 들어와 가져오라는 문서가 어디 있는지 몰라 쭈뼛거릴 때, 알려준 것도 과장님이고, 일이 많아 야근하는 날에는 살며시 다가와 커피 한 잔을 놓고 가기도 했다. 외근을 나갈 때도 일찍 끝나면 바로 퇴근하라고 귀띔해 준 분이었다. 이 전쟁터 같은 곳에서 따끈한 감자 한 알 같던 과장님이 퇴사를 한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과장님의 송별회를 위해 안 프로는 케이크를 사러 갔고, 나는 예약해 놓은 꽃을 찾으러 나가는 참이었다. 옆에 있던 민준이가 같이 가자며 따라나섰다.


“넌 왜와?”

“같이 가면 좋잖아요.”

“땡땡이치고 싶어서 그렇지?”

“에이 선배 무슨 말을? 꽃 찾고, 커피도 사 오려고 그런 거죠. 선배 손 부족하니까”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나오자마자 무겁고 더운 공기가 순식간에 이불처럼 우리를 덮쳤다.


“이렇게 덥다고? 밖에 오래 못 있겠는데….”


걸음을 재촉하며 플레르콤마로 향했다. 과장님이 좋아하는 보라색이 가득한 꽃다발이었다. 어쩐지 이 꽃이 퇴사 기념이 아닌, 승진 축하 꽃다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집 언니는 가져가기 쉽게 커다란 종이가방에 꽃다발을 넣어주었다. 우리는 그 꽃을 들고 나와, 횡단보도로 갔다.

/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은 사거리 2층에 위치해서 창밖으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수영을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매고 달리는 초등학생부터, 양산을 쓰고 손에는 마트에서 장 본 것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 배달을 가는 아저씨 등.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흥미진진했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라보는 게 이렇게 재밌다니…. 광고처럼 몇 분 동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30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녀가 눈에 띄었다. 여자는 커다란 꽃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있고, 그 옆에는 발목까지 오는 하얀 바지와 네이비 니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손에 꽃다발이 있는 걸 보니 커플 같은데, 남자가 여자에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 있고, 스킨십을 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뭐지? 둘은 어떤 사이일까? 너무 궁금해서 한참을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곧 신호가 바뀌었고, 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장면을 본 나는 너무 궁금하면서 동시에 둘의 관계를 알지 못해 답답했다. 그래서 위의 두 상황을 상상하며 소설을 써 보았다. 소개팅으로 만난 지 얼마 안 된 정인이와 민준. 아니면 직장 동료로서 심부름하러 나온 정인이와 민준.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 둘은 어떤 사이일까? 고민했던 시간만큼은 하루 중 가장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미용실 창문이 선물한 장면이었다.     




      

< 오늘의 감정기복 >

궁금하다 : 무엇이 알고 싶어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안타깝다.

답답하다 : 애가 타고 갑갑하다.

흥미진진하다 : 넘쳐흐를 정도로 흥미가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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