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을 통해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MBTI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드러내지는 않았는데 흘러가는 분위기로 넷은 MBTI 가 I이고, 나만 E인 듯했다. 문득 I들의 특징이 궁금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개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큰 맥락으로 나눠지는 지점들이 있었기에, E인 내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I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혹시 E의 성향이 I에게는 부담스럽고, 상처가 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오던 터였다.
“I들은 어떤 상황이 불편해요?”
“멍석 까는 거 싫어해요. 글쓰기 모음에서 글을 쓰는데, 나중에 쓴 글을 사람들 있는 앞에서 나누더라고요. 그 상황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 쓴 글을 발표하진 않고, 그 글을 쓴 과정에 관해 이야기 나눠요.”
“저도 글쓰기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분명히 발표는 안 할 거라고 해서 공들여서 솔직하게 썼는데, 나중에 돌아가면서 발표해서 놀랐어요. 그런 거였으면, 안 썼을 텐데.”
(그런 줄도 모르고 얼마 전, 수업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글을 소리 내어 읽게 했다. )
“멍석 깔면 조용히 있고 싶어요.”
“전 그 멍석 말고 싶기도 해요.”
처음 듣는 그들의 말에 머릿속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글은 누군가와 나누려고 쓰는 것이고, 글을 썼다면 발표해서 함께 나눠야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발표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인터뷰하는 일을 맡았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상대에게 할 질문이 없었어요.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안 궁금한 거죠.”
“그래요? 저는 지금, 택배 아저씨가 들어와도 말 걸고 싶고, 지나가다 낙엽 쓰는 미화원들의 일과도 인터뷰해보고 싶은데.... 지금 여러분도 너무 궁금해요. 우리 정말 다르네요.
그럼 I들끼리 있으면 편안해요?”
“I는 I랑 잘 안 만나요. E들을 많이 만나죠. I끼리 만나게 되면 대화의 공백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편안한 사이면 괜찮은데,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말을 생각해내기도 해요.”
“그 와중에 E에 가까운 I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극 I는 아예 그런 생각도 안 해요.”
“E끼리 있으면 서로 말하려고 해서 말이 겹치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E는 말을 많이 하고, I는 들어주었겠어요.”
이 대화가 E와 I를 규정짓고, 구분을 지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도 모르는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걸 편안해하고, 불편해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선을 넘지 않을 수 있고, 침묵에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문득 지난날, 나와 멀어져 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저런 상황들 대부분이 괜찮고, 리액션도 크다 보니 I들에는 그런 부분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과거에 이해할 수 없던 사람과의 관계가 오늘의 대화로 실마리를 찾아갔다.
우리는 상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모른 채, 만나고 대화한다. 조용하고, 표현하지 않아서 모든 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닐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 상대에게는 부담일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질문으로 자기에게 집중되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풍성함을 채우려 했던 것이 감정 속에서 오롯함을 느끼고픈 사람들이 만난다. 전에는 나와 다른 상대를 보며 ‘왜 저렇게 생각하지?’ 의아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궁금하다. 나와 다름을 100% 인지할 수는 없겠지만, 조심할 부분을 안다면 더 부드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 (물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신나서 크게 튼 음악이 소음일 수 있다.서로를 알면 음악의 볼륨을 조절할 수 있거나, 음악의 장르를 함께 골라서 들을 수 있다.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를 듣고 보니, I들과 있을 때는 은은하게 존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줄이자! (궁금한걸 어떻게 해!)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호기심과 호들갑의 부피를 줄여야겠지!
문득
갑자기 호들갑 풍선을 둥둥 띄울 E들이 보고싶다.
그대들 어디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