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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07. 2023

누나, 저번에 사기당한 거 어떻게 됐어?

“통화 가능해?”

“응”

“저번에 사기당한 거 어떻게 됐어?”

“그 사람 감옥에 수감 중이고, 돈은 여전히 못 받았지.”

“왜? 너 사기당했어?”     



동생은 친한 형의 샵에 지분을 넣었는데, 그 샵이 문을 닫으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돈은 소중하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젊은 날의 시간과 노력, 열정을 바친다. 그것들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경험은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이다. 살면서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의 깊은 뜻을 가장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실 동생이 동업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반대를 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지는 방식이 가장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차려서 내가 망하면 내 책임으로 배우는 것이라도 있지만, 누군가와 동업하면 잘되면 좋지만, 잘 안될 경우 상대를 원망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들의 해결방법을 타인의 손에 맡기게 될 때, 주체적인 힘도 떨어진다.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동업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그 말이 동생의 귀에 들리지 않으리라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말을 아꼈다. 나 말고도 가족들이 이미 말리고 있었다.


나 역시, 남편이 한 사업에 투자를 한 적이 있었다. 곁에서 보았을 때, 아무래도 허술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남편은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 대표는 송도에 큰 사무실이 있고, 무협협회의 상도 받아 실력이 인증되었으며, 책도 썼고, 그 사업 자체(드론)가 미래에도 유망하다며 그 사람의 말을 복사 붙이기 하듯 전했다. 듣는 내내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이어서 말렸지만, 내 말을 다 튕겨내었다. 내게도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설득력이 없었다.    


  

사도 싶었던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에어컨도 못 사며 모은 돈 4000만 원을 투자했다. 그 회사는 일 년 만에 문을 닫았다. 투자자의 돈을 돌려 막기식으로 나눠주다가 끝이 났다. 우리는 끝물에 들어갔기에 그나마 피해액이 적은 축에 속했다. 그즈음 남편은 투자금을 더 넣자고 했지만, 내가 말렸고, 그렇게 사기가 발각되었기에 다행으로 여겼다.

일찍 투자를 한 사람들은 수익금을 돌려받았고, 그렇게 달콤한 맛을 보자 주변의 돈까지 끌어 모아서 몇 억의 손해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만약 남편도 돈을 받았더라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로 나는 안면마비가 찾아왔고, 몇 년 동안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모여 그 대표를 고소를 하는 데, 돈이 또 들어갔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들끓던 감정도 생업을 이어가야하기에 잠잠해졌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나와서 또 사기를 치는 것 같았다.



몇 년이 흐른 이 경험 덕에 동생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 사람이 파산신청을 했다며.... 갚을 돈이 있어야 네 돈을 주는데, 지금 돈이 없는 거잖아. 그러면 사실, 그 돈 받기 어려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건 미련 버리고, 네 살길을 찾는 게 더 나아. 마음 쓰고, 시간 들여 봤자 해결되는 게 없거든.”

“난 그 사람, 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

“법적인 부분은 난 잘 모르니까, 변호사 찾아가서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다음에 마음을 정리하는 게 좋아.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철저히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지금은 너무 힘들겠지만, 그 일이 젊을 때 겪을 수 있어 다행인 부분도 있어. 넌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으면 더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는 태도를 가지게 될 거야. 그리고 큰 욕심부리지 않고, 여러 검증하는 마음도 생길 거야. 이 일이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예방주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만약 나이 들어서, 네가 재기할 수 없을 때 이런 일이 더 큰 금액의 피해액으로 왔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잖아. 지금은 네가 일어설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하게 여기고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면 좋을 듯 해.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과정 중에 생긴 일이고,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자책하지 말고.”

“응, 알았어. 고마워.”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인생의 큰 실수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부모님이 당한 사기도 궁금해졌다. 어릴 때, 얼핏 들었던 사기사건이 떠올랐다. 아빠의 친구가 서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500만 원을 꿔 갔단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가지고, 서점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안 속상했어? 내 기억에는 그때 집에 별로 잡음도 없었던 것 같아.”

“아빠 친구니까, 언젠가 갚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

“그랬구나.”     



사기의 모양도 방법도 다양했다. 동생과 부모님의 경우, 지인과 엮인 피해였지만, 남편의 사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엮인 일이었다. 상대를 파악하고, 검증하는 건 오로지 우리의 몫이었다. 남편은 평소 부동산, 주식투자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으로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그 과도한 욕망이 초래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번 사기를 계기로 욕망이 커지면 지혜와 객관성을 잃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검은 욕망은 다른 것을 덮는다. 욕망의 성격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후, 남편은 내 말을 귀이울여 듣게 되었고 높은 금액을 보장하는 사업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객관성이 보장된 안전한 투자를 한다.

다양한 말로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이 사기로 인해 바른길과 바른 눈을 갖게 되었다.

 4000만 원의 비싼 수업료가 들었다.


 이미 지나간 선택과 결정은 번복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남은 건 앞으로의 선택뿐.

사기의 경험으로 인해 앞으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고 믿는다.      




(남편은 아직도 그 돈은 받을 수 있겠지 한다. 받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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