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연예인에게 빠져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궁금했다. 고등학교 시절, HOT, GOD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그들만의 성벽이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성 안의 일. 그들은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워서 연예인 중 한 명을 좋아하려고 애썼지만, 매번 실패했다. 장작에 불이 붙지 않는 것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억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 가는 길, 마을버스에서 매주 마주치는 남학생을 좋아했고 학원의 수학 선생님도 몇 년을 좋아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렇다 보니 연예인은 나와 만날 수 없고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가닿지도 않는데 왜 좋아하는 건지 궁금했다.
세월이 흘러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늘 곁에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친구가 상견니의 허광한을 좋아했다. 팬 미팅도 찾아가고, 팬들이 만든 생일카페도 갔다.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허광한을 만날 수 없는 데도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나는 내가 사랑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좋아. 사랑에 빠져 있으면 예뻐지고, 삶에 생기가 돌잖아. 게다가 덕질은 불륜이 아니라 합법적인 일. 남편을 두고도 떳떳하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니?”
상대를 좋아하는 내 모습이 좋다.는 말에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 허광한은 내가 존재함을 느끼게 하는 철학적 대상이었다.
내가 덕질에 관한 마음이 궁금했던 이유는 아이의 열광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이브의 가을을 좋아하는데, 아이브의 씨디를 몇십 장 구매하는 건 기본이고, 가을의 포토카드를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하루에 한 번 들렀다. 이름 모를 팬이 가지고 있는 포토카드를 편의점 택배로 주고받았다. 삶에 모든 것이 가을로 포커스가 맞춰지는 장면을 마주하니 무엇이 한 사람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드는지가 궁금했다.
같은 질문을 아이에게도 했다.
“가을이는 현실에서 잘 못 만나는데, 왜 그렇게 좋은 거야?”
그러자 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엄마, 엄마 책 왜 좋아해?”
“재미있으니까.”
“맞아. 그거야. 나는 가을이가 부르는 노래, 의상, 춤 컨텐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는 책의 작가 만나?”
“아니.”
“똑같아. 아티스트가 부르는 노래가 좋은 거야. 꼭 안 만나도 돼.”
아이의 질문에 답하며 스스로 설득되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만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연출한 정구호 디렉터도 만난 적 없었고, 계속 나올 때마다 챙겨보는 책의 작가인 마스다미리도 만난 적 없었다. 공연을 통해, 책을 통해 교감할 뿐이었다. 덕질의 시스템도 같은데, 단지 그 마음이 롯데타워처럼 높아서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품어왔던 호기심, 덕질의 마음을 질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의아함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덕질 하는 중일 테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덕질하며 생겨나는 풍요로운 마음과 생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