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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0. 2023

아까 그 상황에서 화 안났어?

다리가 아팠다.


잠실에서 한강공원까지 걸어가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그날은 콘서트를 가는 일정이 있어서,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한강이 이렇게 먼지 모르고 걷기 시작했는데, 예상을 빗겨 나갔다. 끝이 어딘지 몰라 지칠 때쯤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한강에 도착하자, 탁 트인 들판이 보였다. 얼굴의 곡선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편의점에서 라면 세 개를 사서 끓이고, 김치 하나, 스트링 치즈 하나, 물을 사 왔다.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아이들이 공을 차는 소리는 평화로운 배경음악이 되었고, 연인이 서로를 껴안고, 볼을 비비는 장면은 낭만을 불러왔다.


우리는 잘 끓여진 라면을 먹는데 정신이 없었다. 허기가 멀어질 때쯤, 옆 테이블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싶지 않아도, 거리가 가까워 저절로 들리는 대화였다. 아빠와 두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다정하고 자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말 안에는 당부의 말이 가득하고, 다급함이 느껴졌다.


“네가 하기 싫을 때에는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좋아. 너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해. 아빠가 다음에 올 때는 그 친구와 어떻게 했는지 알려줘야 해.”

“조금 춥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옷 입어. 우리 시간 얼마 안 남았네. 뭐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거 있어?”      

모든 대화가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화의 분위기상 두 딸과 함께 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깐의 만남 시간인 듯 아빠는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 주어진 시간 안에 온 마음을 쏟았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아이는 말없이 빵만 먹었다.  

    

늘 보는 가족에게 하는 말들은 말과 말 사이에 여유가 있다. 오늘 밤에도 볼 수 있고, 내일도 볼 수 있으니 말의 무게가 가벼웠고, 헐거웠다. 하지만 서로를 볼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조급해 보였다. 보지 못할 때, 떠오른 말들을 다 해야 하듯 말의 밀도가 높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과정을 공유할 수 없으니, 대화 속에서 이해의 말보다는 당부의 말이 가득했다. 라면을 먹는데 자꾸 옆 테이블의 대화에 마음이 쓰였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향했고, 다정한 아빠는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우리의 식사도 끝이 나서, 자리를 정리하고 잠실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도보로 25분이 나와서 망설였지만, 다리도 아프고, 콘서트 전에 지치고 싶지 않아 카카오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금방 잡혔다. 우리 셋은 도착한 택시에 탔다. 타자마자 아저씨는 언성을 높였다.     


“지금 여기 가는데, 택시를 부른 거예요?”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침묵했다.

“여기는 걸어가면 되잖아요?”

따지듯 말하는 아저씨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화가 났다.

“아니, 방금 여기 갔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또 여기를 가네.”

우리는 아저씨의 전 상황을 전혀 몰랐다.

“우리가 여기(잠실실내경기장) 가는지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

우린 분명히 카카오 앱을 통해 목적지를 찍었고, 그걸 알고 수락하고 왔으면서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르고 왔죠. 자동배차돼서 온 거예요.”


우리는 모르는 택시 내부의 시스템이었다.


“저기는 좌회전도 안되고,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데 몇 십 분이 걸려요.”

“그럼 길 끝에 내려주세요. 우리가 걸어서 갈게요.”

“그럴래요? 방금 저기서 나왔는데, 또 가게 되니까...”

“괜찮아요. 근처까지만 가주시면 돼요.”     


그렇게 작은 실랑이 3분만에 끝났다. 콘서트장 앞에 가 보니, 택시 아저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차들이 꽉 차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는 그 사람이 처음 보자마자 짜증을 내는데, 화 안 났어?”

“응.”

“왜?”

“이유가 있겠지. 했어. 그 이유가 궁금했지.”

“그래도 가만히 있는 우리한테 타자마자 화를 냈잖아?”

“난 그런 거에 잘 동요 안 해. 그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회사에서 단련이 되기도 했고.”   


   

나도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 택시 안에서는 아저씨의 탓하는 눈빛을 보고는 참기 힘들었다. 때로는 말보다 더 상처가 되는 게 말투, 눈빛, 행동이었다. 작은 것들이 사람의 감정을 뒤흔든다.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내가 동요되지 않는 것.

내 페이스를 찾아 흔들리지 않았던 남편이 대단해 보였다. 성난 파도 속에서도 배를 운전하는 선장 같았다.


같은 상황에서 나는 요동쳤고, 그는 평온했다. 나를 화나게 한 택시아저씨 덕에 남편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았다. 그에게 물들고 싶어졌다. 

감정의 파도는 어느 때, 어떤 상환에서 몰아닥칠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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