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 가면 엄마 생각이 난다.
20대에는 친구들과 노는 게 바빠서, 엄마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아니, 엄마 생각이 잘 안 났다.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자 모든 순간에 엄마가 떠올랐다. 아이가 어릴 때, 잠을 자지 못한 채 안고 있을 때나 청소년이 되어 날 선 말을 건넬 때, 아이의 모든 모습이 나 같고, 지금의 내가 엄마 같았다. 아이라는 다리를 통해엄마에게 건너갔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엄마의 시간을 가늠하지 못했으리라!
나는 좋은 시절에 태어나 친구들과 좋은 호텔도 가고, 미슐랭식당도 간다. 엄마는 늘 가는 곳만 가고, 먹는 음식만 먹는다. 마트보다는 시장이 좋고,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우리 집에 오면서도 무거운 감자, 호박, 밤을 들고 온다. 동네마트는 비싸다면서 시장에서 장을 봐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아 잔소리를 늘어놓다가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엄마의 마음은 그대로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평소 나들이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메모해 둔다. 엄마가 올 때 함께 간다. 그렇게 함께 한 데이트 장소가늘어간다. 가족끼리 간 화담숲이 좋아서 엄마를 모시고 다음 달 바로 방문하고, 광교저수지의 야경이 멋져 함께 갔다. 엄마의 추억이 담긴 태종대도 가고, 이천 도자기 축제도 가고, 춘천 호수도 가고, 더 현대도 갔다.
한남동에 있는 미슐랭 식당도 예약해서 가고, 동네의 양념 갈빗집, 요즘 핫하다는 마라탕, 탕후루, 중식 코스요리 등등 내가 엄마의 마음이 되어 어릴 때 받은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쌓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메뉴를 정하고, 모시고 다니는 게 맞나?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지?’
여러 장소를 방문했음에도 좋다는 반응을 못 보아서 그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만난 날, 물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날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모시고 간 것 같아서...”
“엄마는 네가 사준 거 다 좋아.”
“그래?”
“응. 엄마가 먹고 싶은 건 엄마가 사 먹을 수 있잖아. 근데 딸이 데려가준 데는 내가 못가본 곳이라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아.”
“그럼 마음이 놓이네. 엄마가 별말 없어서, 좋은지 싫은지 몰랐거든.”
너무 늦게 물어본 것 같았지만, 정확한 마음을 들을 수 있어 앞으로는 더 마음껏 아름다운 곳, 맛있는 곳에 모시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요즘들어 엄마를 알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엄마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았을까?
“엄마, 갱년기가 그렇게 힘들다던데 엄마는 어땠어? 안 힘들었어?”
“엄마는 그냥 지나간 것 같아. 갱년기를 느낄 만큼의 여유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장면이 떠올라.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초겨울에 문을 닫으면, 엄마가 덥다고 창문을 열었던 일. 엄마가 많이 더워했어.”
“맞아 열이 확 오르더라. 근데 엄마는 무던해서 그런가? 갱년기를 심하게 겪진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다. 갱년기가 되면 울적해지고, 살도 찌고, 잠도 안 온다던데... 복 받았네.”
엄마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슬프기도 하지만, 엄마가 지나간 길을 함께 걸으며 그 마음을 쓰다듬을 수 있어 좋기도 했다. 그동안은 엄마가 궁금하지 않았는데, 내가 엄마의 나이에 도착하고 보니 궁금한게 많아졌다.
질문은 긴 시간의 공백을 메운다.
질문하지 않으면 여전히 같은 공간에 살아도 서로를 모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질문을 통해 엄마와 내가 몸이 아닌, 마음이 가까워진다는 걸 느낀다. 상대를 궁금해할 때, 마음이 걸어 나갈 준비를 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치를 넣어온 빈 통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다음에는 그 통에 다른 걸 넣어올 것이다. 그럼 나는 다른 질문을 해야지! 빈 통에 김치 대신 엄마를 향한 내 사랑을 넣어 보내드려야지!