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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30. 2021

기분 좋은 소음

( 아스파라거스 화분 )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다.’     


신윤복 교수님의 말이다.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윗집 아이가 동동동동 뛰었다. 아이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내 귀가 가서 달라붙는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워 보았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얼마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심한 소음을 만들었기에 며칠을 견뎠다. 너무 심한 날에는 화장실로 대피하기도 했다. 며칠은 괜찮았지만 앞으로 기약 없는 인내가 필요했다.      


신윤복 교수님의 말처럼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다. 우리는 저층이라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 아이를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어떤 날은 밖에 나가 그 집 거실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잘 보이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크기의 소음이 반복되자 내 삶의 질이 떨어졌다. 코로나로 아이도 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불규칙한 소음이 언제 시작될까 신경이 곤두섰다.      


어느 날은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배려해야 한다는 글을 떠올리기도 했고, 

기술이 발전했는데 왜 아파트를 지을 때 층간소음을 해결하지 못할까? 

층별로 중간에 띄워 놓고 지으면 안 되나?

소음방지 신발을 개발할까?

윗 집은 매트를 깔 긴 깐 걸까? 등등의

     

다른 고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아파트여서 누군가 이사를 하며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네 층 위의 공사인데도 바로 옆에서 망치질을 하는 듯 커다란 소리가 났다. 아파트가 흔들릴 것 같은 폭음이 며칠 반복되면 윗 층 아이의 발걸음 소리는 애교가 되었다. 현상은 같은데 느끼는 감각이 달랐다. 한 달간 지속된 공사 소음이 멈추자 모든 것이 감사해졌다.     


그것도 잠시 여름이 되자 매미가 이사를 왔다. 봄의 아침에는 나무를 피해 들어오는 햇살에 일어났는데, 여름에는 알람 소리 같은 매미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바로 옆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했고, 두통을 유발하는 날카로운 옥타브 소리가 창문을 찢고 흘러 들어왔다. 


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앵                                     

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                                     

앵맴앵맴앵맹앵맴앵맴앵맹앵맴앵   

                                       

저마다 다른 음성이었고 여름이면 늘 듣던 소리였다. 콩콩콩 소리를 내며 뛰는 아이의 얼굴처럼 문득 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궁금해졌다.      


매미는 왜 우는 것일까?

왜 저렇게 목놓아 우는 것인가? 

다 같이 음대 성학과에 입학했나?

매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는데, 몇 번의 소음을 겪은 후에는 근원이 궁금해졌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수컷들이 내는 소리이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의 구애의 목소리인 것이다. 울림이 클수록 짝짓기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짝짓기에 성공하면 암컷은 나무에 알을 깐 뒤 죽는다. 얼마 뒤 수컷도 따라 생을 마감한다.      


구애의 목소리였다니! 사랑을 쟁취해도 곧 죽음으로 향한다니... 곡소리 같기도 했다. 사연을 알고 보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시끄럽지 않다. 매미가 되었든, 위층 꼬마가 되었든 서로를 알지 못하면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작은 불편도 감내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아야 이해의 문이 열린다. 꽉 걸어 잠근 문은 이해라는 열쇠 없이는 열기 힘들다. 대상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소음도 더 이상 소음이 아닐 수 있다.    






< 오늘의 언박싱 _ 아스파라거스 식물 >


화원에 갔다가 구석에 놓인 아스파라거스 식물을 보았다.

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초록 분수처럼 줄기들이 허공을 만진다.

그 모습이 자유로워 자꾸 눈길이 갔다. 

커피 한 잔 가격에 반려 식물을 사왔다.

블랙 화분에 넣으니 옷을 갈아입은 듯 시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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