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밤에, 엄마는 나를 마중 나왔다.
우리가 살던 집은 골목 끝에 있는 5층 자리 빌라단지였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차 한 대가 들어갈만한 골목을 150미터 지나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을 할 때까지, 밤의 골목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인적이 드문 위험한 곳이었기에 엄마가 늘 마중을 나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평소 10시가 넘었고, 술 모임이 있는 날에는 새벽 1시가 넘었지만, 엄마는 잠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나 역시 엄마보고 그만 나오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골목은 누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두려웠다. 뒤에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오면 가슴이 벌렁거렸고, 여자면 안심했고, 남자면 그가 사라질 때까지 주위를 살폈다. 남자라는 걸 확인했어도 뛰어갈 수도 없었다. (오해받는 남자들에게도 미안한 일)
엄마도 여자인데, 20대인 나를 얼마나 지킬 수 있다고 5년을 그렇게 매일 밤 나와 있을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긴 시간, 보디가드였다.
엘리베이터에 남자와 함께 타면 내릴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 뒤의 사람이 남자면 알아서 몸을 앞쪽으로 바짝 당겼다. 밤의 공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 다시 공포가 시작된다. 여자로 살면서 공포와 두려움은 안경 같은 존재였다. 늘 함께였기에 그게 이상한 줄 모르며 살았다.
독서 모임에서 20, 30대의 남, 녀가 함께 있던 자리였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한 청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공공 화장실에 갈 때, 두렵지 않아요?
“두려울 일이 뭐가 있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는데...”
화장실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다니? 같은 자리에 있던 여자 참가자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공공화장실에 갈 때, 화장실 칸에 카메라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서도 두리번거리고 이상한 구멍이 있는지부터 찾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되도록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스에서나 보도되는 몰래카메라가 여기에도 설치되어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잠재적 두려움을 늘 갖고 살았다. 같은 세상을 살지만 누군가는 마음 편히 살아가고, 누군가는 매 상황 가슴 조리며 살고 있었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청년은 여자들이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겐 너무 당연해서 남자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게, 오해였다. 우리 여자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학교 2학년 때,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바바리를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했지만 곧바로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얼굴만 쳐다보고 그를 피해 황급히 내렸다. 그것이 나의 첫 성추행 경험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만 보아도 그 사람 같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을버스를 타도 그 사람(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 같았고, 마트에 가도 그 사람인 것만 같았다. 찰나의 경험이 나를 몇십 년 동안 따라다녔다.
대학교 때에는 00역을 오르는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내 뒤를 쫓아와 나의 치마 속을 찍었다. 그것도 아주 큰 카메라로 연촬을 했다. 그렇게 재빨리 찍고 줄행랑을 쳤던 놈. 벌건 대낮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울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얼마나 될까?
이런 일들을 겪으면 대부분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과도 이런 대화를 한 적은 없었는데 성인이 되었을 때, 우연히 친구가 자기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고백했고, 그 후 각자가 겪은 다양한 성추행을 쏟아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친구 셋의 경험만 해도 많았다. 그 비율이 놀라웠다. 이런 식이라면 숨겨진 일화들이 얼마나 많을까? 오래 만난 친구들이었지만, 말하지 않아 몰랐을 뿐이었다.
그런 일들은 불특정 한 장소에서, 불특정 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나의 힘으로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더 무기력했다.
엄마가 5년 동안 마중 나왔던 건, 이런 세상에서 딸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9시가 넘은 시각, 나의 딸이 편의점에 간다며 현관문을 나선다. “공원 말고, 꼭 차 다니는 큰길로 가.”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걱정을 놓을 수가 없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야 안심이 된다.
몇십 년이 흘러 세대가 바뀌었지만, 엄마가 느낀 두려움이 그대로 내게 왔다. 바뀐게 없었다.
여자로 산다는 건, 매 순간, 감각의 버튼을 켜고 살아야 하는 일이다. 편하게 공공 화장실에 들어설 수 없는 삶이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른 세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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