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못한 길이 궁금했다. 미혼은 결혼생활이 궁금하고, 기혼은 아이가 있는 삶이 궁금하고, 아이가 하나 있는 집은 아이가 둘인 집의 삶이 궁금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어떨까? 아이를 한 명 키우는 나는, 막연히 상상해도 잘 몰랐다. 친구와 대화 중 궁금해 물었다.
“우리가 첫 아이를 키워봤잖아. 둘째는 키우기 수월해? 어때?”
“수능 볼 때, 재수한다고 문제 다 잘 푸는 게 아니잖아. 재수할 때의 문제는 새롭잖아. 그거랑 비슷해. 첫째는 첫째의 문제가 있고, 둘째는 둘째의 문제가 있어. 유형이 다르지. 첫째를 키워봐서 흐름은 알지만, 둘째는 둘째 아이만의 고유함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대면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첫째, 둘째, 셋째 다 달라서, 다 어렵다고, 다 새롭다고...”
인간은 레고가 아니기에 딱딱 들어맞지 않았다. 첫째 때, 통했던 문제도 둘째에겐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 관점이라면 아이가 많을수록 삶에서 더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고, 많이 해결하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두 아이에게 똑같이 말했어. 학교 갔다 오면 외투를 걸어 놓고 찍찍이 밀어서 먼지를 털어놓으라고. 첫째는 몇 번을 말해도 안 해. 다녀오면 획- 잠바를 땅에 벗어 놔. 그러면 내가 쫓아다니면서 계속 잔소리해. 그런데 둘째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해. 그러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내 자식이니까 둘 다 예쁘지. 근데 한 아이는 나랑 성향이 달라서 자주 부딪히고, 한 아이는 나랑 성향이 잘 맞아서 부딪히는 일이 없어. 그 아이랑은 예쁜 말만 주고받게 되고, 첫째랑은 미운 말만 주고받게 되더라고. 그런 차이가 있어.”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도 한 사람이기에 자식을 떠나 나와 잘 통하고,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하나인 경우는 견주어 볼 대상과 상황이 없기에 나랑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대화 끝에,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엄마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희 둘이 싸워서 혼내면 동생은 분위기 봐가면서 살살 애교도 피우고 그래서 혼내다가도 웃음이 나와 멈췄는데, 너는 끝까지 잘못했다는 소리도 안 하고, 입 꾹 다물고 있어서 동생보다 더 많이 혼났어.”
또 다른 날은 “너는 알아서 네 할 일 척척해서 엄마 손이 많이 안 갔지.”
가족은 관계의 시작이고,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간다. 가족의 성향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맺는 관계의 색도 다르다. 아빠와 엄마, 엄마와 나, 나와 동생, 동생과 아빠, 나와 아빠, 동생과 엄마의 관계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특이한 걸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아빠를 닮아 잘 맞고, 말은 엄마와 잘 통한다. 동생은 아빠와 마음이 잘 통하지만 나와는 잘 안 통한다. 엄마와 나의 옷 취향은 서로 달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각각의 상황에서 잘 맞기도 하고, 잘 맞지 않기도 한다.
안 맞으면 싸우기도 하고, 맞으면 맞장구치며 수 만 번의 문제를 지나온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내가 자란 상황을 생각하며, 아이가 둘일 때의 상황을 추측해 본다.
가족의 숫자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 잘 지내는 것.
셋이면 셋으로, 넷이면 넷으로, 여섯이면 여섯으로 각각의 숫자에 맞게, 가족 고유한 형태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